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광고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롤러코스피’(롤러코스터+코스피)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요동치는 국내 주식 시장의 지수를 보면서, 나는 신자유주의 시대 ‘개미’(소액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가 지닌 의미를 계속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주식 시장이란 대개 상류층·중상층의 활동 무대였다. 1991년,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주식 투자자의 총수는 약 440만명, 즉 전체 국민의 10% 정도였다. 주식 시장이 외환 위기 이후 요동치고 오랫동안 버티며 주가 반등을 기다릴 만한 시간과 자원을 갖지 못한 많은 개미가 떨어져나가면서 투자자의 비율은 한때 더 낮아지기도 했다. 1990년대의 투자자들은 대개 ‘잘사는 집안’의 출신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국내 주식 소유자들은 1442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정도 된다. 그야말로 ‘주식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광고 다른 분야에서 그렇듯이, 한국 주식 매매의 대중화는 유럽보다 미국의 방식에 훨씬 더 가깝다. 주식 펀드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퇴직연금이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주식을 보유한다. 유럽에서 그 비율은 대개 20% 안팎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개인 주식 계정을 운영하는 이들이 13% 정도다. 사실 십분 이해되는 상황이다. 노동자의 92%가 정규직이고, 평균적으로 28살에 이미 자가를 마련할 수 있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는, 굳이 위험천만한 주식 투자에 명운을 걸고 빚까지 내어가며 일확천금을 노릴 만한 이유는 별로 없다. 어차피 주가지수가 오르는 폭 이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대개 자원과 전문 지식, 시간을 충분히 가진 큰손이나 기관 투자자라는 것을 다들 안다. 하지만 한국은 20대의 43%가 비정규직이고 첫 주택 구매의 평균 연령은 46살이다. 결국 한국 젊은이들에게 ‘롤러코스피’나 외국 주식에 마지막 희망을 걸게 만드는 것은 ‘헬조선’의 현실이다. 지금 비록 자유주의 정권이 집권했음에도 이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동학개미, 서학개미가 되어 주식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광고광고 ‘주식 시대’는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구미권에서 실시된 일부 연구에 따르면 주식 매매와 보유는 정치적인 우경화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진다. 좌파 지지자들이 주식에 투자할 확률이 더 낮다는 점 외에도, 일단 투자를 시작한 이들 역시 ‘작은 자본가’ 입장에서 ‘기업 수익성’과 ‘주가’에 관심을 쏟다가 환경·노동에 대한 관심과 멀어지게 된다. 물론 주주로서 친환경 기업이나 부당 노동 행위가 없는 기업에 집중 투자를 하는 등 ‘진보 성향의 투자’를 시도해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소수에 국한된다. 이러한 효과가 무엇인지, 지난번 삼성전자 파업 때 합법적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향한 혐오와 노조 악마화의 경향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사실 큰돈을 벌 확률이 거의 없는 개미들은, 일단 본인들도 작지만 ‘자본가’가 된 이상 노동자의 결사권·파업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이해를 저버리기가 너무 쉽다. 하지만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악마화가 부당하듯, 한국 주식 시장의 개미들도 악마화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주식이라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이들은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들 역시 결국 피해자다. 하루에 적어도 1~2시간 이상 휴대전화로 주가를 확인하고, 주가가 내려가 손실을 보게 되면 신경안정제를 먹고 의사를 찾아가며 불면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것은, 내가 미국에서 직접 본 개미 투자자의 일상이다.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한데 투자자를 일분일초도 가만두지 않고 괴롭히는 불안만이 문제는 아니다. 잘못되면 투자는 투자자의 기본 인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광고 나의 시간과 자원이 이윤을 만들어내야 하는 ‘투자’에 계속 투입된다면, 결국 투자자로서 내 사회적 존재가 내 의식을 결정짓게 된다. 점점 모든 것을 ‘투자’의 차원에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대인 관계가 ‘투자’가 되면 나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옛 친구들을 그냥 잊게 된다. 오로지 ‘타산’에 기반한 대인 관계는 과연 얼마나 만족스럽고 얼마나 장기적일 수 있을까? 실패하여 돈을 잃은 ‘작은 자본가’는 동류들에게 더 이상 유용한 관계로 여겨지지 않으며 결국 소외되고 만다. 나의 시간이 ‘투자’의 대상이 된다면, 나는 ‘벌이’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연주회 관람이나 독서 같은 것에 어디까지 집중해서 즐길 수 있을까? ‘투자’에 종속되어 중독되는 개인은 결국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사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을 다 놓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경우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인생을 허망하게 허비하는 것일 뿐이다. ‘주식’으로 몰려드는 개미들을 탓할 수도 없다. 이재명 정부는 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으며 사실 소액 투자를 지속적으로 장려해왔지만, 복지국가를 향한 개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와 전월세 가격들은 여전히 오름세지만, 영구임대주택의 공급은 다수 서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못 된다. 보험료는 올라도 건강보험 보장률은 여전히 약 65% 수준에서 그다지 오르지 않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가장 뼈아픈 비정규직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직 비율은 거의 그대로다. 오히려 5년 전에 72.9%였던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수준은, 이제는 65.2%밖에 안 된다. 비정규직의 상황은 되레 열악해져가는 것이다.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마저 다수를 위한 가시적인 개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을 비롯한 수백만명의 국민이 각자도생의 차원에서 ‘주식’을 탈출구로 삼은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인가? 결국 개혁 정치의 부진은, 많은 이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주식 광풍을 부추기고 있다. 재분배가 잘 안되는 사회일수록 주식을 포함한 각종 투기는 개인에게 유일한 ‘기회’로 보인다.
개혁 부진과 주식 광풍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롤러코스피’(롤러코스터+코스피)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폭락과 폭등을 거듭하며 요동치는 국내 주식 시장의 지수를 보면서, 나는 신자유주의 시대 ‘개미’(소액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가 지닌 의미를 계속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