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붕괴 참사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에서 현재 지반 공사가 한창이다. 이문영 기자광고‘광주 학동 붕괴 참사’의 한축으로 의혹을 모았던 재개발조합장의 비리 사실이 참사 5년 만에 공모자 진술과 증거로 조각을 맞추고 있다. 5주기 추모식 직후 발생한 ‘뜻밖의 죽음’과도 얽혀 있다. 희생자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안은 10일 구의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그사이 바뀐 사정은 다 알고 계시죠? 피고인 ㅈ씨가 사망함으로 인해서….”8월18일 오후 광주고법 형사법정에서 재판장이 말했다. ㅈ 외 3명의 배임 혐의 등을 심리하는 2심 공판에서였다.ㅈ의 사망 계기가 된 ‘사건’은 직전 공판(6월2일)에서 그의 변호인이 불출석 사유를 설명하면서 알려졌다. 특정 단어로 표현된 ‘어떤 시도’가 있었음을 밝히며 중환자실 입원 사진과 진단서를 근거로 제출했다.ㅈ은 재개발 중인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의 전임 조합장이었다. 학동4구역은 2021년 6월9일 정류장에 정차한 버스 위로 철거 중이던 건물이 쏟아지며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친 ‘그 현장’이었다. 참사 5주기 일주일 뒤인 6월16일 ㅈ은 사망했다. 6월25일 변호인이 사망진단서를 냈다. 8월3일 법원이 공소기각(피고인 사망 등의 경우)을 결정했다.광고“그래서 증인신문이 필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죠?”광고광고재판장이 검사에게 물었다. 피고인 중 한명인 조경업자의 법정 신문이 예정돼 있었다. “홍경호(가명)씨를 검찰이 증인 신청한 취지는 피고인 ㅈ씨의 공소사실 유죄 입증을 위해서였는데” 의미가 사라졌지 않냐는 뜻이었다. 검사가 말했다.“이 사건 식재 공사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는 정황을 1심 재판에선 밝히지 못했으나 항소심 과정에서 홍경호씨가 반성문을 제출해서 이 부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광고홍경호도 이의를 제기했다.“판사님, 그냥 이대로 판결이 나버리면 제가 오롯이 다 책임져야 합니다. 제가 너무 힘들어서 살 수가 없습니다.”재판장은 “ㅈ에 대한 공소사실은 이미 분리돼서 기각이 확정됐고 그 부분을 입증하는 재판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경호를 피고인석으로 돌려보내자 검사가 요청했다.“증인신문은 적절치 않다고 하셔서 피고인 신문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부정한 돈거래 사실이 홍경호 피고의 양형에 반영돼야 한다고 판단합니다.”광고배석 판사와 상의한 재판장이 신문을 허가했다. 검사가 증인석으로 다시 나온 홍경호에게 질문했다.“수목 식재 계약 35억원 중에서 13억원 정도가 ㅈ이 요구해서 (불법 리베이트로) 간 건가요?”“네.”“고사한 수목 등을 보완하기로 했다면서 (ㅈ 쪽이 수사기관에) 제출한 자료들(계약서상의 나무와 실제 심은 수량과의 차이를 소명한 문서)이 다 허위라는 거죠?”“네.”2021년 6월9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며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버스를 덮쳤다. 붕괴 직후 119구조대원들이 매몰자들(사망 9명·부상 8명)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욕심에 눈이 멀어”참혹에서 비롯된 재판이었다.학동 참사는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내밀한 건설 원리’가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폭로된 사건이었다. 지역 조폭·브로커와 공사업체들의 ‘돈거래→불법 재하도급→공사비 삭감→철거 공법 변경→건물 붕괴’란 참사의 구조가 지난 5년 새 대법원 판결까지 받는 동안 책임의 한축으로 수사를 받았던 조합 쪽 재판은 더디게 진행됐다.과거 광주 동구의회 부의장을 지낸 조합장 ㅈ은 참사 당시 여러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됐다. 