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프랑스·독일·스페인이 공동 개발하려던 차세대 전투기 모형이 2023년 6월 프랑스 파리 국제 에어쇼 행사장에 전시돼 있다. AFP 연합뉴스광고프랑스와 독일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 사업이 엎어졌다. 두 나라 방위산업 기업이 사업 주도권 등을 두고 9년 동안 으르렁거린 결과다. 유럽의 ‘자주 국방’ 구상에 먹구름이 끼었다.르몽드·리베라시옹 보도를 종합하면, 독일 정부는 8일(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사업 참여) 기업들이 차세대 전투기 공동 제작에 합의하지 못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메르츠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 사업을 계속하지 말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 프랑스 엘리제궁도 성명을 내어 “독일 당국은 (사업 참여) 기업들을 더 압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확인했다.프랑스·독일의 차세대 전투기 개발은 지난 2017년 7월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의 합의로 시작했다. 2019년 메르켈 전 총리 권유로 스페인도 합류했다. 2040년까지 1000억유로(175조원)을 들여, 기존 주력 전투기를 대체할 스텔스기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새 전투기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드론(무인기) 편대와 합동 작전을 하는 등 최첨단으로 설계될 예정이었다.광고그러나 설계를 맡은 방산기업 다소와 에어버스 간 갈등이 사업 초반부터 심각했다. 다소는 프랑스 공군 주력기 라팔 제조사고, 에어버스는 프랑스·독일·스페인 정부가 공동 출자한 항공기 회사다. 다소는 설계 주관사로 선정된 자신들이 개발을 주도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어버스는 다소가 새 제품을 프랑스 무기체계에만 맞출 수 있다며 동등한 주도권을 갖기를 원했다.또 설계 과정에서 나라마다 원하는 전투기 스펙(제원)이 달랐다. 유럽연합(EU)에서 유일하게 핵무기와 정규 핵항공모함을 운용 중인 프랑스는 핵 탑재가 가능하면서도, 항모 착함이 가능한 가벼운 전투기를 원했다. 독일은 지상에서만 발진하는 중량의 고스펙 기체가 필요했다. 메르츠 총리는 2월 “프랑스는 항모에서 운용할 항공기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광고광고독일 정치권에선 두 나라 수요에 맞춰 두 가지 전투기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번엔 프랑스가 난색을 보였다. 엔진 설계를 맡은 프랑스 회사 사프란의 올리비에 앙드리에스 대표는 7일 라트리뷘 디망슈에 “서로 다른 두 전투기 사업의 엔진을 별도로 개발해야 한다면, 엔지니어링 인력 부족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앞)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지난해 11월18일 독일 베를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사업이 늘어지는 사이 급변한 안보 환경도 회의론을 부채질 했다.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효율성이 부각되면서, 초고가 전투기 개발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공격할 거란 ‘2030년 침공설’이 떠오르자 유럽이 2040년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벌일 여유가 없어졌다.광고프랑스 싱크탱크 전략연구재단(FRS)의 프랑수아 에스부르 고문은 리베라시옹에 “이 사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설계된 것이라 더 이상 지정학적·전략적 상황에 맞지 않다”며 “우리가 증조부가 됐을 때 실전 운용될 항공기에 큰 돈을 쓰는 것보다, 라팔 F5(다음 버전 기체)에 투자해 제때 충분히 생산하는 게 낫다”고 평가했다.유럽 방위 협력엔 악재다. 지난해 출범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방위에 손을 떼려 하자, 유럽연합에선 미군을 대체할 만큼 자주 국방력을 기르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냉전 종식 이후 줄여온 국방 예산을 다시 늘리고 각국이 협력해 방산 기반을 되살리는 게 핵심이었다.그러나 이번 사업의 실패로 유럽연합 양대 군사 강국(프랑스·독일) 간 협력조차 순탄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라마다 무기 수요가 다르고, 협력에 반대하는 국내 정치권·산업계 반발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다. 프랑스-독일이 추진하는 주지상전투시스템(MGCS·차세대 탱크 등) 공동 개발과 나토의 드론 방어체계 구축 등도 비슷한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르몽드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이 “지금까지 유럽에서 있었던 최대 규모 산업협력 프로젝트”였다며 “이 프로젝트가 중단된 건 프랑스-독일 협력 축에 큰 타격이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끊임없이 주창해온 유럽 주권에도 충격”이라고 짚었다.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