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김연수 소설가가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연 서울국제도서전 교보문고 부스에서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 광고“문학 창작에서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글을 쓰는 주체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이다. (…) 글쓰기의 주체가 불분명해진 이후에는 문학의 하향 평준화가 일어나리라는 의심에는 설득력이 있다.”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주제문을 작성한 김연수 작가는 이날 처음 공개된 한정판 도서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에 수록한 특별기고 ‘AI(에이아이) 글쓰기의 세 가지 길’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온라인 서점들에 선공개된 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김 작가는 구글 딥마인드의 에이아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열린 지 10년이 되는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주최쪽의 제안을 받아 에이아이와 함께 주제글을 쓰게 됐다. 2025년 일본 도쿄에서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에이아이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인식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광고한정판 도서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 김 작가는 2024년 여름부터 챗지피티를 사용했지만 “초고 쓰기 단계에서는 챗지피티가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창작의 핵심”이 되며 “모든 문장을 재검토하며 미세하게 문장들을 조정”하는 ‘다시 쓰기’ 과정에서 “챗지피티는 이 일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규모 언어 모델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작가로서의 글쓰기가 아닌 삶의 다른 부분에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에이아이 글쓰기가 나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해 김 작가는 세가지의 경로를 탐색했다. 첫번째는 아이디어를 꺼내놓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숙고하지만, 글은 작가 본인이 쓰는 것이다. 두번째 길은 최종 글쓰기까지 에이아이에게 맡기면서 작가는 논지를 지정하고 수정을 지시하며 디렉팅을 하는 것이다. 김 작가가 이번 도서전 주제문을 작성한 것이 바로 이 경로였다.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답변을 읽는 데 드는 수고는 창의적이라기보다는 반복된 노동에 가까웠다”고 그는 밝혔다. 세번째 길은 ‘강인공 지능’이 나타나 인간의 개입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경우다. 김 작가는 “에이아이 저자가 글쓰기의 주체가 되어 인간 저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가정할 때, 에이아이 저자의 글을 인간이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는 것은 표절 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우리는 ‘에이아이(AI) 역표절’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밝혔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이지만 이에 미리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광고광고 클로드 소네트, 제미나이와 함께 도서전 주제문을 작성한 김 작가는 “에이아이를 사용하는 한, 모든 책임은 작가인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이번에 깊이 이해했다. 이 실험이 더 많은 질문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썼다. (‘소설가와 AI가 함께 쓴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글…찬반 논란 중심에’ 참고) 그 밖에도 이번 책에는 강화길·김혜진·박선우·장강명의 소설과 안태운·유선혜·육호수·이제니의 시, 배순탁·원소윤의 에세이를 함께 실었다. 책은 온라인 서점과 도서전에서 만날 수 있다. 광고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서울국제도서전 주제문 인간선언 Homo duduri 호모 두두리, 질문하는 인간의 새로운 이름 책을 펼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림책을 처음 손에 쥔 아이도, 추리소설을 읽느라 밤을 새는 어른도, 그 순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문을 두드리는 일. 이것이 바로 독서의 본질이다. 올해의 도서전은 여기서 출발한다.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호모 두두리’다. 두두리는 한국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로 도깨비의 원형이다. 또한 대장장이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두두리는 불 앞에서 달아나지 않고 불을 응시한다. 불은 나무로 된 두두리의 몸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두려운 대상이다. 그러나 두두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에게는 불을 다루는 슬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서 AI라는 불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다. 무엇을 물어봐도 AI는 막힘없이 답한다. 단숨에 소설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찍는다. 이 불을 피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이 세찬 불길 앞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슬기가 필요할까?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다 잃었다. 세 친구가 찾아와 그를 위로했다.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답이었다. 그러나 욥은 그 답을 팽개치고 신을 향해 묻는다. 왜 의로운 자가 고통받느냐고. 어떻게 악한 자들이 번영하느냐고. 사람은 왜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오지 않느냐고. 이 무모한 질문에 신은 정답을 말한 세 친구가 아니라 욥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폭풍 속에서 더 큰 질문으로 대답한다. 장자는 이 이치를 다른 방식으로 꿰뚫었다. 어느 밤, 나비가 된 꿈을 꾼 그는 이렇게 묻는다. 내가 나비를 꿈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나비가 인간인 나를 꿈꾸는 것인가? AI라면 즉시 답할 것이다. 압도적으로 높은 확률로, 당신은 인간이고 나비는 꿈이었다고. 그러나 장자의 질문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그 ‘압도적인 확률’이 전제하는 이분법 자체다. 꿈과 현실, 옳음과 그름 사이에 그어진 경계는 과연 자명한가? 여기에 인간과 AI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AI는 가장 확률이 높은 답으로 가능성의 문을 닫는다. 인간은 더 큰 질문으로 그 문을 다시 연다. 욥의 질문은 고통의 의미를 새로 쓰게 했고, 장자의 질문은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인류의 사유가 매번 한 걸음씩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은 확률이 가리키는 답이 아니라, 그 답 너머를 향한 질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질문들의 기록이 바로 책이다.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에게 다가간 최초의 인간 이후로, 인간은 그 불로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AI라는 불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불이 아니라, 이 불로 어떤 질문을 벼려내느냐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더블린의 청년 스티븐 디덜러스는 그 순간을 이렇게 썼다. “어서 오라, 삶이여! 나는 이제 백만 번씩이라도 경험의 현실을 만나러,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종족의 의식을 벼리러 가겠노라.” 그렇다. 인간은 확률이 정해준 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 답을 자신의 뼈아픈 경험이라는 뜨거운 불 속에 다시 던져 넣고, 맹렬한 질문의 망치질을 거듭한다. 과거의 패턴 속에서 정답을 반복하는 기계와 달리, 인간은 끝없이 질문함으로써 이 세상에 ‘아직 창조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열어젖힌다. 그것이 인간이 불을 다뤄온 방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전한 대답을 거부하고 백만 번씩이라도 미지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자. 새로운 불을 응시하며 영혼의 대장간에서 더 큰 질문을 벼려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자. 그가 바로 호모 두두리다.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은 그 질문들이 모이는 자리다. 지금,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공동작성 : 김연수, 클로드 소네트 4.6, 제미나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