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작정하고 연애시 l 전봉건 ‘의식 4’ 사랑의 배경이자 목적지인 바다 광대한 ‘물의 평원’ 위에 삶 포개고 아예 바닷가의 모래가 된 사랑도 바닷가 해변. 픽사베이 광고광고 욘 포세가 줄곧 바다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바다를 보지 못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좋아하는 김소연의 시 ‘무덤과 바다’(웹진 ‘비유’ 68호)에서 읽은 것이다. 김소연 시인은 이 문장을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2019)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에서 인용했고, 우리는 인용된 문장을 자주 재인용하며 뭔가 잘못되기 전에 바다에 가자 말하고는 했다.광고광고 나는 바다 없는 도시에서 자랐고, 그는 바닷가 도시에서 줄곧 바다를 보고 자랐다. 어린 내가 천변을 걸을 때 어린 그는 해변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도시를 실핏줄처럼 가로지르는 작은 물길과 천변의 녹슨 운동 기구들이 내게 익숙하듯이, 그에게는 끝을 모르고 펼쳐진 광대한 물의 평원과 매일 저녁 수평선 뒤쪽으로 사라지는 태양의 붉은빛, 그 아래에서 끝없이 몰려들고 흩어지는 파도의 형상이 익숙할 것이다. 그는 바다 없이 사는 동안에는 바다가 보고 싶다기보다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삶이 음식을 필요로 하고 산소를 필요로 하듯 바다를 필요로 하는 느낌, 바다 풍경을 몸에 새기고 자라지 않은 내게 그런 감각은 짐작에 가깝다. 우리가 함께 바다 없는 도시로 이사했기 때문에 바다는 내내 공백으로, 결핍으로, 상상된 이미지로, 직접 가서 보는 일보다 보고 싶다 호명하는 일이 더욱 잦기에 공간보다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왜 사랑을 시작하면 함께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지는 걸까. 인류사에 걸쳐 연인들은 유구하게 바다를 향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영원성을 자신들의 사랑에 이식할 수 있다는 듯이. 단지 중력에 의해 뒤척일 뿐인 파도의 움직임을 요동치는 감정의 물화된 대상처럼 여길 수 있다는 듯이. 땅과 바다의 부드러운 접면이 서로 다른 두 인간의 맞닿은 피부와 닮아 있다는 듯이. 바다는 넓고, 비어 있고, 평평하여서 두 사람을 오직 두 사람뿐인 세계로 바라보기 용이하게 하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럽히는 주변의 너저분한 모든 것으로부터의 깨끗한 자유가 가능하리라는 착각을 도왔을 것이다. 그저 무심하게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인 바다는 그렇게 사랑의 목적지이자 배경이자 은유가 되었을 것이다. 바다에 가자는 말은 그러니까 함께 바다를 닮아 보자는 말이고, 광대함을 배경 삼자는 말이고, 당신과 나의 눈동자 위에 잠시 무궁무진한 풍경을 얹어 보자는 말이다. 바다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할 두 사람의 사랑과 삶을 잠시 푸른 수면 위에 포개어 보자는 말이다. 바다 없는 도시에서 자란 내게 바다는 언제나 타지이기에 나에게 바다에 가자는 말은 이곳으로부터 도망치자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바닷가 도시에서 자란 그에게는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바다에 가자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과 유관하다.광고 전봉건 시인은 시 ‘의식 4’에서 사랑의 행위로써 바다에 방문하는 대신, 스스로 바닷가의 모래가 되어버린다. 바다라는 은유를 극단화한 것이다. 시는 언제나 이러한 과장이 가능한 공간이다. 정확히는 시의 화자가 “모래이고 싶다”고 말한 것이지만, 이러한 소망의 발화는 이어지는 모래로서의 진술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까 “모래이고 싶다”는 문장은 이 시에서 ‘화자로서의 모래’를 현현하게 하는 계기이며, 어떠한 변신이든 가능한 시 속에서의 드넓은 가능성과 대비되는 시 바깥의 불가능성, 도달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안타까운 정서를 불러온다. “순한 소금 냄새 나는 너”는 바다에서 올라와 맨발로 “나”를 밟는다. 나의 온갖 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휘젓고 파헤치며 나를 훼손한다. 나를 마음대로 이용해 집, 성, 짐승을 만들어 나의 모양을 변형하고 흔적을 남긴다. 그러다 금세 싫증이 난 너는 나의 안으로 파고들어 나를 덮고 잠든다. 그 잠은 세계를 삼켜버릴 만큼 거대하고 깊은 잠이다. 너는 그렇게 나의 품에서 깊은 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나는 너에 의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모래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볼품없고 쓸모없는, “신이 내버린 모래”이고 싶다고. 신의 자식으로서 창조주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너의 맨발을 감싸고 지탱하며, 발밑에서 무너지고 부서지는 모래이고 싶다고. 이 시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너”가 떠난 후 모래인 “나”는 그 자리에 남아 바람에 날아가고 파도에 씻겨 나가며 서서히 세계 이곳저곳으로 흩어질 것이다. 바다는 끊임없이 모래를 데려가고 다시 돌려보내지만, 한번 남겨진 발자국의 기억까지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 바다를 닮아가는 방식, 영원이 되어가는 움직임일 것이다.김선오 시인 김선오 시인 l 1992년 서울 출생. 2020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나이트 사커’, ‘세트장’ ‘싱코페이션’, 에세이 ‘시차 노트’ 등을 펴냈다. 이제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을 들을 차례. 작가들이 숨어 애송하는 연애시의 내막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