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김남주(1945~94) 시인. 한겨레 자료 사진광고유신 반대 투쟁을 벌이다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고 김남주 시인이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한대균)는 2일 김 시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 재심 선고기일에서 김 시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김 시인이) 구금돼있는 동안 폭행, 협박 등 가혹 행위에 의해 수사가 이뤄졌다는 게 기본 사실”이라며 “반공법 위반에 대해선 검찰에서도 무죄를 구형했고, 여러가지 증거를 검토해봐도 무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광고김 시인은 1978년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목표로 결성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준비위원회에 가입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듬해인 1979년 10월 경찰에 연행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남민전을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단으로 몰았고 수사 기관은 관련자를 고문하고 사건을 조작했다. 경찰은 고문과 협박을 통해 김 시인의 허위 자백을 유도한 뒤 유신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고, 법원은 1980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는 수감 생활 중 첫 시집인 ‘진혼가’ 등을 펴내기도 했다. 형집행정지로 1988년 12월 풀려난 김 시인은 1994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김 시인의 유족은 과거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이뤄졌다며 2024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지은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원은 2024년 10월 유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광고광고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은 앞선 정부 차원의 조사 등을 통해 명예가 일부 회복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6년 3월 김 시인 등 남민전 사건 관련자 29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바 있다. 경찰청과거사위원회도 같은해 9월 남민전 사건에 대해 “남민전 사건이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 위기를 조장하고 언론보도의 오보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