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자작나무 책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작나무 책방 제공 광고지금, 북토크는요 ‘슬픔도 서로 기울어진 몸들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자작나무 책방에서 열린 신형철 문학평론가 북토크는 서로에게 기울어진 마음으로 다가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함께한 자리이기도 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시간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라는 글로 열었다. “꼰대란 더는 타인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더 나아가 “타인만이 나를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자에게 공부는 ‘언어와 삶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것이기도 한데, 지기 위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수행적 경험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화두가 되었다.광고 저자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은 국가, 사회 그리고 개인이 마주하는 깊은 슬픔의 순간들의 기록이자 삶을 이해하고 버티기 위해 쓴 글이다. 인간의 고통은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입체적 고통일수록 그 현상은 더욱 짙다. 그렇다면 문학이 개인의 슬픔을 넘어 사회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려면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 저자는 이를 “치유서사와 대항서사”로 이야기한다. 사회적 참사만이 아니더라도 공동체가 인정해주어야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언어화해서 형상(figure)을 부여하고, 그것이 공적 영역 속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은 “지배서사에 맞서 재난을 달리 사고하는 대항적 인식을 제공할 수 있으며 사회적 서사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타인의 여러 정신 상태에 적절한 감정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공감”이 필요한데, 이에 저자는 제임스 우드의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문학은 우리가 삶의 세부 사항(detail)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주는데, 우리는 그것을 삶에서 실습하게 되어 “삶을 좀 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인공지능(AI)이 읽어주는 것과 스스로 독서를 하는 것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스스로 읽기는 “감정 디테일(해상도)을 높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캐릭터들은 ‘행복한’이나 ‘슬픈’ 같은 한 단어 기술들로 잘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그들의 감정적 레퍼토리를 확장”하고 독자들 또한 독서를 통해 자신들의 감정적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감정 상태의 가능성”을 배울 수 있게 된다.광고광고 이제 독자들의 난관은 어떤 작품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이에 ‘정확하게 칭찬하는 평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저자는 일본 근대 문학 비평을 독립적인 예술 형식으로 확립한 문예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비평은 교묘한 칭찬이다”라는 말을 인용해 설명하였다. 비평가란 작품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며,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인지적 공감을 통해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조차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날의 분위기를 한 단어로 정리해보자면, ‘스며듦’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견지하는 세계의 온도는 인간의 온기 그대로를 담고 있으며, 그것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간적 두께는 다르겠지만 분명 스며듦이다.광고 조성순 자작나무 책방 책방지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l 신형철 지음, 한겨레출판(2018) 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교수(왼쪽 셋째)가 지난달 23일 서울 용산구 자작나무 책방에서 열린 북토크가 끝난 뒤 독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자작나무 책방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