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5일 오후 울산 동구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앞에서 열린 전국 이주노동자 공동행동대회에서 조선소 이주노동자와 이들을 응원하는 노동자들이 ‘나쁜 계약 철회’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주성미 기자 광고 김주찬 | 신부·이웃살이 이주노동자센터광고 계약서에 서명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자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계약에 자발적으로 서명했습니다.’광고광고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이 직고용 이주노동자들에게 새 근로계약서와 함께 서명하도록 한 확인서의 한 구절이다. 정말 자발적인 계약이었다면, 왜 다시 자발성을 확인해야 했을까. 그 의문은 공개된 녹취록을 접하면서 더욱 커졌다. 녹취록에는 이런 말들이 담겨 있었다. “이 계약서로 계약 안 하면은 계약 끝나고 스리랑카로 가야 된다고 얘기했어, 안 했어?” 그리고 이런 말도 있었다. “너만 생각하지 말고 가족들까지 생각하라.”광고 자발성을 확인하는 서류와, 서명을 압박하는 말이 동시에 존재했다. 지난 5월 말 에이치디현대중공업은 직고용 이주노동자 1600여명에게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기본급은 줄어들고 연장 근로와 성과 평가의 비중은 커졌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는지는 앞으로 근로감독과 사법 절차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후 회사는 그동안 공제했던 식비를 1인당 평균 700만원씩 소급 환급하는 등 처우 개선안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문제 제기 이후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번 사건이 던진 질문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는 확인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확인서를 작성하려는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광고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법원의 판단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 노동자들에게는 정말 ‘아니오’라고 말할 자유가 있었는가. 체류 자격은 고용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도 없다. 송출 비용으로 적지 않은 빚을 진 노동자들에게 재계약 거부와 귀국 압박은 생존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한 노동자는 말했다. “우리가 힘들어도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싸우자.”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용기 있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근대 사회는 계약서에 담긴 동의를 자유의 표현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서명만으로는 자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법은 계약서보다 먼저 계약이 이루어진 조건을 묻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실제로 거절할 수 있었는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었는지를. 이번 논란의 핵심은 임금이 얼마 줄었느냐가 아니다.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계약을 과연 자유로운 계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바로 그 질문이다. 임금체불도, 산업재해도, 자유롭지 않은 계약도 결국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할 때, 임금은 미뤄지고 안전은 비용이 되며 계약은 형식만 남는다.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만드는 것은 거대한 크레인도, 수천t의 철판도 아니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그 사람의 노동만이 아니라 자유 역시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계약서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계약서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자유를 보고 있는가. 끝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계약서가 아니라, 계약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