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짬] 창작 무용극 무대에 선 이홍철 변호사이홍철(오른쪽)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뒤 파트너 김수영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홍철 제공 광고지난 19일 저녁 서울 남산 중턱에 있는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특별한 경력의 춤꾼이 올랐다. 법조인으로 40여년을 살아온 이홍철 법무법인 게이트 대표변호사다. 그는 이날 자신이 극본을 쓰고 사비 1억여원을 들여 제작한 창작무용극 ‘어느 판사의 슬픔과 기쁨’에 직접 댄서로 출연했다. 67살의 나이에도 젊은 프로 댄서들의 화려한 춤사위에 호흡을 척척 맞춰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학 친구 김태훈 열사 죽음에 충격 “법조인 되어 실천에 나서겠다” 다짐 한기택 판사와 ‘판사 서명운동’ 주도 연구 모임 ‘우리법연구회’로 이어져광고 이날 공연은 민주화를 외치며 몸을 던진 김태훈 열사와 사법부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고 한기택 판사를 기리는 무대였다. 김태훈 열사는 이 변호사의 고교, 대학 친구였다. 그는 1981년 5월27일 서울대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주년 침묵 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경찰에게 구타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친 뒤 도서관 6층에서 몸을 던졌다.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던 이 변호사는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겁이 많아 행동에 나서진 못했죠. 태훈이를 보고 ‘법조인이 돼서 사명감을 실천해야 할 때가 오면 나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울대는 2022년 8월 김태훈 열사에게 명예졸업증을 수여했다.광고광고 그같은 다짐을 법관이 되어 함께 실천한 친구가 한기택 판사였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와 사법연수원 13기 동기였다. 한 판사는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 이광범 법무법인 엘케이비(LKB)·평산 대표, 김종훈 변호사 등과 함께 1988년 6월 ‘제2차 사법파동’의 출발점이 된 판사 서명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30대 안팎의 젊은 판사들은 전두환 정권에서 사법부를 이끈 김용철 대법원장 등 수뇌부가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들어선 6공화국에서도 아무런 자기반성 없이 자리를 지키는 것에 반대했다. 한기택 판사는 이광범 대표(변호사)와 함께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 초안을 작성했다. 성명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사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되며 대법원의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서울민사지법 배석판사였던 이 변호사는 서울민사지법과 서울가정법원의 판사들을 전화로 불러내 서명을 받았다. 이어 법원 기자실을 찾아가 서명운동의 취지를 알리는 약식 기자회견을 했다. 이 내용은 석간과 다음날 조간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서명은 순식간에 전국 판사 430명으로 확산했다. 당시 법관 정원은 1000명이 채 안 됐고, 부장판사 이상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독 및 배석판사 이하 법관들은 대부분 참여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이 시국사건 재판을 위해 ‘특별 관리’한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은 전원 불참했다(조희대 대법원장이 여기에 속했다). 법관 사회의 여론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김용철 대법원장은 즉각 사퇴했다. 이 변호사는 37년 동안 보관해온 서명 원본과 관련 자료를 지난해 법원도서관에 기증했다. 광고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판사들은 1989년 ‘우리법연구회’(2018년 해산)라는 연구 모임을 만들었다. 법관이 좋은 재판을 하려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권위주의 시대의 법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이 변호사는 1995년에 총무로 선출됐다. 한 판사는 2003년 회장을 맡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법관의 본분이었다. 한 판사는 고등부장판사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된 2005년 7월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 동료들은 그를 “목숨 걸고 재판한 판사”라고 불렀다. 이 변호사는 “한 판사는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고 법정과 기록을 붙든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공연에는 서명운동에 참여했던 유남석 전 헌재소장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야변호사 출신인 김선수 전 대법관, 이성보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참석해 한 판사와의 추억을 되새겼다. 이 변호사의 사법시험 동기와 선후배 법조인, 고교 동창, 춤을 좋아하는 일반인 등 지인이 고루고루 참석했다. 두 친구 기리는 무용극 극본 직접 써 사비 1억 들여 제작…댄서 출연까지 “그들의 가치 있는 삶이 울림 주기를” 이 변호사가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동유럽 여행에서 우연히 왈츠 시범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였지만, 2021년 김태훈 열사 40주기를 앞두고 막연히 공연을 구상하다가 코로나19 등으로 미뤘는데, 몇년 후 댄스뮤지컬 아이디어가 떠올라 취미는 또 다른 ‘본업’이 돼버렸다. 2024년 첫 공연을 올렸고, 이번에 한 판사의 삶과 판사 서명운동을 더해 작품 스케일을 더 키웠다. 그는 우리 사회가 춤을 삶에서 즐기는 계기를 만들고자 춤의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광고 “법조인은 사회에서 많은 권한과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더 희생하고 더 선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 적이 많았죠. 이번 공연을 통해 법조인이 어떤 사명감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되새겨 보고 싶었습니다.” 40여년 전 친구의 죽음 앞에서 품은 다짐이 1988년 판사 서명운동과 우리법연구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도 젊은 판사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5월 ‘12·3 내란’과 ‘이재명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담은 칼럼(지리산이 그립다)을 ‘법률신문’에 기고했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에 법치주의의 위기가 닥쳤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도, 구속취소 결정을 한 판사도 모두 내 사법연수원 제자였고, 야당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파기환송 판결을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도 내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교수 생활을 같이 하면서 내가 존경했던 분이었다. 얽히고설킨 기구한 인연을 맞닥뜨리매 내 가슴 속에는 칼바람이 일었다. (중략)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혹독하던 유신시절이나 군부독재시절 법관들은 힘에 부치는 불의를 보면 사표로써 뜻을 표했다. 그렇지 않은 법관도 최소한 부끄러움은 알았다.” 이 변호사는 공연을 마친 뒤 “두 친구가 보여준 것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였다”며 “법조인들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이홍철(오른쪽) 변호사가 지난 19일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서 파트너 김수영씨와 공연을 하고 있다. 이홍철 제공
“법조인들이 가져야 할 사명감, 춤으로 되새겨 봅니다”
[짬] 창작 무용극 무대에 선 이홍철 변호사 지난 19일 저녁 서울 남산 중턱에 있는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특별한 경력의 춤꾼이 올랐다. 법조인으로 40여년을 살아온 이홍철 법무법인 게이트 대표변호사다. 그는 이날 자신이 극본을 쓰고 사비 1억여원을 들여 제작한 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