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이끈 주룽지(朱镕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98세. 로이터 연합뉴스광고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이끈 주룽지(朱镕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98.1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 등이 이날 주 전 총리가 오전 11시6분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숨졌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그는 칭화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대표적인 경제 기술관료로 꼽힌다.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경제위원회를 거쳐 상하이 시장과 당서기를 지냈고, 1991년 국무원 부총리에 오르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섰다. 이후 1998년 3월부터 2003년 3월까지 국무원 총리를 지냈다.신화통신은 이날 부고 기사에서 “주룽지 동지가 국무원 부총리와 총리를 맡았던 시기는 중국이 계획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던 중요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상하이에서 장쩌민 주석과 함께 일해 ‘상하이방’과 인연이 있었지만, 덩샤오핑이 능력을 높이 평가해 중앙으로 발탁한 개혁파 경제관료로 알려졌다.광고부총리를 역임하던 그는 1993년 인민은행장을 겸하며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고 물가를 잡아 중국 경제의 ‘연착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4년에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세원과 재정을 분리·조정하는 ‘분세제’ 개혁을 추진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 재정체제의 기본 틀을 닦았다.1998년 총리에 오른 뒤에는 국유기업 구조조정과 금융·재정·주택제도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 부실한 중소 국유기업을 정리하고 ‘철밥통’으로 불리던 평생고용 체제를 허물면서 수천만명의 도시 노동자가 해고되는 사회적인 고통도 뒤따랐다. 강한 추진력 때문에 ‘경제 차르’로 불리기도 했다. 반부패에 심혈을 기울여, 엄격한 청백리 관리의 상징인 ‘현대판 포청천’이라는 별칭도 뒤따랐다 .광고광고최대 업적으로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꼽힌다.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국내 경제·산업 개혁을 촉진하면서 중국이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할 기반을 닦았다.직설적인 화법은 그의 상징이었다. 그는 1993년부터 중국 경제 개혁에 착수했을 때 거세게 반대하는 세력을 향해 “100개의 관을 준비해라. 99개의 관은 그들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다”라며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일화도 있다.광고2003년 퇴임 뒤에는 공개 활동을 크게 줄이고 베이징과 상하이 등을 오가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출간된 <주룽지, 기자 질문에 답하다>와 <주룽지 연설실록>이 인기를 끌면서 부패와 관료주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개혁가를 그리워하는 ‘주룽지 열풍’이 일기도 했다.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주룽지 전 중국 총리 별세…시장경제 전환 이끈 ‘경제 차르’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이끈 주룽지(朱镕基) 전 국무원 총리가 12일 별세했다. 향년 98. 1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 등이 이날 주 전 총리가 오전 11시6분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숨졌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928년 후난성 창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