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 1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해양치유센터 안 옥상에 인피니티풀이 조성돼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광고바다와 연결된 듯 보이는 수영장(인피니티풀), 최신 기기를 갖춘 전신·두피 테라피실… 충남 태안군 남면 달산포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태안해양치유센터’는 일종의 리조트다. 숙박 시설과 각종 치유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지난 1월 문을 연 이곳에는 ‘지방소멸대응기금’ 84억원이 투입됐다. 애초 이 사업은 2017년 해양수산부의 ‘해양치유사업 시범단지’로 선정되며 시작됐다. 총 사업비 399억원이 투입된 대형 사업이다. 지방소멸기금 84억원으로는 센터 외부 휴식 공간에 나무 데크, 탁자, 선베드형 의자 등을 만들었다. 두피 테라피 등 각종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스파 장비와 온열기 등의 기기도 샀다. 하루 숙박비는 50만원(4인실 기준)이다. 평일인 지난달 17일 찾은 센터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센터 직원은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역소멸을 막겠다는 취지로 수십억원이 쓰였지만, 정작 태안 주민들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이충경(55) 소원면 의항2리 어촌계장은 “소멸을 막으려면 결국 젊은이가 와야 하는데 치유센터는 너무 (관광에) 한정됐다”며 “(기금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기두 태안군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방소멸기금을 원래 지자체가 하려던 사업에 덧대어 쓰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지역의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재정을 지원해주는 정책 사업이다. 2022년부터 10년간 인구감소지역 89곳, 인구감소 관심지역 18곳에 매년 1조원씩 총 10조원이 투입된다. 지난 5년간 인구감소지역마다 많게는 538억원, 적게는 320억원을 지원받았다. 각 지자체가 해마다 행안부에 투자계획을 보고한 뒤, 전년도 성과 등에 따라 기금을 차등 배분받는 구조다. 하지만 태안해양치유센터 사례에서 보이듯, 실제 기금의 상당 부분은 인구감소 대응이나 지역 주민의 정주여건 개선과는 거리가 먼 사업에 쓰인다. 지방소멸기금 시행 5년차를 맞아, 충북 단양, 전북 부안·고창, 전남 장흥 등 기금이 투입된 지역 9곳의 16개 사업 현장을 직접 돌아봤다. 광고지난 1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해양치유센터 안에 있는 ‘피톤치드원’에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피톤치드원 조성을 포함해 해양치유센터에 지방소멸대응기금 84억원이 들어갔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기금 집행액의 95%가 ‘관광’에 광고광고 태안군이 지난 5년간 지원받은 지방소멸기금은 350억원이다. 이 가운데 174억1천만원을 집행했는데, 집행액의 95.55%가 문화·관광 연관 사업에 쓰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춘생 의원실과 태안군에서 받은 자료를 한겨레가 사업별로 재분류해 분석한 결과다. 만리포해수욕장 근처에 짓고 있는 ‘해양레저 안전교육센터’ 안에는 ‘실내 서핑 시설’이 설치될 예정이다. 이 시설에 지방소멸기금 약 59억원이 투입됐다. 원북면 신두리에 지어질 ‘샌드뮤지엄’의 총 사업비는 190억원인데, 이 가운데 7억원이 지방소멸기금으로 채워진다. 외부 관광객들이 놀러 와 즐길 거리들이다. 정작 태안에 사는 사람들이 살기에 힘들다고 느끼는 분야엔 돈이 흘러가지 않았다. 2025년 충청남도의 ‘사회지표 보고서’(1만5천가구 표본조사)에 따르면, 태안군 주민은 ‘살면서 가장 불만족한 점’으로 교통(27%), 복지·의료(22%), 경제·행정(18%) 문제를 꼽았다. 태안군의 지방소멸기금 투자계획에 ‘의료복합 치유마을 구축’ 등 관련 사업이 일부 포함돼 있긴 하다. 다만 집행 우선순위에서는 뒤로 밀려,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광고 ‘이름만 다른’ 워케이션 센터, 전국 31곳 지방소멸기금은 ‘지역 특색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진행되기 일쑤다. ‘워케이션’ 사업이 대표적이다. ‘워케이션’이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친 말로, 코로나19 이후 다른 지역에서 재택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스마트 워케이션’(강원도 강릉시), ‘세대 아우름 워케이션’(대구광역시 군위군), ‘신중년 워케이션’(경상북도 영천시) 등 지방소멸기금 투자계획서에 이름만 바꾼 비슷한 사업명이 늘어났다. 전국 지자체 31곳이 워케이션 사업에 지방소멸기금을 투입한다. 태안의 ‘만리포 워케이션 센터’ 공사 현장으로부터 300m 떨어진 곳에는 이미 군에서 운영 중인 ‘여름 군청 워케이션 센터’가 있다. 그런데도 또 다른 센터를 짓는 데 기금 3억원을 집행했다. 지난 7일 찾은 전북 부안군 줄포노을빛정원 워케이션 센터는 오전 내내 찾는 이가 1명도 없었다. 탁 트인 통유리창 바깥으로 멋진 경치가 펼쳐졌지만, 업무용 책상 25개, 미팅룸 2개는 무용지물이었다. 2024년 9월 문을 연 뒤 이달까지 센터를 방문한 이용객은 총 313명. 하루 1명꼴도 이용하지 않은 셈이다. 부안군은 이곳을 포함해 워케이션 센터 2곳을 만드는 데 기금 약 11억원을 썼다. 지난달 29일 찾은 전남 보성군 제암산자연휴양림에 있는 ‘녹차마을 워케이션’의 상황도 비슷했다. 지방소멸기금 25억원과 군비 4억원을 들여 지난해 7월부터 워케이션 공간을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 근무 직원은 ‘워케이션’이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충북 단양군은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소백산 유스호스텔을 매입해 ‘워케이션 센터’를 조성 중이다. 