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광주제일고등학교·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광고이세영 | 논설위원꾹꾹 눌러쓴 자필 사과문, 학교장의 참회와 학부모들의 눈물, 두 학교 선수단의 5·18민주묘지 합동 참배. 있어야 할 장면을 다 갖췄어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떨치지 못한 건 사죄하는 이들의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잘못한 가해자들 앞에서 그들은 왜 늘 움츠러들어야 하고, 합당한 징벌을 요구하기보다 왜 용서하고 화해할 준비를 먼저 해야 하는지, 광주와 5·18에 지워진 그 관용 강박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다.어김이 없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징계 처분이 내려지기 무섭게 형평과 책임을 따지는 물타기가 노골화했다. “스벅 가는 자유도 뺏더니, 아이들 꿈마저 빼앗나”(나경원), “5·18을 자산 삼아 떵떵거리는 사람들은 놔두고”(김재원), “말실수 하나 잡겠다고”(김재섭). 배재고 야구부원들의 ‘5·18 조롱 응원’ 파동 앞에서 국민의힘은 친윤과 친한, 주류와 소장파가 따로 없었다. 청년 최고위원 우재준은 아이들의 조롱을 ‘5·18의 성역화’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가해 대상이 5·18과 광주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였을까.광고더 당혹스러웠던 건 평소 기품과 예의가 남달랐던 호감형 논평가들의 반응이었다. 그들 사이에선 ‘5·18로 조롱한 건 잘못인데 학생 스포츠 응원 문화도 이해해야 한다’거나 ‘지도자와 학교 책임이 더 크다’ ‘지나친 징벌은 자라는 아이들의 반감만 키운다’는 온정적 교정주의가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배재고 선수들의 행동을 온라인 무대에서 펼쳐지는 또래 아이들의 혐오 놀이나 경기장 약 올리기와 동등한 무게로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이들이 외면한 진실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조롱이, 애초의 발화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아이들에 의해, 그 상처 깊은 도시 아이들 면전에서, 물리적 폭력을 뛰어넘는 저열한 방식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저질러졌다는 데 있었다.광주제일고가 불과 일주일 만에 배재고 야구부원과 학부모, 교직원들의 사과 방문을 수용하고, 누가 봐도 완벽한 화해의 미장센을 만들어낸 데는 보수 정치인들의 망언과 물타기보다 ‘그래도 우리 아픔을 이해하고 다독일 줄 알았던’ 점잖은 논평가들의 은근한 압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에스엔에스(SNS)상에 개인적 바람 형식으로 전해진 이들의 메시지 중에는 ‘5·18이 지역·세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배재고 아이들의 잘못은 광주가 너그럽게 품어 용서하면 좋겠다’는 식의 조언들이 적지 않았다.광고광고문제는 이 말들이 ‘5·18의 전국화가 더딘 건 광주와 호남 사람들의 편협함과 피해의식에도 책임이 있다’는 힐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 해법도 용서와 포용, 더 많은 교육과 계몽이라는 낙관적 점진주의로 기운다. 이런 태도는 1930년대 후반, 유럽을 휩쓴 파시즘의 광풍 앞에서 한 유대계 문예비평가가 내놓았던 통찰을 곱씹게 한다. “파시즘이 승산 있는 이유는 그 대적자들이 진보를 역사규범화하고, 진보의 이름으로 파시즘에 맞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들이 20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는 놀라움은 결코 철학적인 놀라움이 아니다.”실제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전국 대항 야구 경기에서 5·18과 광주를 비웃고 혐오하는 응원 구호가 광주제일고 선수들 앞에서 버젓이 외쳐진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놀라움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라는 반응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5·18을 왜곡하고 모욕하는 거짓 정보가 극우의 문지방을 넘어 보수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10대들의 공공연한 놀이 문화로까지 소비되는 과정은 지난 20년에 걸쳐 꾸준히 진행돼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놀라움은 스스로의 무심함과 둔감함을 고백하는 호들갑에 다름 아니었다 .광고12·3 친위쿠데타는 잊혀가던 1980년 5월의 죽음들에 대한 부채감을 극적으로 되살려냈다. 시민들은 소설가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배재고 사태’는 우리의 현재를 구원한 그 과거가, 모욕과 조롱에 자발적 용서까지 강요받으며 절박한 구조 요청을 발신 중인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반대로 물어야 한다.“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monad@hani.co.kr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아침햇발]
이세영 |논설위원 꾹꾹 눌러쓴 자필 사과문, 학교장의 참회와 학부모들의 눈물, 두 학교 선수단의 5·18민주묘지 합동 참배. 있어야 할 장면을 다 갖췄어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떨치지 못한 건 사죄하는 이들의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잘못한 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