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인천공항 환승구역 최장 구금 피해자’ 응고마의 습하고 좁은 반지하방(인천 연수구)에선 420일간 함께 갇혀 있던 여행가방이 여전히 짐을 풀지 못하고 있다. 변호인들이 선물한 ‘인도적 체류 허가 축하’ 꽃다발이 정리되지 않은 짐들 사이에 섞여 있다. 이문영 기자 광고인천공항 환승구역 최장 구금 피해자가 난민 인정 신청 6년5개월 만인 지난 13일 인도적 체류 허가(G-1-6)를 받았다. 응고마(가명·52)는 “내 나라 아닌 곳에서 체류자격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어린 동물의 처지와도 같았다”며 고된 시간을 회고했다. 지난 20일 그를 만난 인천 연수구의 반지하방은 앉을 자리 없이 짐들로 가득했다. 생활고로 지상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그는 최근 같은 건물의 ‘곰팡이가 만발한 지하 원룸’으로 내려왔다. 환승 구역에 갇혀 1년2개월 동안 끌고 다녔던 여행가방이 방에서조차 짐을 풀 공간을 얻지 못하고 계속 떠돌고 있었다. “전 세계 어디에나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난민들이 있습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여기 한국까지 밀려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광고 응고마는 내전과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민주콩고의 북키부 출신이었다. 북키부는 스마트폰 저장 장치에 사용되는 콜탄의 국제적 주산지였다. 그 사실이 그 땅을 전쟁과 비극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자금원과 광물 확보를 노리는 정부군과 반군, 르완다와 우간다 등 주변국, 미국 같은 서방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 살인, 방화, 강간, 납치 등의 전쟁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 딜러였던 응고마는 2017년 무장 민병대 연합민주군(ADF)의 콜탄 채굴과 군사훈련에 동원됐다. 정부군과의 전투 중 전선을 이탈해 도망쳤다. ADF의 일원으로 싸우다 사망한 친구의 가족은 응고마를 반군 모집책으로 여겨 그의 집을 불태웠다. 쌍둥이 형은 응고마로 오인 받아 살해됐다. 응고마의 다섯 자녀와 형의 아이는 지금까지 생사를 알지 못한다. 정부와 경찰도 그를 수배했다. “숨을 곳을 찾아 떠돌던” 그는 “르완다 국경을 넘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베트남을 거쳐” 2020년 2월15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은 팔라우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으나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여권을 분실”했다. 입국장에서 난민 인정을 신청했지만 입국과 난민 심사 모두 거부당했다. “떠올리기 힘들 만큼 처절했던” 환승구역 구금은 그렇게 시작됐다. 광고광고 응고마는 공항 의자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씻었다. “코로나19로 샤워실이 폐쇄돼 사람 뜸한 한밤중에 물을 받아 몸을 닦았”다. “승객들에게 말을 붙이고 친구가 돼 한 끼 밥을 얻어 먹었”다. “출국하던 사람은 귀국할 때마다, 환승했던 사람은 돌아와 재환승할 때마다 ‘아직도 여기 있냐’며 놀랐”다.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렸고 신경계 등의 건강이 악화됐다. “공항을 오가는 수많은 승객과 외교관들이 저를 봤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공항에서 노숙하는 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1년 넘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울던 미국인 여성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 상황을 밖으로 알렸습니다.”광고응고마는 20일 “내 나라 아닌 곳에서 체류자격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어린 동물의 처지와도 같았다”며 인천공항 환승구역 구금 당시를 떠올렸다. 이문영 기자 죽음을 피해 탈출한 응고마는 공항에서도 견디고만 있진 않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연락해 도움을 구했고, 국내 공익 변호사들과 연결됐다. 그들의 지원을 받아 인신보호 구제를 청구(2020년 7월)했고, 수용 해제(2021년 4월)가 받아들여져 풀려났다. 420일이라는 환승구역 최장 구금 기록을 쓰고 공항 밖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오랜 고통을 지나왔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의 구금은 공항 출국대기실(항공사들이 공동 운영한 옛 송환대기실)이 국가운영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응고마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나라가 걸어 잠근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난민 불인정 취소 소송(지난해 11월 대법원 기각)을 냈고, 환승구역 구금의 위법함을 법원에서 인정(2021년 8월)받았다. 국가배상 청구 소송도 제기(지난해 12월 대법원 기각)했다. ‘국가권력 남용은 인정하되 공무원의 자의적 행정구금에 대한 보상법률이 없다’는 논리에 맞서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진정(지난 3월6일)을 냈다. 유엔은 응고마 공항 구금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며 피해 배상과 재발 방지를 한국 정부에 권고(3월13일)했다. 권고를 근거로 변호인단은 국가배상 청구 재심을 제기(5월4일)했다. 응고마는 국가의 배상 거부를 국제사회에 올려 판단을 구한 최초의 피해자였고, 그 결정에 의지해 판결을 다투는 국내 첫 재심 청구인이었다.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콩고로 강제송환 되면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까닭은 그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응고마는 첫 난민 불인정 뒤 발생한 ‘새로운 상황’(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반군 M23의 북키부 점령)을 이유로 지난해 11월 난민 인정을 재신청했다. 지난 13일 ‘불인정’이 다시 통보됐다. 출입국·외국인청은 대신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난민으로 인정되긴 어렵다 하더라도 귀국 시 생명 및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본국의 상황이 호전돼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응고마는 한국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광고 현재 응고마의 가장 큰 곤경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공항 구금으로 악화된 건강과 불안정한 체류자격 탓에 일을 하지 못했다. “가끔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친구들이 있어” 하루씩을 버티고 있었다. 최근엔 헌옷 수거함을 들여다보다 주민 신고로 경찰 조사(훈방)를 받기도 했다. 그가 “체류를 허가해준 한국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했다. “한국은 난민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나라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난민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국가배상 재심 대리인단의 이상현(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위법한 구금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배상, 제도 개선은 개인의 회복적 정의뿐 아니라 여전히 구금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이 사회 전체의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단독] ‘인천공항 최장 구금’ 피해자 난민신청 6년 만에 ‘체류 허가’
인천공항 환승구역 최장 구금 피해자가 난민 인정 신청 6년5개월 만인 지난 13일 인도적 체류 허가(G-1-6)를 받았다. 응고마(가명·52)는 “내 나라 아닌 곳에서 체류자격 없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어린 동물의 처지와도 같았다”며 고된 시간을 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