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30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구보야마묘지에 ‘간토대지진순난조선인위령비’가 서 있다. 광고‘쇼와 49년(1974년) 9월 1일, 소년 시절 목격한 한 시민이 세움.’ 30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구보야마묘지의 ‘간토대지진순난조선인위령비’ 뒤쪽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축구장 18개 크기 대규모 공동묘지 한 켠에 작고 소박한 돌기둥 모양으로 세워진 조선인 위령비는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비석 앞에는 빗물로 가득 채워진 두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비석 옆으로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으로 여겨진 사람들이 살해됐고, 그 수가 6천명을 넘는다고 한다”는 안내문이 비에 젖은 채 놓여 있었다. 이 위령비는 간토대지진 당시 초등학생이던 일본인 이시바시 다이지가 조선인 학살을 목격하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던 후회와 안타까움을 담아 1974년 세웠다. 그는 대지진을 피해 가족과 함께 대피하다가 구보야마 비탈길에서 전신주에 굵은 밧줄로 묶인 조선인 주검을 봤다. 이후 학살당한 조선인 위령비 건립을 요코하마시장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곳에 직접 위령비를 세웠다. 현재는 일본 시민단체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리고 추모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가나가와 실행위원회)가 그의 뜻을 이어 이곳을 관리하며 해마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가나가와실행위원회 쪽은 “간토대지진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사실이 지금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이름이나 살해된 이유도 밝혀지지 않은 채 ‘존재조차 없었던 일’로 치부됐다”며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이 평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도 9월5일 이곳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식이 열린다. 10여m 떨어진 곳에는 간토대지진 당시 요코하마에서 숨진 일본인 등 희생자 3300여명을 위한 거대한 합장묘가 마련돼 있다. 이날 합장묘 봉분을 벌초하던 구보야마묘지 관리인은 “평소에는 조선인 위령비를 찾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지만 시민단체 사람들이 주변을 관리해 항상 단정하게 유지된다”고 말했다.광고30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구보야마묘지에 ‘간토대지진순난조선인위령비’ 뒷면에 ‘쇼와 49년(1974년) 9월 1일 소년시절 목격한 한 시민이 세움’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간토대학살은 1923년 9월1일 일본 수도권인 간토지역에 규모 7.9 대지진의 혼란 속에 일본 군·경, 자경단이 죄 없는 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 수천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일본인 집에 불을 지른다”는 등 유언비어를 빌미로 참상을 벌였다. 요코하마는 주요 조선인 학살 피해지이면서도 일본 정부 공식 문서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출간된 책 ‘가나가와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관계 자료’에서 간토대학살 당시 요코하마시 등에서 살해당한 조선인 145명 직업과 나이, 피해 장소와 시각이 적힌 가나가와현 문서가 공개했다. 이 가운데 14명은 이름도 확인됐다. 이 책은 재일 역사학자 고 강덕상(1932∼2021) 선생이 2013년 찾아낸 자료를 바탕으로 야마모토 스미코 가나가와현 실행위원회 대표가 강 선생 사후 공저 형태로 출간했다. 광고광고 간토대학살이 일어난 지 103년이 흘렀지만 일본에선 역사적 잘못을 부정하는 행위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 지사는 지난 8일 올해도 간토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017년 이후 10년째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과거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31일 일본 참의원(상원) 회관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시가키 노리코 입헌민주당 의원 등 한·일 국회의원들이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과 공식 사과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간토대학살 희생자 고 조권승씨 유족인 조광환씨와 학살을 목격하고 살아남아 당시 상황을 증언했던 고 문무선씨의 유족 윤봉설씨가 함께 참석했다.광고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