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전교조·차별금지법제정연대·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무지개행동 등 132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1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의 ‘혐오·차별 표현 대응 가이드북’에서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삭제한 것을 비판하고 이를 복구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참석자가 무지개색 우산을 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광고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일련의 5·18 조롱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혐오·차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이드북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혐오·차별에 대응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그 혐오와 차별에 가장 취약한 집단 가운데 하나를 제외한다니 말이다.첫째, 성소수자는 학교에서 보호가 필요한 대표적인 집단이다. 이런 가이드북은 혐오와 차별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동안 국내외 여러 연구는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특별히 취약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의 우울 증상 의심 비율은 69.0%에 달했다. 17.4%가 탈학교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학교 환경(25.3%), 괴롭힘과 따돌림(22.8%)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교사나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도 각각 31.2%, 60.0%에 달했다. 혐오 표현과 차별을 연구할 때는 보호가 필요한 대상집단(target group)을 설정한다. 성소수자는 이주자, 장애인, 여성 등과 함께 주요 대상집단이었다. 개인적으로 혐오·차별에 대해서 15년 넘게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단언하건대, 혐오·차별 관련 지침이나 안내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이 전무한 경우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가장 취약한 집단을 빼놓고 혐오·차별에 대응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광고둘째, 기존의 성과를 거꾸로 되돌리는 명백한 후퇴다. 혐오·차별 가이드북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되는 작업이 아니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혐오·차별에 대한 연구 성과와 교육자료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러 인권단체는 여러 차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하여 그 심각한 현실을 드러냈고, 관련 대책을 촉구해왔다. 교육부 가이드북의 초안을 제공했다고 알려진 서울시교육청 역시 수차례 혐오·차별에 관한 안내서와 교육자료를 발간했으며, 성소수자가 제외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특정한 집단을 제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이한 대응 정도로 선해되기 어렵다. 실제로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가 제외되었다는 결과 자체가 의도적인 배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셋째, 현행 법령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혐오 표현을 형사처벌할 것인지 여부는 여러 나라에서 논쟁적인 문제지만,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대한 합의는 확고하다. 우리나라도 2001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 사유 중 하나로 명시했고, 교육 현장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과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해야 할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2017년 개정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혐오적 표현 금지가 아예 명문화되기도 했다.광고광고‘논란의 소지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혐오·차별에 대한 대응이 미뤄져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반대 민원이 있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교육과정에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예방교육 실시, 인식 개선, 혐오·차별 금지 교칙 마련 등을 요구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여러 정책보고서에도 이 요구사항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부가 귀담아들어야 하는 바로 그 ‘민원’이다. 이 민원은 무시하고, 성소수자가 포함되면 안 된다는 민원만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오히려 이런 현실은 이 가이드북이 필요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학교 현장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을 보호하려면 학교 구성원들이 성소수자 혐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가이드북은 뜻있는 교사들이 부당한 민원에 맞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광고교육부가 혐오·차별 대응 가이드북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혐오·차별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지 15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첫발을 내딛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래서 더 잘 만들어야 한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려는 모든 학생과 교사,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논란을 피한다는 이유로 특정 집단을 제외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혐오·차별 대응 가이드북이 그런 오명을 쓰고 발간될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