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길을 찾아서 - 물리학자 장회익 경계를 넘어] 2화 생명이해와 메타과학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광고내가 ‘물리학’이란 학문의 마스터키를 얻자마자 이것이 놀랍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실감했다. 당시까지 내게는 전혀 미지의 영역이었던 ‘생명과학’이라는 새 학문 세계를 열어주는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53년, 생명과학계에서는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간 신비로만 여겨지던 생명의 유전 현상이 유전자를 이루는 디엔에이(DNA) 분자의 이중나선 구조를 통해 그 메커니즘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나는 중학생 때부터 가장 싫어하는 과목으로 ‘생물’을 꼽고 있었다. ‘생물’이란 원리를 이해해 나가기보다는 생소한 이름들이나 암기시키는 못된 과목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무렵, 생물학과는 거리가 먼 내게도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생명 현상의 바탕이 되는 유전자의 분자구조가 밝혀졌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발견에 참여한 사람 일부는 물리학자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물학에 완전 문외한이었고 또 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에 바쁜 나머지 여기에 관심 기울일 처지가 아니었다.광고그러다가 박사 논문을 마치고 시간 여유가 조금 생기면서 우연히 분자생물학에 관한 책 한권을 읽었다. 그런데 그 안에 굉장한 세계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새로 밝혀진 그 현상 자체도 놀라운 것이 사실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생물에 관해 완전 문외한인 내게 이것이 너무도 또렷이 이해가 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나는 책이 미처 말해주지 않는 바탕 그림까지 내 머릿속에 그려 나가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의 내 물리학 지식이 새로 태동한 분자생물학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조금 달리 말해 내가 그간 애써 마련한 학문의 마스터키가 제대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이제 ‘생명의 이해’라는 새 과제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이 무렵 내게는 또 한가지 선택해야 할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것은 귀국하여 국내에서 학문적 자립을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학문 여건이 좀 더 나은 미국에 남아 주위의 큰 학자들과 교류하며 역량을 키워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후 연구원을 하던 1969~1970년께 한국은 연구 여건이 매우 열악하여 적어도 국제적 수준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1970년대 미국에선 (이후 불행한 사고사로 더 유명해진) 이휘소 같은 한국 출신 물리학자가 최정상급 학자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선 물리학회 회장으로 있던 학자조차 열악한 연구 여건에서 프로젝트 수행에 어려움을 겪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하던 상황이었다.광고광고그러나 나는 박사후 연구원으로 1년간의 경력을 쌓은 뒤 곧바로 귀국했다. 일단 귀국하여 물리학 교육에 전념하면서 자유롭게 내 관심사를 추구해 보자는 심산이었다. 내 몸에 밴 한가지 자세, 곧 학문은 나 혼자라도 한다는 신념이 그렇게 이끌었던 것 같다.귀국해서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과제가 바로 물리학 교육, 더 나아가 과학 교육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교육만은 세계 그 어디 못지않게 여기서 잘해보자고 생각했다. 또 과학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도 외국에서조차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야가 있는데, 그게 바로 ‘메타과학’이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과학’이 자연 현상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메타과학’은 과학적 앎 자체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연과 그 인식 활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물리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일차적 이해가 어렵다기보다는 이를 설명하는 물리학 이론의 성격과 구조 자체를 파악하는 게 어려워서다. 그러므로 물리학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에게 잘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메타과학적 관점을 지니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광고메타과학은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높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일차적 관심사가 자연 현상의 탐구와 설명에 치우쳐 있으며, 이를 경쟁적으로 수행하는 일에 내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적인 연구 활동이 활발한 곳일수록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귀국 뒤 이러한 일차적 학문 활동을 경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게 바로 메타과학이었다. 이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내게 적합한 선택이기도 했다.사실 미국에서 하던 연구를 계속하려면 초대형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당시 국내엔 그만한 연구 인프라가 없었다. 과학기술연구소(KIST)에 훨씬 작은 것이 있었지만 접근성도 떨어지고 엄청난 사용료를 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메타과학을 하는 데는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았고, 무거운 강의 부담도 연구를 성장시킬 밑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좋은 강의는 메타적 사고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좋은 강의를 준비한다는 것이 곧 메타과학으로 나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 학문적 성향과도 잘 부합했고, 여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에 내 독자적 영역이기도 했다.한편 물리학이란 마스터키로 쉽게 입성하기는 했지만, 생명과학의 영역에서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디엔에이 구조와 기능을 다루는 분자생물학만으로는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결정적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결국 ‘생명인 것’과 ‘생명 아닌 것’ 사이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붙들고 십년 가까이 고심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생명이 하나하나의 생명체, 예컨대 세포 하나 토끼 한마리 또는 사람 한명 속에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생명체들은 이른바 ‘온생명’이라 불릴 더 큰 체계 안에서 그 유기적 일부로 작용할 때 생명으로서 기능을 할 뿐이지 그것 자체로서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광고이것은 놀라운 전환이다. 누구나 거의 무의식적으로 생명이란 살아 있는 개체 하나하나에 들어있으리라 생각해 왔는데, 이 생각을 바꾸어 생명은 오직 ‘온생명’이라는 더 큰 체계 안에 들어 있다고 하는 것은 혁명적 발상이다. 이것은 단순한 패러다임 전환이 아니라 이를 입증할 과학적, 그리고 메타과학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그간 나는 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납득시키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다행히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이들이 더러 있어서,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온생명’에 대한 논의를 넓혀 나가고 있다.이 밖에 물리학 안에는 메타과학을 통해 접근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과제 하나가 오래전부터 전해 오고 있다. 이른바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이다. 20세기 초 혁명적 새 이론인 양자역학이 출현하여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막상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이것은 대학 때부터 나를 몹시 괴롭힌 주제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대학원 양자역학 과목을 이수하면서, 양자역학은 이해하기에 앞서 일단 수용을 하고 문제 풀이 등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하는 과목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일단 가르치는 자리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되도록 더 잘 이해시켜야 하고, 그러자면 다시 양자역학에 대해 자신의 이해를 더 깊게 해야 한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결국 내 생애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지금도 주된 관심사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장회익 | 1938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30여년 교수로 일하다 퇴임하고, 지금은 충남 아산에서 살고 있다. 자유로운 사색을 통해 통합적 학문의 모습을 그려보는 ‘소요거사’로 지낸다. 물리학 말고도 과학이론의 구조와 성격, 생명의 이해, 동서 학문의 비교 연구, 온전한 앎의 성격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공부도둑’(‘공부 이야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등이 있다.
물리학의 황무지에서 ‘메타과학’ ‘온생명’ 새 길로
[길을 찾아서 - 물리학자 장회익 경계를 넘어] 2화 생명이해와 메타과학 내가 ‘물리학’이란 학문의 마스터키를 얻자마자 이것이 놀랍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실감했다. 당시까지 내게는 전혀 미지의 영역이었던 ‘생명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