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우석균 성수의원 원장 빈소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광고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광고 동네 의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 의사가 방금 시내에서 열린 데모에서 연설을 마치고는 택시를 타고 진료실로 헐레벌떡 들어왔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전쟁 반대’ 같은 다소 급진적인(?) 구호를 외치던 이가 진료실에서 마주 앉은 환자에게는 “아침에 뭐 드셨어요?” “요새 잠을 잘 못 잔다고요?” “제가 커피 줄이라고 했잖아요” 같은 ‘근황 토크’부터 가족들의 병력을 확인하고, 경제 사정과 일하는 형편까지 물어가면서 가장 정확하고도 저렴한 처방이 무엇일지 골몰하는 의사라면. 그런 의사, 우석균 선생이 지난 7일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선생과 함께해온 동료와 후배들이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9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묻히셨다. 우석균 선생은 1988년부터 서울 성수동에서 노동자를 진료하던 성수의원을 2001년 이어받아 운영을 시작하였는데 우리 단체도 2001년에 문을 열고, 성수동에서 활동하고 있던 서울지역인쇄노동조합, 제화노동조합 활동가들과 함께 더듬더듬 영세사업장 노동복지 실태조사 같은 것을 시작하던 때였다. 우석균 선생은 ‘성수동에서 지역 운동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까요?’라면서,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노동조합만 따라다니고 있던 내게 물었었다. 우석균 선생이 의대에 들어간 것이 1980년이라 하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성수동에서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느껴졌다. 그 뒤 성수의원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퇴근한 조합원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고 해마다 어느 주말에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무료 건강검진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도 성수의원 한쪽 사무공간에 입주했다. 2006년부터 2008년의 광우병 대책위원회 활동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운동에서, 의료와 먹거리와 건강을 영리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에 반대하는 시민들에게 전문가로서 근거를 제시해주고 맨 앞에 나설 때도 성수의원은 언제나 문을 열었다. 시민들의 운동이 격렬했던 만큼 당시 성수의원을 둘러싼, 모종의 긴장감도 잊을 수 없다. 물론 늘 농담과 유머를 장착한 선생이 승자였다.광고광고 단체 사무실도 성수동을 떠난 지 오래고 한참을 뵙지 못하다가 2024년 겨울에서 2025년 봄까지의 탄핵 국면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한국 사회에 극우화가 빨라지고 있다면서 사회 불평등을 이대로 둘 것인지 염려했다. 지난해 8월 말, 투병 중에도 병원 문을 열었던 성수의원은, 선생이 더 이상 진료할 수 없게 되고 이제는 변한 성수동의 분위기 속에서 문을 닫았다. 성수의원이 직장이었던, 늘 우석균 선생과 함께 일한 간호사 선생님은 우리 단체가 성수의원에 있을 때, 어쩌다 나와 마주치면 ‘원장님이 오늘도 지각한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시국이 어수선할 때마다 더 바빠지는 ‘원장님’을 걱정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진료실 안에서는 환자를 향해 몸을 수그리면서도 자신의 건강을 돌볼 새 없이 밖으로 다녀야 했던 우석균 선생을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 간호사 선생님이 우석균 선생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울었다. 우리가 한 공간에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 뒤에는 거의 뵌 적이 없었지만 장례식장을 찾은 의료인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들 사이에서 슬픈 마음을 풀어낼 사람을 찾지 못하다가 아는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장례를 치르느라 아직 추스를 시간을 갖지 못했겠지만 투병하는 선생의 나날을 기록하고 돌본 후배들과 보건의료 활동가들도 큰 상심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시기에 우석균 선생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는 “백신 맞으러 오세요” 하던 날이 생각난다. 수년 동안 뵌 적이 없었지만 어제 본 듯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성수의원에 가서 백신을 맞았다. 내게만 특별히 한 게 아니라 연락처가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일일이 연락을 했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의료를 상업화, 산업화하려는 사람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았겠지만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사랑받는 의사였다는 걸 우석균 선생은 자랑스러워하실 거라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 사람들은 많고 업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바꾸고자 한 세상을 미리 살아내려 애쓴 사람은 많지 않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