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집필실 앞에 핀 코스모스. 김탁환 제공 광고 김탁환 | 소설가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씨를 뿌렸다. 폐교였던 집필실 마당에 꽃밭을 표시하는 말뚝을 박고 줄을 치며, 9월 이후부턴 꽃을 보겠거니 기대했다. 그런데 싹이 나고 줄기가 쑥쑥 올라오더니 6월 말부터 꽃봉오리가 맺혔고 7월에 들자마자 하얗고 빨갛고 보랏빛 나는 코스모스가 앞다투어 피었다.광고 읍내 숙소를 출발하여 꽃밭에 닿으려면 불협화음을 반드시 들어야만 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그늘에 의지하여 걷다 보면 도로 끝 묘목장에 이른다. 풀씨와 벌레를 쪼느라 바쁜 닭들은 땅을 향해 꼬꼬꼬 울다 말지만, 귀가 얼얼할 만큼 심하게 짖어대는 녀석들은 거위 다섯마리였다. 간식을 주며 웃는 얼굴로 대해도 불협화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짖는 건 좋지만 음정은 맞추라는 뜻으로 이름을 궁상각치우라고 지었다. 보름 전 출근길에 묘목장이 가까웠는데도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았다. 묘목들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켰고 거위뿐 아니라 닭들도 없었다. 묘목장에서 그들을 키우지 않기로 정한 것이다. 거위와 닭이 사라지자, 풀들이 놀랍도록 빨리 자랐다. 그 후로 고요가 깃든 묘목장을 지나가노라면, 불협화음에 두 귀를 막으며 인상을 쓰던 날들이 꿈만 같았다.광고광고 올 7월에도 ‘글로 피어나는 섬 이야기’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했다. 배를 타고 신안군 비금도와 도초도로 건너가선 2박3일을 보냈다. 비금초등학교와 도초초등학교에서 아침 9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수업을 했고, 저녁에는 따로 교사들과 섬 주민들을 만나는 시간도 가졌다. 2019년 처음 두 섬에 왔을 때, 눈부시게 매혹적인 곳은 염전이었다. 넓디넓은 해변의 소금밭은 숨길 것 하나 없이 단정하고 뜨거웠다. 특히 비금도의 대동염전은 1948년 무렵 450가구가 조합을 결성하여 만들었으며, 그중 일부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되기도 했다. 함께 돌보고 가꾸며 수확하여 나누는 마을 공동체의 상징이었다.광고 그때도 이미 태양광 개발에 대한 풍문이 섬을 휩쓸고 있었다. 섬 주민들은 늘어나는 인건비와 빚진 기계값을 감당하기엔 천일염 가격이 너무 낮다고 하소연했다. 이번에 가서 보니, 염전이던 해변에 태양광 패널들이 끝없이 줄지어 놓였다. 철망까지 높게 둘러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검은 사각 패널들만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할 뿐 사람은 단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 태양광 발전 시설이 늘어난 만큼, 염전을 일구던 주민들 상당수가 섬을 떠났다. 천일염을 생산하며 나누던 이야기와 부르던 노래와 이어져 전하던 기술도 사라졌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이별을 겪는다. 거의 매일 같이 지내다가 일상을 함께 나누지 못할 만큼 멀어지는 경우엔 아쉽긴 해도 재회를 꿈꿀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낡아 없어지거나 죽어 묻힐 이들 앞에선, 그들의 돌이킬 수 없는 부재를 어떻게 감당할지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 함께했던 지난날을 충분히 여유를 두고 기린 경우가 몇번이나 되는가. 빈자리로 새로운 존재가 너무 빨리 또 갑자기 들어서진 않았는가. 단절과 망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방식을 고민한 적은 있는가.집필실 앞에 핀 코스모스. 김탁환 제공 만발한 코스모스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에 의하면 다른 고을에서도 여름 코스모스가 아주 가끔 핀다고 했다. 7월 한여름부터 꽃이 피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오랫동안 가을꽃의 대표 주자로 알려졌으나, 파종 시기를 앞당기고 재배 환경이 좋으면 여름에도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 심든 가을에만 꽃이 피리란 기대는 나의 억측이었다. 일천송이 코스모스로 뒤덮인 자리엔 원래 팔십년을 훌쩍 넘긴 플라타너스들이 있었다. 학교가 문을 처음 열 때 심은 나무들이었다. 지난겨울 한 그루가 갑자기 밑동이 부러지며 쓰러졌다. 나머지 플라타너스들의 안전성을 검사했더니, 쓰러질 위험이 커서 어쩔 수 없이 베어냈다. 집필실에서 매일 바라보던 나무들과 그 나무에 깃들여 살던 까치들이 사라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봄날 코스모스씨를 뿌렸다.광고집필실 앞에 핀 코스모스. 김탁환 제공 문득 꿀벌처럼 이런 생각이 날아들었다. 코스모스들이 왕성하게 자란 건 부엽토 덕분이 아닐까. 팔십년이나 플라타너스잎이 떨어져 썩고 또 썩은 자리에서 코스모스가 싹이 트고 자라나 꽃을 피웠으니, 저 꽃들은 플라타너스의 환생이 아닐까. 묘목장 거위의 불협화음과 허리까지 자란 수풀의 고요, 비금도 염전과 태양광 패널 사이에도, 끊어 대조하지 않고 이어 상상할 구석이 혹시 남았을까. 보이지 않는 징검돌을 마저 찾은 후, 내일 코스모스를 보러 올 유치원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지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