압수수색을 받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법원에서 기각)됐으나 조합장 자리를 지키며 재개발을 지휘했다. 정작 그의 연루를 따지는 재판은 학동3구역에서 벌어진 비리 혐의(4구역 의혹들은 재판 단계까지 가지 못함)를 두고 다퉜다. 4구역 조합장이 되기 전 그는 도로 하나를 끼고 접한 3구역(2017년 입주)의 조합장이었다. 아파트 보류지(여분 물량) 무상 취득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를 도와 이득을 취한 정비업체와 조합 간부가 같은 재판의 피고인으로 섰다. 조합과 나무 식재 계약을 맺은 홍경호도 피고인들 중 한명이었다.1심 재판부는 ㅈ의 혐의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2024년 12월)했다. 벌금 80만원(조합장 지위 유지)이 나온 유죄는 홍경호와의 계약과 연결돼 있었다. 당시 검찰은 참사 직후 떠들썩하게 보도됐던 ‘5억원 소나무’를 중심으로 기소 논리를 폈다.ㅈ은 무허가 조경업자인 홍경호와 13회에 걸쳐 35억3410만원어치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 중엔 1그루에 3억6천만원짜리 소나무 식재 계약(2015년 10월)도 있었다. 이후 홍경호가 1억원을 더 달라고 요구하자 합당한 요구인지 살피지 않고 추가 지급(2016년 10월)했다. 2017년 10월 이 소나무가 고사했다. 홍경호의 요구로 2억8천만원짜리 대체 소나무를 심되 비용을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계약 3년까지는 조경업자가 하자보수를 해야 하지만 1억4천만원을 홍경호에게 송금해 조합에 손해를 끼쳤다….재판부는 조합장의 행위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배임 대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을 적용했다. 2억원 이상의 조경공사는 일반경쟁에 부쳐야 하지만 수의계약을 했다는 사실만 책임을 물었다. 홍경호에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미등록 업체)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지난해 4월부터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ㅈ의 ‘어떤 시도’는 6월2일 공판 이틀 전에 발생했다.“당시 조합장이던 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욕심에 눈이 멀어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 깊이 생각 못 했습니다.”(2026년 5월24일 홍경호 반성문)1심 선고와 항소심 개시 사이 두 사람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 홍경호는 2015년 ㅈ의 친구이자 ‘학동파’ 두목 출신 브로커(징역 2년에 추징금 3억7천만원)인 “ㅇ의 소개로” 당시 3구역 조합장이던 ㅈ과 처음 만났다. 그들은 그해 ‘5억 소나무’ 계약을 시작으로 ‘공생’해왔다. “첫 계약부터 매번 ㅈ이 돈을 요구했다”고 홍경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나뭇값이나 그루 수를 부풀려 계약서를 쓴 뒤 과다 책정된 금액을 돌려받는 방식”이었다.그는 항소심에서 진술을 바꾼 까닭을 “세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경 수사와 1심 재판에서 말을 맞춰주는 대가로 ㅈ이 세금(리베이트로 돌려준 돈까지 수익으로 잡히면서 늘어난 세금 등)과 변호사 비용을 대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2021년 12월 북광주세무서는 홍경호를 세무조사(수사 과정에서 미신고를 확인한 경찰이 통보)해 2억3282만원(부정신고 가산세 9080만원 포함)을 부과했다.그에 따르면 ‘약속’은 수사가 본격화되던 시기에 ㅈ의 농장(전남 소재)에서 이뤄졌다. “ㅈ이 자신의 그랜저 차량 트렁크를 열고 낫과 노끈을 보여주며 ‘사실대로 말하면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해 어쩔 수 없이 세금을 조건으로 걸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는 한푼도 내주지 않았고 재산까지 압류(현재 체납액 8400여만원) 당해 고통이 극심하다”고 했다.