기금 47억원이 투입됐다. 근처에서 만난 관광관리사무소 직원은 “민간 호텔보다 위치가 안 좋아서, 이용객이 얼마나 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광고지난 7일 오전 방문한 전북 부안군 줄포 노을빛정원 워케이션센터에 사무용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있다. 2024년 9월 문을 연 이후, 이곳을 이용한 사람은 하루 1명꼴도 채 되지 않는다. 송상호 기자 ssho@hani.co.kr ‘보기 좋은’ 조명 설치하고, 꽃 심고 각종 정원이나 꽃길 조성, 야간조명·분수 설치 사업 등도 지방소멸기금이 대거 투입되는 단골 사례다. 지난달 28일 저녁 찾은 전남 장흥군의 탐진 강변엔, 다리 난간에 물결 모양의 조명이 설치돼 있는 등 휘황찬란했다. 이곳 ‘문흥 빛의 거리 조성 사업’에는 기금 약 33억원이 쓰였다. 장흥 토박이인 양기수(75)씨는 “지역 상인을 돕거나 청년 일자리를 만들거나 노인 진료소를 만드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해야지, 주민들은 이런 거(조명)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송다혜(28)씨는 기금이 쓰여야 할 사업으로 ‘일자리’를 첫손에 꼽았다. “친구들은 도시로 떠나고 나만 남았다. 타지에 갔다가 돌아와도, 결국 일이 없어 못 버티고 올라가더라.” 전북 고창군 꽃 정원 조성 현장에서 만난 김삼순(88)씨는 “수십억 들여 (공사하는) 큰 차들이 왔다 갔다 하니 불편해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업에는 기금 57억9천만원이 집행됐다. 전남 화순군 ‘꽃강길’ 사업 현장에서 만난 이미선(48)씨는 “옛날엔 탄광 광업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일자리가 없다”며 “지역에 일자리가 있어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2.1㎞ 구간에 음악분수대, 산책로 등을 설치한 꽃강길 사업에는 기금 99억원이 쓰였다. 물론 지역 주민들이 만족하는 사업도 없진 않다. 전남 고흥군의 ‘드론체험 놀이터’에서 만난 어린이집 원장 김래현(51)씨는 “아이들이 놀 공간이 많지 않았는데 키즈카페처럼 이용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지난달 28일 저녁 전남 장흥군청 주변 탐진강을 가로지르는 장흥교에 물결 모양 조명이 설치돼 있다. 이 조명 사업에 지방소멸기금 33억원이 투입됐다. 송상호 기자 ssho@hani.co.kr ‘생활인구’ 늘리기에 집중한 이유 각 지자체가 행안부에 제출한 지방소멸기금 사업 목록을 보면, 문화·관광 연관 사업은 2022년 130개에서 2025년 81개로 감소했다. 이는 문화·관광, 일자리, 교육 등의 특성이 동시에 있으면 ‘복합 사업’으로 분류하도록 2024년 사업 항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복합 사업’ 분야는 2024년 104개에서 2025년 190개로 늘어났다. 송윤정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문화·관광 분야의 사업 편중 문제는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급증한 복합 사업 상당수가 문화·관광 중점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지자체가 문화·관광 사업에 치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 지자체의 지방소멸기금 담당자는 “정주인구를 늘리는 건 일자리가 없는 지역 입장에서 비현실적”이라며 “생활인구를 늘리는 게 더 현실적이라 봐서 관광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인구’란 주민등록상 거주자인 ‘정주인구’와 관광, 통학 등의 목적으로 해당 지역에 방문해 하루 3시간 이상 머문 날이 월 1회 이상인 ‘체류인구’를 합친 개념이다. 행안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배분하는 지방교부세 산정 기준에 올해부터 ‘생활인구’ 항목을 포함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관광객 등 체류인구가 많을수록 돈을 더 많이 받는 구조가 된 셈이다. “지방소멸기금이 문화·관광 사업에 집중되는 것은 애초 사업 구조 설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소멸 위험지수’를 개발한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기초지자체에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고 돈을 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권역별로 연관된 산업 구조를 바꿔준 다음에 지자체가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기금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송상호 기자 ssho@hani.co.kr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취재 내용을 생생하게 담은 기사와 사진과 영상 등을 담은 디지털 인터랙티브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5회 ‘지역 살리기’ 약속의 빈틈 https://campaign.hani.co.kr/regional-extinction-crisis-part5 디스토리는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새 이름입니다. 발견하다(Discover), 파다(Dig)와 스토리(Story)를 합친 말로 ‘깊이 있는 스토리를 발견하고, 숨어 있는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제안을 기다립니다. 제보 이메일은 dstory@hani.co.kr로. <디스토리팀> 취재: 류석우 손고운 황예랑 송상호 / 사진: 최현수 / 영상: 한해나 / 디지털 인터랙티브: 김경훈 안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