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경계심은 허기를 채우기 어렵게 할 수 있다. 상대방이 뭔가를 줘도 숨은 요구와 의도를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광고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나이가 차니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결혼해도 괜찮은 사람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얘기하는 ‘엑셀 부부’가 저희 미래일 것 같습니다.남자친구는 계산적입니다. 자기가 점심을 사면 저녁을 먹고 계산할 때 딴짓하며 제가 돈을 내길 기다립니다. 당연히 저도 얻어먹기만 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한번 샀으니 너도 한번 사라는 남자친구의 태도가 정 없게 느껴집니다. 선물을 사주고 생색도 잘 냅니다. 제 생일 선물로 굿즈를 사주면서 “이거 구하려고 내가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몰라”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감동하고 ‘우쭈쭈’ 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눈에 보여서 고맙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가 알아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받은 만큼 베풀 텐데, 저에게 뭘 줄 때마다 아까워하는 것 같으니 저도 같이 인색해집니다. 결혼은 서로 맞춰가는 거라던데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남자친구는 오히려 제가 계산적이라고 합니다. 밥값을 제가 내게 하려고 뭉그적거린 적 없고, 선물도 생색을 내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 굿즈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어서 신기해서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제가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남자친구가 다 마신 맥주 캔을 침대 옆에 그대로 뒀습니다. ‘이렇게 두면 집에서는 엄마가 치워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난 결혼해도 이런 거 안 치울 거야”라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좀 이따 치우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모든 일이 다 너한테 떠넘겨질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냐”고 하더군요. 남자친구 말이 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자기중심적인 데가 있고 오냐오냐 큰 것 같아서 제가 이러지 않으면 결혼해서 저 혼자 집안일과 육아까지 다 하는 독박이 될 것 같습니다. 민정화(가명·33)어떤 남자가 집에 그림을 걸려고 하는데 못만 있고 망치가 없었습니다. 이웃집에 망치를 빌리러 가는 길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안 빌려주면 어떡하지?’, ‘어제도 인사를 대충 하던데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나?’, ‘대체 왜?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옆집에 살면서 어떻게 망치 하나 안 빌려줄 수가 있어?’, ‘망치 하나 있다고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이웃집에 도착해 벨을 누른 남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소리칩니다. “그깟 망치 필요 없어, 이 치사한 인간아!”파울 바츨라비크라는 오스트리아의 한 심리학자가 쓴 책에 나오는 우화입니다.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실제 거절을 당하기도 전에 이미 거절당한 사람이 되어 화를 내며 씩씩거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웃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봉변이겠지만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 보면 아마도 늘 거절을 예상하고 방어해야 할 만큼 거절로 인해 자존심 상하고 아팠던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정화님이 결혼을 경계하는 데에도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결혼 후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고, 시가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 며느리로서만 살다가 자기 삶을 잃어버린 여성들의 한숨과 화병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을 테니까요. 지금도 꿈 많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결혼이 정화님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됩니다.광고그런데 경계심만큼이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허기도 커 보입니다. 정화님을 위해 손해도 볼 수 있는 사람, 주고 나서 바로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 넉넉한 사람을 원합니다. 뭔가를 줄 때마다 상대방이 장부를 들이미는 것 같으면 사랑이 거래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표현도 어려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바라는 모습이 또 정화님에게서 뭔가를 받아 가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요. 아직 내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나눠 달라고 하니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도 일하고 돈 버는데 결혼하면 집안일도 더 해야 하고 남편 기분도 맞춰줘야 하나?’ 하는 생각은 이미 내 안이 텅 비어서 더 줄 게 없는데 언제까지 남을 채워주기만 해야 하나 허기진 한탄이기도 할 것입니다.문제는 경계심이 오히려 허기를 채우기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뭔가를 줘도 숨은 요구와 의도를 찾아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뭘 또 내놓으라는 건가?’라는 생각은 내가 받은 사랑을 오염시킵니다. ‘피해의식이 있나’ 하는 정화님의 자기 의심도 혹시 내 안에 사랑이 들어오는 것을 번번이 막아서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기성찰적인 질문일 것입니다.광고광고하지만 이 질문이 정화님의 입을 막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라지도, 서운해하지도 말아야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성찰이 아니라 검열이 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따져봐야 할 것은 둘 중에 누가 더 계산적인지, 내가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과 남자친구가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 중 어떤 게 맞는지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보다 손해 보는 느낌을 서로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한쪽이 서운함을 말했을 때 상대방은 억울함으로 맞서기만 하는지, 피해의식이 있다는 말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자신을 책망하는지, 그러면서 서로의 몫을 조정하는 대화가 계속 미뤄지지는 않는지, 그 지점을 함께 점검할 때 ‘엑셀 부부’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결혼하면 ‘엑셀 부부’가 될 것 같습니다 [.txt]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나이가 차니 결혼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결혼해도 괜찮은 사람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얘기하는 ‘엑셀 부부’가 저희 미래일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는 계산적입니다. 자기가 점심을 사면 저녁을 먹고 계산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