홍경호는 재판부와 검찰에 ‘고백’을 담은 반성문을 제출했다. 사실이 드러날 것을 걱정하는 조합장의 음성 녹취록, “조합장의 요구에 따라 리베이트를 제공한 돈”의 은행 인출 기록, “계약과 실제 식재의 수량 차이를 짜맞추기 위해” 조합장 쪽에서 작성한 문서 등을 증거로 첨부했다. 8월18일 공판에서 검사가 피고인 신문의 근거로 삼았던 자료들이었다.학동3구역 아파트에 심은 ‘5억 소나무’가 고사한 뒤 대체 식재한 소나무를 지난해 5월 작업자가 살펴보고 있다. 홍경호(가명) 제공“일 터지면 성치 못해”“아니 긍께 조합장님은 돈을 얼마 가져갔냐, 나는 그게 중요해.”(조합 관계자)“나는 기억이, 모른다니까!”(ㅈ)“아, 기억이 안 나요?”(관계자)“뭐뭐, 뭔 소리하고 있어?”(ㅈ)2024년 10월 학동3구역 조합 관계자와 ㅈ이 실랑이(녹취록)를 벌였다. 1심 선고 두달 전 ㅈ의 농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농장에 가기 전 홍경호는 이 관계자에게 “2020년에 준 8천만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세금을 내려면 그 돈이라도 다시 받아야 했”(인터뷰)다. 지난 4년간 홍경호는 “그 8천만원이 그 사람에게 준(이 관계자가 돈을 요구한다며 ㅈ이 지시) 돈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는 심부름꾼일 뿐 돈을 받자마자 그대로 ㅈ에게 갖다줬다’고 해서 정말인지 같이 확인하러 갔”다. 모두 얼마를 받았냐고 조합 관계자가 따져 묻고 있을 때 함께 있던 ㅈ의 아내가 말했다.“하도 그래서 ‘홍 사장한테서 얼마를 갖고 왔어?’ 내가 슬쩍 그랬어. (그랬더니 남편이) ‘모르겄네’. 인자 이 양반도 저기 하니까 ‘8억이나 될랑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지만 돈 받은 사실을 인정한 결과가 되고 말았”(홍경호)다. 조합 관계자가 “충격”이라며 말이 곤두섰다.“나는 조합장님, 나는 1원도, 조합장님이 진짜 1원도 안 가져간 줄 알았어. 진짜 믿었어, 나는.”조합장의 언성이 높아졌다.“○○○(관계자 호칭), 분명히 말해!”“예, 뭐요?”“참말로 일 터지면 ○○○나 나나 성치 못해! 입조심해! 입조심해!”‘5억 소나무’를 둘러싼 정황들도 재구성됐다. 홍경호가 자신의 문중에서 5500만원에 산 나무가 조합과의 계약에선 3억6천만원짜리가 됐다. 이 돈이 계약금(2015년 10월)·중도금(2016년 4월)·잔금(2016년 10월)으로 나뉘어 그의 계좌로 분할 입금(금융 기록)됐다. 홍경호는 입금 사이사이에 3천만원, 4천만원, 5천만원 등 뭉텅이 돈을 제3자에게 송금(“하루 인출 한도가 제한돼 있어 지인들에게 쪼개 보낸 뒤 현금으로 뽑아주면 합쳐서 ㅈ에게 전달”)했다. 1억원의 추가 계약(4억6천만원으로 인상)은 잔금 입금 하루 전 체결했다. 1심 재판부는 홍경호의 요구를 ㅈ이 들어주면서 조합에 손해를 끼쳤다고 봤으나(“실제로는 소나무를 아파트에 싣고 간 그날 조합원들 보는 앞에서 ㅈ이 ‘홍사장 고생했다며 1억원 올려주자’고 했다”), 이 돈 역시 입금(2016년 10월25일) 당일 9천만원이 고스란히 출금(“1천만원은 나 가지라고 해서 9천만원을 뽑아 검은비닐봉지에 넣어서 되돌려줬다”)됐다. 절반씩 부담하기로 한 대체 소나무 비용도 “사실은 조합이 모두 댔다(나무값과 운반·식재비까지 조합 부담금 1억4천만원 안에서 처리)”고 했다.“집으로도 가져다주고, 어디로 오라고 하면 그쪽으로 갖다주고(별도 녹취록), 심지어 나무 심는 현장에서도 별것 아닌 것처럼 줬다”고 홍경호는 말했다. “2015년 10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조합에서 입금받은 33억9610만원 중 최소 13억원 이상이 ㅈ에게 리베이트로 갔다”며 내역을 제시했다.“ㅈ의 아들(당시 4구역 총무이사)이 조경 관련 서류를 위조하여 서명하라고 (내) 농장까지 찾아와 강요할 때에도 (…) 동조할 수밖에 없었던 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반성문)1심 당시 검찰은 계약과 실제 식재된 나무의 수량 차이를 파악해 ‘범죄일람표’를 작성했다. “일부 계약이 이행되지 않은 사실은 있으나 ㅈ과 홍경호가 수량이나 금액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고 볼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법원이 무혐의 판결한 부분이었다. 