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영화 ‘지느러미’. 에무필름즈 제공 광고‘더러운 얼굴은 애국심의 상징입니다.’ 22일 개봉한 영화 ‘지느러미’에는 이렇게 적힌 국가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이를 반영하듯 등장인물들 얼굴에는 시커먼 땟자국이 가득하다. 언뜻 코미디인가 싶지만, ‘지느러미’는 오염된 바다로 둘러싸이고 물이 부족한 근미래의 대한민국에 유전자 변이로 생겨난 ‘오메가’와 이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을 그린 어두운 에스에프(SF) 영화다. 빨간 화면 필터로 담은 불타는 듯한 바다와 지느러미가 생긴 사람들을 조악하게 모자이크한 사진, 단색조의 암울한 건물 배경 사이에서 온갖 색깔을 반짝이는 실내 낚시터 등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기괴하고 낯선 풍경들이 가득하다. 매트리스에 핀 곰팡이가 사람들을 공격하는 ‘다섯번째 흉추’(2022)를 만든 박세영(30)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 ‘지느러미’를 연출한 박세영 감독. 에무필름즈 제공 “요새 웰니스, 건강, 위생, 이런 주제가 핫하잖아요. 코로나를 계기로 지저분함이 죄악시되고, 건강이나 깨끗한 삶을 추구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압박이 생겼는데, 이런 게 실제로 윤리적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던 코로나 팬데믹 시절 느꼈던 감각, “의심과 공포가 가득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광고 박 감독은 ‘다섯번째 흉추’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지느러미’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차세대 시네아스트로 꼽힌다. 유학 간 아버지를 따라 간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영화보다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재봉틀을 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의 비(B)급 초기작들에 반해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했지만 그의 습작들은 “영화 같지 않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았다. 그랬던 그가 졸업 직후 동기들보다 빠르게 장편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건 예상과 반대로 어떤 공적 지원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제작 지원 공모에서 다 떨어졌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이 아이템으로는 지원도 투자도 받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사비를 들여서라도 그냥 찍자는 결론에 도달했죠.” 그렇게 제작비 1800만원으로 혼자 연출, 촬영, 편집, 제작까지 마쳐 ‘다섯번째 흉추’를 완성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국외 영화제에도 여러번 초청받았지만, 대중적인 기획과는 거리가 먼 ‘지느러미’ 역시 ‘맨땅에 헤딩’으로 홀로 작업해야 했다. 촬영을 마친 뒤 사라예보영화제에서 만난 프랑스 출신 제작자 필립 보베르와의 만남은 ‘지느러미’의 도약대가 됐다. 보베르는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더 스퀘어’(2017), ‘슬픔의 삼각형’(2022) 등을 제작한 유럽 예술영화계의 저명한 제작자다.광고광고영화 ‘지느러미’. 에무필름즈 제공 “영화제에서 ‘다섯번째 흉추’를 본 보베르가 차기작을 보여달라고 해서 ‘지느러미’ 가편집본을 보여줬더니 같이 편집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때부터 4년 가까이 신의 배치를 바꿔보고 추가 촬영을 하고 매주 상영회를 열면서 제작자·편집자와 토론을 했어요. 서로 다른 편집본만 300개 버전이 넘었죠.” 일을 시작하면 밤낮없이 매달리는 한국과 달리 “매일 산책도 해야 하고, 저녁밥도 2~3시간 동안 먹고, 짬짬이 유흥도 즐겨야 하는 유럽인들의 속도감에 맞추는 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고, 나도 나중에는 유럽화돼서 30㎏이나 살이 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못 받은 영화에 4년이나 투자해 함께 밤새 고민하고 토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공적 지원은 못 받았지만, 그에게도 지원군은 있었다. “‘다섯번째 흉추’는 이경미 감독(‘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님의 지지와 격려로 완성할 수 있었고, ‘지느러미’는 전고운 감독(‘소공녀’)님의 엔젤 투자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에요.”광고영화 ‘지느러미’. 에무필름즈 제공 요즘 박 감독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차기작 ‘누가 내 십자가를 훔쳐갔는가’의 후반 작업을 보베르와 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사비를 털어 촬영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광고 제작사의 일부 투자도 받았다. 올해 서른살이 된 박 감독은 “지금 구상을 시작한다면 ‘지느러미’ 같은 작품을 만들지 못할 것 같다”며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서른살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