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인도의 가상 정당인 ‘바퀴벌레국민당’의 인공지능 이미지’. 비비시(BBC) 누리집 갈무리 광고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바퀴벌레 같은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모두를 공격하고 있다.” 도시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인도에서, 수리아 칸트 대법원장의 이 발언이 젊은이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미국 보스턴대학에 유학 중이던 아비지트 딥케(30)는 지난달 인스타그램에 “실업자이고, 게으르며, 만성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며, 불평 능력을 지닌 사람은 바퀴벌레국민당(CJP)에 가입하라”고 썼다. 이 풍자 게시물을 보고, 2200만명 이상이 팔로어가 됐다. 온라인 결사체가 된 ‘바퀴벌레당’은 요즘 의대 입시부정 사건 책임자인 교육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청년 저항 운동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광고 얼마 전 화제 속에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는 20년이나 영화판을 맴돌고도 감독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한 마흔살 남자가 중심이 된 이야기다. 이 드라마엔 여러 인기 요소가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출발도 못 한 채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쓸모를 제발 확인하고 싶은’ 인물에 감정 이입된 시청자가 많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한국의 청년(15~29살) 고용률은 학업이나 병역 때문에 고작 40%대 중반인데, 2023년 이후 그나마 하락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쉬었다’고 답하는 비경제활동인구의 비중도 높다. 통계당국은 ‘가고 싶은 회사와 갈 수 있는 회사의 불일치’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기술은 이렇게 ‘출발조차 어려운’ 세대의 좌절을 더 극단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 외신은 구글 등 빅테크와 금융회사 등이 에이아이 도입과 맞물려 직원을 대거 해고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미국에서 신입 직원 채용공고가 최근 18개월 동안 35% 감소했다는 뉴스도 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4일 한겨레가 주최한 ‘제5회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에이아이 고용 충격이 미국에서는 기존 인력 해고로, 한국에서는 신규 진입 차단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피지컬(몸을 가진) 에이아이가 본격 도입되면, 한국 청년의 취업 기회 상실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광고광고 최근 저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펴낸 세라 오코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부편집인은 같은 행사에서 자신이 유럽에서 직접 취재한 사례를 소개했다. 한 기업인은 지난 2년 동안 신입 직원을 전혀 뽑지 않았다며, “에이아이 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끔찍한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인건비를 아끼긴 했는데, 장차 누구를 전문가로 키울 것인지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한 변호사는 자기 회사가 초임 변호사를 뽑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고객이 ‘에이아이를 시키면 되지 않냐’며 (주로 자료 조사를 하는) 초임 변호사 보수 지급을 거절해서라고 전했다. 오코너 부편집인은 “기업이 신규 직원을 채용하고 훈련하도록, 인센티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에이아이 시대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에이아이를 통해 개인 역량을 높이도록 지원하는 것, 청년 채용을 늘리는 기업에 재정적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이아이가 대체하기 어려운 필수 서비스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획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예산 제약 등의 이유로 중요한 직군을 인력 부족 상태로 두거나,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방치하는 예가 너무 많다. 재판 지연을 낳는 판검사 인력 부족이 그렇고, 소방관·재난안전담당자·교도관·사회복지사·특수교사 등의 과소 채용과 열악한 처우가 그렇다. 돌봄 수요가 커지는데도 간병인·요양보호사·보육교사 등은 대부분 저임금·비숙련 노동자다. 간호사는 과로와 감정노동에 지쳐 ‘장롱면허’가 쌓이는 직군이 된 지 오래다.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제도를 손질해 이 직업들을 ‘좋은 일자리’로 만들면 에이아이 시대에도 청년이 사회에 이바지하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지역 간호사들은 안정적인 근무 환경에서 높은 자율성과 숙련도를 발휘하며 에이아이를 보조 도구로 쓰기 때문에, 환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가 이런 개혁에 박차를 가한다면, 바퀴벌레당이 ‘한국의 일자리 정책을 배우라’고 인도 정부를 압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