베롱나무는 4그루가 심겼다. 2017년 10월 계약된 나무는 10그루(2억8천만원)였다.붕괴 참사 4개월 뒤 조합장 아들이 홍경호의 나무 농장으로 ‘확인서 및 협의서’를 들고 찾아왔다. 2015년부터 체결된 전체 계약의 2021년 10월 당시 현황을 정리한 문서였다. 베롱나무 10그루 중 그때까지 심지 않은 6그루가 심은 것으로 “인정” 처리돼 있었다. “101동 뒤”에 심은 “1주”는 “인정 4주”, “104동 앞 2주”는 “인정 2주×2”로 계산됐다. “인정 수량”은 ‘확인서’ 곳곳에서 등장했다. 홍경호는 “심지도 않을 나무를 심는다고 속여 계약 규모를 키웠는데 수사가 시작되자 그 차이를 메꾸려고 없는 개념까지 만들어 허위 문서에 서명하도록 시켰다”고 했다. 확인서에서 “훈련 중(홍경호 농장에서 이식 준비)”이거나 “훈련 중 고사”로 분류된 나무들도 “애초 없는 나무들”이라고 말했다.조합장 아들은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4구역 붕괴 사고 뒤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되면서 수사기관으로부터 3구역 조경 관련 질문과 요청이 있었다”며 “내가 직접 식재 상황을 파악하고 대조·정리해 (홍경식에게) 내용 확인을 받은 것뿐”이라고 했다.6월2일 재판은 홍경호가 반성문과 증거자료들을 제출한 뒤 처음 열리는 공판이었다. 검찰이 홍경호의 증인신문을 신청해둔 날이기도 했다. ㅈ은 5월31일 밤 “시도” 직후 “주민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관할 경찰서 관계자)다. 홍경호는 8월18일(변론 종결) 최후 발언에서 말했다.“저의 잘못은 벌을 달게 받겠지만 사실 관계는 분명히 밝혀 주십시오.”지난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청에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5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우리는 끝까지 기억할 것입니다”총무이사였던 ㅈ의 아들은 고인 사망 전인 지난 2월부터 학동4구역의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달 전 고인이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직한 뒤 보궐 선거로 당선됐다. 동구청은 이 선거를 “중대한 위법”으로 판단해 조합장 변경을 거부하고 있다. ‘임원 선출은 총회 인준을 받은 선거관리 규정에 따라 시행한다’는 조합 정관을 어겼다며 시정명령(재선거)를 내렸다. 조합은 총회 대신 대의원회 의결 규정으로 선거를 치렀다. “2012년부터 그렇게 임원 선출을 해왔고 법적 문제가 없다는 법률 자문도 받았다”며 맞섰다. 동구청은 고발 조처(3월)했고 낙선자도 소송을 제기했다.참사 현장에선 현재 지반 공사(지난해 12월24일 착공 승인)가 한창이다. ㅈ의 아들은 “(붕괴 참사는)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아픔이지만 올해 연말 일반분양을 앞둔 시점에서 이젠 잊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참사 이듬해 현대산업개발은 “광주를 넘어 서울 강남과 비견되는 아파트”를 “단 하나의 찬란한 미래”로 제시하며 시공권을 방어했다. 그 미래와 잊고 싶은 과거 앞에서 희생자 유족들은 잊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진의 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는 5주기 추모식(9일 동구청 앞)에서 말했다.“우리는 끝까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의 이름을. 우리 가족들의 삶을.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그 누구도 잊게 두지 않겠습니다.”유족들이 요구한 ‘6·9학동참사 희생자 추모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안’(추모 공간 운영과 피해자 심리치료 지원 등)이 2일 동구의회 기획총무위원회에서 가결됐다. 10일 본회의 의결을 남겨 두고 있다.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