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클립아트코리아광고이서윤 | 사법연수원 교수·판사 타국 기술 의존도에 대한 논의는 주로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왔고, 개인의 권리 침해를 문맥으로 한 논의는 좀 더 변두리에 머물러 있었다. 타국 기술이나 서비스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를 최근까지는 찾아보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자체와 관계없는 개인 행위와 해당 서비스 공급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를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기도 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가 범법자에 대한 인터넷 연결을 중단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는가? 국가에는 행정벌 내지 형벌권이라는 효율적 수단이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조차 없다.한편, 자국의 영향력 밖에 있는 특정인의 행위를 제재하고자 할 때, 위와 같은 전통적 수단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자국 기술에 대한 타국의 의존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국 기업에 대한 행정명령을 통해 압박 대상의 메일 계정을 갑자기 모두 폐쇄해버린다거나, 결제 수단에 대한 접근을 봉쇄한다든가,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광고일례로, 국제형사재판소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대하여 지난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제재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제재는 재판소의 특정 인물들을 금융과 행정적 제약에 노출시켰고, 실제로 일부 관계자들은 은행 계좌 등 일상적인 업무 수행에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필자가 국제형사재판소에 근무하던 시절 선출된 카림 칸 검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이메일 계정을 정지당하기도 했다.특정 기업이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면 기술 생태계 전체가 그 기업의 표준과 규격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마련이다. 시장 참여자들로서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술을 기준으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업자가 속한 국가의 법적, 정치적 결정이 전세계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함께 커진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국민의 실질적인 활동 공간이 법적으로는 자국에 존재하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이미 여러 국가의 관할권이 중첩되는 영역에 놓이게 된다.광고광고인공지능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업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게 되면서 기술 주권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국산 인공지능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인공지능의 자립 수준을 평가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제품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술적 가치사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모델의 개발에는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고,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다. 학습된 모델을 실제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가 필요하며, 그 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개발 도구 역시 필요하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기술 자립도를 평가하려면 좀 더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물론 현대의 복잡한 기술 체계에서 완전한 자급자족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만, 핵심적인 기술과 인프라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가 최소한의 선택권과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를 갖추어야 한다. 어떤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특정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대체할 수 있으며, 외부의 공급망이 차단되더라도 핵심적인 국가 기능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지원하는 정책이 중요한 이유이다.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