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북디자이너의 세계 l 창립 20주년 맞은 워크룸 대표 김형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면서 일해야” 자기 취향 잘 알고, 관성은 깨야 3년 전 주4일제 도입 뒤 매출 상승 광고포스터 디자인부터 전시 기획, 브랜딩과 북디자인까지 종횡무진하는 김형진 대표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 본인 제공 광고중학교 3학년까지 하루 세시간씩 한국유도원에서 훈련한 유도 유망주였다. 하지만 유도 선수나 경호원으로 살아갈 미래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해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해 석사까지 마친 뒤 출판사 안그라픽스에 디자이너로 취업했지만, 야근과 주말 근무를 갓 태어난 아이의 육아와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박활성 편집자, 이경수 디자이너 등 동료들과 함께 차린 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광고광고 김형진 대표의 이력만큼이나 워크룸의 행보도 독특하다. 2006년 문을 연 워크룸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포스터와 전시 기획, 브랜딩 등으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디자인 스튜디오로서는 이례적으로 출판사 ‘워크룸프레스’를 설립해 출판에 뛰어들었고, 2014년에는 문학으로 영역을 넓혔다. 문학 총서 ‘제안들’ 시리즈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으며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그래픽 부문을 수상했고, ‘사뮈엘 베케트 선집’으로는 파주북어워드 출판미술상을 받는 등 수많은 수상이 줄을 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단편소설집 ‘광장’을 펴냈고, 김 대표가 자신의 ‘우상’이라고 부르는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과 함께 임프린트 ‘작업실유령’을 운영하고 있다. 워크룸의 실험은 일하는 방식에서도 이어진다. 창립 때부터 야근과 주말 근무 없는 주5일제를 지켜왔고, 3년 전부터는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놀랍게도 주4일제 도입 이후 매출은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3명으로 출발한 스튜디오는 이제 디자이너 4명, 편집자 4명으로 성장했고, 서울 종로구 서촌에 근사한 사옥도 마련했다.광고‘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그래픽 부문을 수상한 문학 총서 ‘제안들’ 시리즈 포스터부터 브랜딩, 북디자인까지 종횡무진하며 젊은 디자이너들의 역할 모델로 꼽히는 김 대표가 좋아하는 디자인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면서 한 디자인”이다. “익숙한 작업일수록 우리는 질문 없이 관성적으로 반복하기 쉽잖아요. 이를테면 저는 표지를 만들면서 본질적으로 표지란 무엇인지, 표지가 왜 필요한지 질문하면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앞표지는 원래 본문을 보호하기 위한 종이였어요. 그러다가 서점 매대에서 경쟁하기 위한 마케팅 도구가 됐는데, 요즘 독자들은 대부분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잖아요. 온라인 화면에서는 책 표지 옆에 책 제목과 저자 등이 다 나와 있는데, 표지에 굳이 그 정보를 반복해서 넣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질문했죠.” 그 질문에서 출발해 그의 손에서는 제목을 쓰지 않은 책 표지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가 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아는 일이다. “예컨대 저는 파스텔톤을 싫어하거든요. 왜냐하면 그 안에는 대비, 즉 컨트라스트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을 뚜렷하게 추출해 나가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파주북어워드 출판미술상을 받은 ‘사뮈엘 베케트 선집’(워크룸프레스). 책 표지에는 제목이 없고, 책등에만 제목이 있다. 하지만 북디자인은 순수한 창의 노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창의적인 작업은 전체의 10분의 1 정도이고, 나머지 10분의 9는 반복적인 노동에 가깝다. 대개 한달가량 걸리는 책 한권의 작업에서 29일은 본문을 붙잡고 교정과 조판을 거듭하는 시간이다.광고 그럼에도 이 반복은 독자에게 축적되는 시각적 경험이자 디자이너가 감당해야 하는 공적인 책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 페이지에 같은 서체와 같은 밀도로 수백개의 글자가 들어가고, 그것이 수백 페이지에 걸쳐 반복됩니다. 독자는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그 글자의 형태와 간격, 밀도를 수없이 경험하게 되죠. 그래서 좋은 서체와 좋은 조판을 가진 책을 읽는 경험은 독자에게 좋은 시각적·미적 교육이 될 수 있어요.” 수많은 작업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의외로 “오늘 하는 작업”이다. “어제까지 했던 작업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 작업을 처음 시작하는 날 감정이 가장 크고, 그다음부터는 지루함과 고통의 반복이거든요.” 그렇다면 앞으로 그가 욕심내는 작업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커피 테이블 북’을 꼽았다. 크고 두꺼운 양장본에 예술 작품과 사진을 가득 담은 책이다. 해외 서점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높은 제작비 때문에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언젠가 아주 좋은 사진을 압도적인 해상도로 밀어붙인, 제대로 된 커피 테이블 북을 몇권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 이런 책을 디자인했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 ‘비평적 픽션’이라는 독창적 글쓰기를 통해 아파트와 중산층, 세대론과 시각 문화를 가로지르며 아파트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밝힌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등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김 대표는 2011년에 이 책의 초판을 디자인한 데 이어 올해 개정판까지 작업했다. 그는 “시차를 두고 같은 책을 작업한다는 건 언제나 특별하다”고 귀띔했다. 박해천 지음, 워크룸프레스(2026) 2025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의 ‘겨울 정원’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단편소설 5편을 담았다. 김 대표는 “북디자인을 한다는 건 이미 촘촘하게 채워져 있는 좌표값들 사이 빈 자리를 찾아내는 일이기도 하다”며 “어떠한 장식도 더하지 않고 같은 크기의 글자와 두가지 색만 사용해 모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아직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보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주란 등 지음, 은행나무(2025) 캐드펠 수사 시리즈 1∼21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로 수도원의 수사 캐드펠이 주인공이다. 표지는 주인공의 21개 초상화에서 눈 부분을 잘라내 다양한 색면과 함께 배치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김 대표는 “한 사람이 21개의 다른 표정을 짓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같은 주인공을 가진 시리즈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은 어렵다”며 “작업을 마쳤을 때는 확신이 없었는데 에스엔에스에서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다”고 전했다.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등 옮김, 북하우스(2024∼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