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조정래 작가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5번째 장편 ‘서리꽃’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해냄출판사 제공광고등장인물의 통절한 사연을 예감하고도 잠시 멈출 수밖에 없다. 책을 여는 ‘작가의 말’때문이다.“나는 꼼짝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대수술을 받으며 나의 내장 전부가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배를 30센티미터나 가르게 된 것이다.” “오목가슴에서부터 아랫배 끝까지” “찢겨지고 꿰매어져 있었다” “소름 끼치고 참혹해서 내려다볼 수가 없었다.”지난해 9월1일 복부대동맥 수술로 ‘큰 위기’를 모면했다는 조정래(83) 작가의 말이다. 한평생 ‘글 감옥’ 속 책상에 앉아 복부가 접히고 등쪽 대동맥도 휘면서 부풀어 터질 뻔한 “직업병”이란 게 의사의 진단이었다. 그해 2월 앞이 보이지 않고 혈압이 뚝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갔다. 전조였다. “그 지옥을 견디고 겨우 살아났으면 ‘글 그만 쓰라’는 의사의 경고와 충고를 충실히 따랐어야 한다”면서도, 작가는 30군데 봉합을 품은 채 하루 평균 8시간 15매씩을 써 사실상의 생애 ‘마지막 장편’을 내놓았으니, 서른 전후의 이재이와 윤소인이 사랑하고, 영영 또 사랑하게 될 2권짜리 ‘서리꽃’이다. 권력과 자본, 거짓과 탐욕으로 지배되는 이 시대 ‘늙은 작가’ 조정래의 유일한 사랑 노래가 이 소설의 본색이다.광고조정래 작가는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무한 탐욕의 자본과 국가 권력이 결탁해 시민의 삶을 파괴, 마멸하고 몰락하게 한다”며 “다만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사랑을 창조하고 찾게 되어 있고, 그 사랑은 막을 수 없다”고 작품의 저의를 설명했다. 이번 작품은 1970년 등단한 거장의 15번째 장편이자 68~69권째 신간이다. 그 사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으로 묶이는 ‘한국 현대사 3부작’은 1500만부 판매고를 기록했다. 최근 장편 ‘천년의 질문’(2019)과 ‘황금종이’(2023)는 각기 출간 이듬해 60대 도서관 이용자의 대출 1위를 기록했다. 그를 원로가 아닌 당대 작가로 호명해야 하는 이유다.작가는 이날 “이제 장편으로는 ‘서리꽃’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랑과 연애를 앞세운 첫 작품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시와 그림이 순수와 영혼의 시자(侍者)처럼 작중 전면화한 것도 전례 없어 시선을 붙든다. 말하자니, 시대 이념과 신념, 권력과 저항, 자본, 욕망에 의한 파란만장 근현대사와 개인사를 56년 동안 작가로서 탐문해 온 이가 여든 넘어 귀착한 지점이 사랑이요, 시심인 셈이다. 또한 사랑의 ‘영원한 현재’가 작가의 고교 시절 당초 꿈(화가)과도 결부되는 그림이겠다.광고광고한 대학 철학과와 회화과를 나온 이재이와 윤소인이 주인공이다. 2년 터울로 동아리 시화전을 준비하며 시를 쓴 선배가 재이, 그림을 맡은 후배가 소인이다. 애틋한 인연을 뒤로하고 재이는 유학을 떠나야 했고, 소인은 사업가 아버지의 자살 뒤 빚더미에 나앉는다. 5년 뒤 귀국한 재이와 소인의 재회가 소설의 몸통이다. 다만 그 몸통은 작가의 것처럼 순탄할 수 없다. 소인의 거듭된 불행 탓이다.어떤 원인도 개별적일 수 없는 불행과 죽음이 둘로 하여금 온전히 치유되리라는 ‘허황’한 가능성에 노작가는 모든 문장을 건다. 작중 중요하게 등장하는 반고흐의 그림을 보고자 수술 전 노구를 이끌고 유럽 현지 취재를 다녀왔고, 수술 퇴원 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원고지에 육필로 써나간, 작가의 말마따나 “내 영혼을 거쳐 나온”, 문장들이다.광고소설엔 아내 김초혜 시인의 시(‘내생’, ‘어머니’)가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용되어 있다. 두 동갑은 내년 1월 회혼을 맞는다. 작가는 “25살 결혼한 김초혜 외 다른 여자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완전히 픽션이다”고 농담했으나, ‘60년’은 영원과 다름없어 소설은 작가의 삶을 기웃하게 만든다. 전작 ‘황금종이’ 출간 때 작가는 “영혼과 내세에 관한 주제의 소설로 문학 인생을 마칠까 계획한다”고 예고한 적 있다. 당시 화두는 ‘종교’였으나, 막상은 ‘사랑’으로 한 거장의 장편 세계가 갈무리된다. 작가는 이제 “단편과 수상록을 쓰고, 붓글씨도 시작하려고 한다”며 “지금껏 100m 달리는 기분으로 투쟁하듯 문학과 대척해 왔다. 이제 소설 앞에서 좀 겸손해지고, 제 몸에 대한 자유도 좀 더 허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들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겠다는 마지막 소원은 아직 바꾸지 않았다.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