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도는 일출 때도 좋지만 일몰 때도 근사하다. 다리 너머로 붉은 기운이 낭만을 부른다. 최갑수 제공 광고먹는 얘기 하다 문득 떠난 여행 도착하자마자 돼지불고기 흡입 유배객 정약용의 흔적 되짚고광고 술잔 나누며 “노는 것도 실력” 여행의 시작은 이 한마디였다. “인생 뭐 있냐,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는 거지.”광고광고 나와 요리사, 시나리오 작가는 어느 날 서울 무교동의 한 술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치, 날씨,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도 끝은 늘 먹는 이야기로 모였다. 탕수육, 민어회, 오리탕, 만두, 파스타, 스테이크, 냉동 삼겹살…, 먹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결론이 난 거다. 요리사가 말했다. “인생은 결국 맛있는 걸 먹기 위한 여정인 거죠.” 시나리오 작가가 말했다. “맞다. 인생 뭐 있냐,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는 거지. 다음주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내가 말했다. “그럼, 강진에 가자.” 그렇게 해서 오게 된 강진. 강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먹은 음식은 돼지불고기다. 강진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엄청난 인내력으로 휴게소 핫도그와 호두과자를 먹지 않기 위해 참아냈다. 강진에 들어섰을 때는 거의 아사 직전이었다. “뭐부터 먹을까?” 시나리오 작가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돼지불고기.” 요리사가 말했다. “지금 우리의 허기 지수로 봤을 땐 어떤 음식이라도 좋은 선택.”광고 병영면으로 달렸다. 병영면에는 병영성이 있지만 우리는 돼지불고기 거리로 말머리를 돌렸다. “일단 먹자. 강진도 식후경.” 병영 돼지불고기는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병영은 약 500년간 전라도·제주도 육군 총지휘부인 전라병영성이 있던 곳인데, 병마절도사가 새로 부임한 강진 현감을 대접하며 올린 돼지고기에서 시작해 이후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식당 거리가 만들어졌는데, 단품 구이가 아니라 10여가지 반찬이 딸린 ‘백반’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병영식이다. 우리는 가까운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실내에는 연탄불 위에서 연신 피어오르는 달지 않고 칼칼한 돼지불고기의 정직한 냄새가 가득했다. 맛있는 음식은 먼저 냄새로 사로잡는다. 쌈도 푸짐하게 나왔는데 민들레도 있었다. “와, 민들레에 불고기를 쌈 싸 먹는 곳이 강진이구나.” 요리사가 감탄했다. 고추장 본연의 매콤함과 불 향이 묵직하게 배어 있는 석쇠 불고기는 강렬한 자극은 없었지만 질리지 않고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났다. 식당을 나와서는 좀 걸었다. 1653년 제주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과 그 일행이 1656년부터 7년간 이곳 병영에서 살았다. 하멜은 나막신을 만들어 팔고 남의 집 잡일을 해주며 생계를 이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골목의 낮은 돌담에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있는데, 빗살무늬로 어긋나게 쌓은 방식이라 ‘하멜식 담쌓기’라 불린다. 350여년 전 파란 눈의 이방인이 서성였을 골목을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차곡차곡 돌을 쌓아 올린 병영성. 역사의 흔적이 감동을 준다. 최갑수 제공 병영면에는 하멜이 남긴 흔적이 있다. 일명 ‘하멜식 담쌓기’로 불리는 담장이다. 빗살무늬로 어긋나게 쌓은 방식이다. 최갑수 제공 오후에는 강진읍에 있는 사의재에 들렀다. 1801년 겨울, 유배객 정약용이 강진에 도착해 처음 몸을 부린 곳이 읍내 동문 밖 주막의 골방이었다. 오갈 데 없는 죄인을 거둬준 이는 주막 할머니였다. “어찌 그리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주모의 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 다산은 골방에 ‘사의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네가지를 마땅히 바로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대학자를 일으켜 세운 것이 동료 학자도 임금도 아닌 주막 할머니였다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광고 “다산초당에도 가보자.” 시나리오 작가가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웠지만 “저녁의 술잔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하자”며 시나리오 작가가 우리를 독려했다. ‘역시 시나리오 작가다운 임팩트 있는 대사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숲길은 나무뿌리들이 바닥에 그물처럼 드러나 있어 ‘뿌리의 길’이라 불린다. 다산은 사의재와 보은산방을 거쳐 1808년부터 이 초당에 머물며 해배될 때까지 10년을 살았다. 그 골방 같은 세월 동안 ‘목민심서’를 비롯해 500여권의 책을 썼다니, 절망을 다루는 데도 급이 있는 법이다.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 왔을 때 처음 묵은 곳. 정약용이 사의재로 이름 붙였다. 최갑수 제공 다산초당에 걸린 다산 정약용의 초상화. 최갑수 제공 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길도 걸었다. 다산이 벗이었던 백련사의 혜장 스님을 만나러 다니던 길이다. 학자와 승려는 이 길을 오가며 차를 나누고 밤늦도록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유배객에게도 좋은 술벗, 아니 차벗이 있었던 셈이다. 걸어서 30분 남짓한 길은 동백숲 그늘이 깊어 한여름에도 서늘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더 부지런해졌다. 읍내의 술집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술집에서는 마량 앞바다에서 잡은 갑오징어를 먹었다. “철이 약간 지났지만 아직 맛있어요.” 