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한반도, 혹은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신경전이 여전하다. 미국은 5월 중순에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했지만, 중국은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6월 8〜9일에 평양에서 열린 조중 정상회담에선 비핵화 문제가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조중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고 경제를 비롯한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대폭 강화키로 한 합의가 나왔다. 이틀 후에 열린 한국-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했다. 한국이 우방들과 함께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해온 데에는, 이것이 우리의 이익과 안전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핵화를 고수하는 것이 진정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이다. 이재명 정부가 공을 들여온 조미정상회담 성사부터 미국이 비핵화에 진심일수록 펼쳐질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짚어보면, 우리의 안전과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사활적 이해라고 할 수 있는 전쟁 방지의 관점에서도 따져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일단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조선이 비핵화를 의제로 삼는 미국과의 회담에 응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졌다. 조미정상회담은 미국이 비핵화 요구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조미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하려면, 트럼프 행정부에게 조선에 더 이상 비핵화를 요구하지 말자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가능성은 낮지만, 비핵화 고수와 조미정상회담 성사는 양립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광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성사를 위해 비핵화를 내려놓겠다고 했다가,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애기를 꺼내는 상황도 가정해볼 수 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정상회담은 결렬될 것이다. 트럼프가 비핵화에 진심일수록 그러하다. 트럼프가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합의하고 ‘북핵 동결과 감축’ 및 이에 대한 상응조치부터 논의하자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선에게 비핵화는 금기어이자 옛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조선의 핵무기 폐기에 진심으로 나올수록 우리의 이익과 안전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이 핵무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은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이에 따라 불가역적인 핵보유국을 추구하는 조선과 비핵화가 진심인 미국이 맞서면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은 극도로 고조될 수 있다. 가령 ‘미친 자의 이론’ 신봉자인 트럼프가 ‘조선은 핵무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그건 대화의 방법도, 다른 방법도 있다’며 최대의 압박을 동원한다고 가정해보자. 2017년처럼 또 다시 트럼프가 “화염과 분노”나 “북한 완전 파괴”와 같은 말 폭탄을 던지면 조선은 어떻게 나올까? 미국이 말 폭탄에 그치지 않고 2017년 9월에 했던 것처럼 조선에 겁을 주겠다며 전략 폭격기를 군사분계선과 조선 영공에 스치듯이 날리면? 당시엔 조선이 이를 몰랐었는데, 그 이후 정보 자산을 강화한 조선이 이를 탐지한다면? 201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핵무력을 강화한 조선은 ‘말에는 말’, ‘행동에는 행동’으로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광고광고 이렇듯 조미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면,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017년 하반기 양측의 벼랑 끝 대결은 상대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담판을 벌이겠다는 계산이라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조미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9년 전과 달리 위기를 협상으로 반전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작년 6월 미국은 협상 중이던 이란을 상대로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펼쳐 이란의 주요 핵시설에 선제타격을 가했다. 이는 1기 트럼프 행정부 내 일각에서 조선을 상대로 ‘코피 작전’을 검토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말로도 안 되고 겁을 줘도 안 되니 한 대 세게 때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고안된 개념이었다. 조선을 상대로 ‘코피 작전’이든 ‘미드나잇 해멋’든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이란 지도부를 살해했던 올해 2월 ‘참수 작전’을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한다면? 광고 이란이 중동의 미군기지에 보복을 가했던 것처럼, 조선도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기지를 보복을 가할 수 있다. 이에 미국은 확전을 선택하고 한국이나 일본, 혹은 두 나라 모두 조선을 상대로 군사 행동에 나서면, 전쟁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또 조선과 자동개입 조항이 포함된 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등이 조선의 핵무기 사용이 임박했다며 ‘참수 작전’에 나서면, 조선은 이미 천명한 핵 독트린대로 “자동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이런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시나리오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미국은 강력한 보복 능력을 갖춘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선택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을 것이다. 또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을 꼬드겨 중동에 불을 지른 이스라엘도 아니다. 그런데도 끔찍한 시나리오를 언급한 이유는 이제는 우리가 ‘비핵화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보는 데에 있다. 이는 조선 핵문제와 ‘전쟁과 평화’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 사유를 찾을 수 있다. 이른바 ‘북핵 문제’가 불거진 1990년대 초반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는 주로 협상과 결렬이 반복되는 와중에 일어났다. 미국이 압박과 대화를 통한 비핵화에 실패하면 무력 사용도 검토할 수 있고, 실제로 대북 선제공격을 가하면 조선의 보복으로 전면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조선의 핵무장 이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은 자취를 감췄다. 또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외 일각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적화통일을 시도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고, 한미 여러 연구기관들은 이와 관련된 시나리오도 내놨었다. 그런데 조선은 두 국가론을 선언하면서 통일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핵무력의 용도가 ‘현상 변경’(통일)이 아니라 ‘현상 유지’(두 국가)에 있다는 뜻이다. 근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등이 일어나면서 ‘전쟁 억제력이 없으면 당한다’는 인식이 세계화되고 있다. ‘자강’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국은 그 선두에 서 있다. 미국과의 동맹을 “현대화”하면서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자주국방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요구는 조선에겐 ‘전쟁 억제력을 포기하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광고 불편하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비핵화는 종언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할 때이다. 대안의 핵심은 ‘비핵국가 조선’이 아니라 ‘핵보유국 조선’과의 평화공존을 도모하는 데에 있다. 과도기적 대안은 이미 국내외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비핵화에 매달리지 말고 동결과 감축을 목표로 하는 군비통제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 궁극적인 대안의 단초는 트럼프가 제안한 바 있다.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대국들이 먼저 핵군축을 추진하면서 조선도 여기에 초대하자는 발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핵전쟁과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큰 그릇에 북핵 문제도 담아보자고 공론화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