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35년 동안 학술 논문 공유 저장소인 아카이브(arXiv)는 과학 지식이 세상에 공개되고 공유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사진 왼쪽은 아카이브 아이디어를 낸 폴 긴스파그 현 코넬대 물리학 교수, 오른쪽은 아카이브의 첫 화면 갈무리. 위키미디어 코먼스광고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시작은 소박했다. 1991년 8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물리학자 폴 긴스파그는 동료들과 논문 원고를 이메일로 주고받는 일을 컴퓨터 서버 하나로 대신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연구자들은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 논문 원고를 서버에 올렸고 누구나 내려받아 읽고 검토하고 토론할 수 있었다.“처음엔 잠시 운영할 생각”으로 시작된 논문 공유 플랫폼에는 연구자들의 호응이 뒤따랐고, 2001년엔 코넬대학교 도서관에 둥지를 틀었다. 미 코넬대 교수가 된 긴스파그는 이 플랫폼에 ‘아카이브’(arXiv)라는 오늘날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더 많은 논문이 쌓였고 저장소 규모도 커졌다. 요즘에는 해마다 제출되는 논문이 20만건을 훌쩍 넘어, 지난달 기준으로 누적 논문 수가 308만건을 넘어섰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싹튼 아카이브는 오늘날 중요한 과학 논문 저장소 중 하나가 됐다.광고올해 35돌을 맞는 아카이브가 지난 1일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코넬대학의 둥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비영리법인으로 탈바꿈했다. 투고량이 급증해 역설적으로 적자 상태가 이어지자, 더 많은 후원과 기부를 받아 자금 조달을 다각화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운영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다. 아카이브는 독립 법인의 대표와 이사회 구성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지난 35년을 돌아보면, 아카이브의 등장은 학술 출판기업이 중심이었던 폐쇄적인 논문 출판 문화에 균열을 내고, 과학 지식이 세상에 공유되는 방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아카이브는 학술지를 거치지 않고 논문을 공개하는 새로운 경로가 되었다. 연구자들은 구독료 부담 없이 논문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토론하며 후속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논문 공개와 동료심사의 순서가 뒤바뀐 출판 경로인 셈이었다.광고광고물리학 분야에서 시작한 변화는 다른 분야로 확산했다. 바이오아카이브(bioRxiv) 같은 논문 공유 저장소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비슷한 시기에 논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공개 접근 운동도 생겨났고, ‘플로스’(PLOS) 같은 공개 접근 학술지들이 성장했다. 아카이브는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에 달라진 지식 공유 흐름 가운데 하나였으며 동시에 변화를 촉진한 중요한 계기였다.사전 출판의 장점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빛을 발했다. 바이러스 유전체와 백신, 치료제 연구가 사전 출판 논문을 통해 빠르게 공유되면서 세계 연구자들이 거의 동시에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도 드러났다. 검증되지 않은 연구 결과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실처럼 퍼져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30돌을 맞아 쓴 글에서, 긴스파그는 정치 양극화로 증거에 대한 합의조차 어려운 시대에 “정보를 책임감 있고 생산적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더해 논문을 자동 생성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간 대 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아카이브에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독립 비영리기관으로서 아카이브의 여정에는 과학 공동체의 공동 자산을 유지하며 과학 지식의 신뢰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과학 지식 플랫폼 대전환, 아카이브 35돌 [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시작은 소박했다. 1991년 8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물리학자 폴 긴스파그는 동료들과 논문 원고를 이메일로 주고받는 일을 컴퓨터 서버 하나로 대신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연구자들은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 논문 원고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