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나선 김민석(왼쪽부터)·송영길·정청래 후보. 연합뉴스 광고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최근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단연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는 ‘쇼츠’(짧은 영상)다.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은 요란하지만, 정책에 대한 치밀한 설명이나 세련된 비전 제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쟁자의 실수나 실언을 희화화하거나, 자기 진영의 짧은 ‘사이다’ 발언에 열광하는 찰나의 장면이 정치의 전부가 되어버린 듯하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현실 정치에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 현장에서부터 익숙하게 보아왔던 풍경이다. 합리적 토론의 장이어야 할 국회가 1분짜리 쇼츠 제작용 스튜디오로 전락하고, 자극과 선동에 반응하는 팬덤 정치가 국회와 정당의 주요 동인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우려를 갖게 한다.광고 ‘개혁’이라는 고결한 명분은 어쩌다 쇼츠로 대변되는 팬덤주의로 왜곡되었을까? 정치적 논쟁에 자주 호출되는 막스 베버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는 ‘카리스마의 변질’이다. 베버에게 카리스마는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개혁 초기에 작동하는 초월적이고 혁신적인 힘이다. 그러나 이 혁신적 열망이 세속적 권력 구조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치열한 가치와 비전은 사라지고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세속적 찌꺼기’만 남게 된다. 중세 가톨릭의 면죄부 매매를 비판하고 신의 뜻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했던 청교도들의 금욕적 소명의식이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창조했지만, 결국 물질적 이익 추구라는 ‘벗어버리지 못하는 외투’가 되어버렸음을 지적한 베버의 진단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도 주술과 숙취에 빠졌던 정권을 뒤집은 개혁의 카리스마가 일상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질되어 가는 비극을 유튜브 화면으로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광고광고 작금의 쇼츠 정치는 바로 이 변질의 결정판이다. 복잡한 현실을 분석하고 책임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생략한 채, 누군가를 악마화하고 자극적 카타르시스만을 선사하는 1분짜리 영상은 ‘탈주술화되어야 할 맹목적 우상’을 만들어내는 핵심 기제다. 개혁이라는 초월적 열망이 지지층의 도파민을 자극해 맹목적 팬덤을 끌어모으는 ‘자극의 상품화’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맥락이 삭제된 쇼츠 속 ‘사이다’ 감정은 정치인들의 관료적 이익과 결합하며 정치 전체를 베버가 말한 ‘철의 감옥’(Iron Cage)에 가둬버린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기치로 거대 권력을 획득한 정치인들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정치에는 무감각해진 채, 팬덤의 환호를 유지하여 당권을 지키는 정치적 이익에만 숨 가쁘게 움직인다. 진짜 논쟁과 숙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쇼츠가 대신하면서, 당내의 성찰적 비판이나 미래 비전을 향한 목소리는 ‘의리’와 ‘배신’이라는 누아르적 도식 아래 힘없이 묻혀버린다. 결국 초월적 개혁 열망으로 출발했던 정당은 정치인 개인의 기득권, 그리고 개혁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이 결합한 단단한 ‘강철 울타리’가 되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사실 ‘명분의 도그마화와 기득권화’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익숙한 이야기다. 조선 전기 성리학은 고려 말의 부패를 청산하려 했던 혁신적 보편 윤리였으나, 성리학의 주류 사림이 완전한 현실 권력을 쥐게 되자 변혁의 동력을 잃고 굳어버렸다. 정권 유지를 위해 제도적 의례와 껍데기뿐인 명분에 집착했고, 조금이라도 다른 해석을 제기하는 정치적 경쟁자들을 수도 없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매도하며 배척했다. 오늘날 우리 정치를 지배하는 쇼츠와 팬덤 정치 역시 이 ‘사문난적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광고 다시 한번 베버의 관점에 입각해 보자면, 진정한 개혁은 굳어진 ‘명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쇄신하는 ‘순례자적 태도’에 있을 것이다. 또한 신념의 순수성에만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의 회귀가 절실하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훈장처럼 앞세워 “닥치고 따르라”고 요구하는 팬덤 정치와 교조적 태도는 진정한 개혁적 정체성이 아니라, 베버가 그토록 경계했던 ‘우상 숭배’이자 ‘맹목적 도그마’일 뿐이다. 어지러이 흘러가고 있는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부디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