주인이 회 접시를 테이블에 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툼하게 썬 회는 씹을수록 단맛이 돌았고, 먹물을 넣고 볶은 요리는 접시째 새까맸다. 입술이 까매진 서로의 얼굴을 가리키며 웃느라 술이 줄지 않았다. 잔이 돌수록 이야기는 20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우리가 이러고 놀아도 되는 거냐?” 누군가 물었고, 누군가 대답했다. “놀 수 있을 때 노는 것도 실력이다.” 하나 마나 한 소리에 다들 웃었다. 여행지의 밤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마음껏 해도 되는 시간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바지락 해장국을 먹었다. 강진만 바지락이 우르르 들어간 국물이 쓰린 속을 슬슬 달래주었다.백련사 오솔길 들머리가 고즈넉하다. 최갑수 제공 백련사 풍경. 최갑수 제공 아침을 먹고서는 가우도로 건너갔다. 강진만 한가운데 떠 있는 섬인데, 양쪽 육지에서 출렁다리가 놓여 있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섬을 한바퀴 도는 해안 산책로 ‘함께해길’은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걷다 보면 바다 건너로 월출산 능선이 아득하게 보인다. 섬 꼭대기에는 거대한 청자 모양의 전망대 탑이 서 있다. 그 꼭대기에서 출발한 청년 하나가 짚트랙을 타고 머리 위로 쌩 지나갔다. 우리는 타지 않기로 만장일치를 봤다. 어젯밤의 술이 아직 몸속 어딘가에서 출렁이고 있었으므로. “하나만 더 먹고 가자.” 요리사가 말했다. “뭐 먹을까?” 시나리오 작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행 작가인 네가 결정해라’ 이런 눈빛이었다. “한정식 먹자. 이런 건 여행 와서 먹는 거야.” 요리사와 시나리오 작가는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고 한참이 지나서야 상차림이 끝났다. 홍어삼합에 전복찜, 보리굴비, 육회, 그리고 이름을 미처 다 외우지 못한 전과 나물들이 상 위에서 자리다툼을 벌였다. 시나리오 작가가 상을 내려다보더니 “미쳤네, 미쳤어” 하고 속된 말로 중얼거렸다. 예전에 강진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강진엔 맛난 국숫집이나 만둣집은 없어요?” 그가 대답했다. “그걸 왜 먹어요. 철마다 이러커니 맛난 것들이 많은디.”가우도로 이어지는 다리. 최갑수 제공 월출산과 강진 들판. 최갑수 제공 최선을 다해 한정식을 ‘클리어’하고 서울 가는 길, 요리사가 말했다. “강진 또 오고 싶다.” 내가 말했다. “다음에 오면 보리밥도 먹고 회춘탕도 먹자. 짱뚱어탕도 먹어야지. 병영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시나리오 작가가 말했다. “오십 넘은 위(胃)에는 좀 부담스럽겠지만, 여행이니까 괜찮아. 일상으로 돌아가면 조금씩 먹으면 되니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가는 말도 꼭 대사처럼 하는군. 그래서 멋있게 들리는 건가?’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강진의 풍경을 바라보다 사의재 주막 할머니가 다산에게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찌 그리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지역 전통 식당 청자골종가집 한상. 최갑수 제공 B급 음식 병영면 돼지불고기는 ‘배진강’(061-432-1025)과 ‘설성식당’(061-433-1282)이 전통의 강자다. 메뉴는 백반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백반이 상다리를 위협한다. 서른가지 가까운 반찬이 연초록 그릇에 담겨 나오는데, 중심은 단연 연탄불에 구운 돼지불고기다. 매콤한 양념이 밴 고기에 은은한 불 향이 스며 있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갈치속젓, 콩잎장아찌 같은 남도의 젓갈과 장아찌류도 수준급이다. 월요일에 쉬고, 끼니때면 줄이 길게 늘어서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가는 것이 좋다. 청자골종가집(061-433-1100)은 강진에서 유명한 한정식집이다. 여행 중엔 종종 이런 집을 찾게 된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해태식당’(061-434-2486)도 유명하다. 강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음식을 꼽으라면 ‘회춘탕’이다.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는 닭, 오리, 문어, 전복 등이 들어가 있었다. 육수는 엄나무, 느릅나무, 당귀, 꾸지뽕, 가시오가피, 칡, 헛개나무, 황칠나무 등 10여가지 약재로 만든다고 했다. 아무튼 먹은 만큼 젊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강진 읍내에 자리한 ‘은행나무’(061-433-2366)에서 먹었다.‘은행나무’에서 파는 회춘탕. 최갑수 제공 ‘목리장어센터’에서 파는 장어 요리. 최갑수 제공 ‘왕성식당’의 바지락해장국. 최갑수 제공 이곳들 말고도 강진에는 먹을 곳이 널려 있다. ‘강진만갯벌탕’(061-434-8288)은 짱뚱어탕을 잘한다. 갯벌에서 잡은 짱뚱어를 갈아 우거지와 함께 끓여낸 음식이다. 아침 해장으로 좋다. 강진 목리 장어는 일제강점기 장어통조림 공장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남해 바다와 탐진강이 만나는 풍천에서 자라 살이 탄탄하고 쫄깃하다. 목리에는 1957년 개업해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목리장어센터’(061-432-9292) 등 장어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다. 강진 읍내에 자리한 오케이식당(061-432-8072)은 현지인들이 가는 백반집이다. 아침 식사를 하기에 좋다. 앉으면 반찬 14~15가지가 담긴 쟁반이 놓인다. 즐겨 찾는 집이다. 최갑수 여행작가
“인생 뭐 있냐, 맛난 거면 되지”…세 아재의 먹부림 유람기
먹는 얘기 하다 문득 떠난 여행 도착하자마자 돼지불고기 흡입 유배객 정약용의 흔적 되짚고 술잔 나누며 “노는 것도 실력” 여행의 시작은 이 한마디였다. “인생 뭐 있냐, 맛있는 거나 먹으면 되는 거지.” 나와 요리사, 시나리오 작가는 어느 날 서울 무교동의 한 술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