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소생, 우생, 진흥 중화’, 작가 미상, 1987년, 베이징 가족계획 홍보교육센터.광고1955년 가을 미국에서 추방된 로켓공학자 첸쉐썬은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배에서 그는 동행한 수학자 쉬궈즈와 긴 대화를 나눴다. 화두는 두 사람이 미국에서 익힌 신생 학문, 곧 피드백을 매개로 기계, 유기체, 사회 조직을 최적의 목표 상태로 이끄는 ‘제어의 과학’이었다. 이 학문의 이름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조타수를 뜻하는 그리스어 키베르네테스(kybernetes)에서 왔다. 두 사람은 이 조타수의 과학을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결합할 방도를 논했다. 중국이야말로 이 사회공학적 방법론이 가장 완전하게 꽃필 무대라고 기대하면서. 중화의 과학자들에게 사이버네틱스는 처음부터 사회 전체를 조타하는 통치의 과학이었다. 다만 귀국 뒤 오랫동안 그 쓰임새는 미사일과 국방의 울타리 안에 국한되었다.울타리를 허문 것은 개혁·개방이었다. 마오쩌둥 시대의 국방과학자들은 대형 컴퓨터, 외국 문헌, 최고 지도부와의 인맥을 보유하고 정치적 박해로부터도 보호받던 특권 집단이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국방 투자를 줄이고 군수의 민수 전환(軍轉民)을 요구하자, 이 과학자 공동체의 자원과 인력은 민간 사회의 문제들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조타수들이 사회로 나온 것이다. 그들이 마주한 첫번째 문제는 인구였다.첸쉐썬의 수제자이자 미사일 유도 제어 전문가 쑹젠은 1978년 핀란드 헬싱키의 국제 학회에서 ‘인구 사이버네틱스’와 조우했다. 시간 축 위에 그려지는 미사일의 궤적과 인구의 궤적은 수학적으로 거의 같은 방정식을 따랐고, 목표점을 정해 최적 경로를 계산하는 일은 그가 평생 갈고닦은 기술이었다. 귀국한 쑹젠이 동료들과 미사일부의 대형 컴퓨터로 100년 뒤 중국의 최적 인구를 6억5천만~7억명으로 산출하고 거기에 도달할 출산율 궤적을 뽑아내는 데는 단 5분이면 충분했다. 계산기밖에 없던 사회과학자들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1979년 12월 전국 인구 이론 토론회에서 쑹젠 팀의 수식과 그래프는 좌중을 압도했고, 셋째 출산 억제와 점진 조정을 주장하던 온건안은 밀려났다.광고지도부는 이해할 수 없는 수학 앞에서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이듬해 당 중앙의 공개서한으로 ‘한 자녀 정책’이 공식화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장면의 의미다. 중국의 과학기술인들은 존중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당과 국가가 풀지 못하던 난제를 자신들이 풀 수 있음을 먼저 증명했다. 통치의 자격은 배분받은 것이 아니라 획득되었다. 쑹젠 본인은 유능함을 증명한 대가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주임을 거쳐 부총리급 국무위원이 되어 명실상부 국가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그러나 그 유능함에는 그늘이 있었다. 쑹젠의 계산 자체는 부부당 1.5명으로도 목표 달성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한 자녀, 즉 1.0의 결론은 수학이 아니라 정치였다. 농민에게 1.5를 허용하면 둘을 요구하리라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다. 사실 계산의 초기 입력값도 부실했다. 쓸 수 있는 마지막 전국 인구 통계는 약 15년 전에 실시된 불완전한 자료뿐이었다. 그럼에도 소수점 아래까지 제시되는 정밀한 수치들은 검증 불가능한 미래를 정밀한 사실처럼 보이게 했다. 그렇게 설정된 문제와 해답 앞에서 반론은 ‘비과학’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과학은 정치적 교착을 깨는 지렛대이자 이의 제기를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가가 없지 않았다. 1983년, 목표치를 반드시 채우라는 명령 아래 한해에만 불임 수술 2100만건, 낙태 수술 1400만건이 집행되었다. 강제는 대부분 여성의 몸에 새겨졌고, 여아들이 살해되었다. 이 인간적 고통은 5분의 계산 안에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광고광고인구 정책은 시작일 뿐이었다. 사이버네틱스 과학자들의 야심은 1980년대 중후반 국가 경영 전체로 뻗어나갔다. 그들은 사회를 수많은 하위 시스템을 거느린 거대 시스템(巨系統)으로 파악하고 그 설계와 운영을 미사일 개발 사업의 조직 형식에서 따온 총체설계부에 맡기자는 구상, 나아가 10억 인민의 학습·직업·건강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 인재를 자동으로 선발·배치하자는 제안을 들고나왔다. 컴퓨터와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오늘날, 이 청사진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중국 과학사의 이 일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과학기술인들은 사회의 가장 어려운 문제에 자신들의 실력과 설비를 들고 먼저 뛰어들었고, 그 유능함의 증명이 그들을 통치의 핵심부로 데려갔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은 박정희 정부 이래 정부에 동원되어 국가를 위해 성취를 바쳤으되 정작 통치의 키는 잡아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중국의 경험은 곱씹을 만한 구석이 있다.광고하지만 존중은 더 나은 처우와 인정에 대한 요구만으로 오지 않는다. 기후 위기, 감염병, 에너지 전환, 지역 소멸, 고령화. 사회와 정치가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 앞에 과학기술인들이 해결의 주체로 먼저 나설 때, 통치의 키는 비로소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없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세계가 진단시약 부족으로 허둥댈 때 며칠 만에 진단키트를 설계해 각국의 주문을 받아낸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인들과 바이오 기업들이었다. 요구하기 전에 증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다만 2020년대 한국 기술관료주의는 1980년대 중국의 그것보다 응당 상위호환이어야 한다. 쑹젠의 유능함은 인간과 사회를 미사일처럼 취급했다. 궤도를 계산할 줄 알았으나 그 수치가 평범한 여성들과 가족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할 식견과 감수성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 우리 과학기술인들에게 요구되는 바는 지난날 중국 기술관료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능함, 기술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은 채 인문학·사회과학의 깊이와 융합하는 유능함일 것이다. 그 융합이란 숫자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능히 헤아리는 훈련이며, 자신의 해법이 틀렸을 가능성까지 계산에 넣는 겸허함이고, 필요하다면 주어진 문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비판 정신에 다름 아니다. 미사일의 궤적과 인구의 궤적은 같은 방정식을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최상의 조타수는 알고 있다. 미사일에는 승객이, 사람이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을.이종식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사학, 과학기술학(STS), 과학기술정책학을 교차시키며 현대 중국 과학과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