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l 맥 버넷 글, 존 클라센 그림, 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2020) 광고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우리 모두에게는 삽질의 기억이 있다. 옷장을 거의 조립했는데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어 문짝이 달리지 않아 모든 나사를 다시 풀어야 했다든가, 요즘 기름값이 비싸니 돈을 아끼겠다고 세차장까지 걸어갔다가 차를 두고 온 걸 깨닫는 순간이라든가. 내 땀과 노력이 허무하게 증발해 버리는 상황을 만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의 주인공도 삽질을 한다. 헛수고를 삽질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우리에게는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그림책이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낼 때까지 땅을 파기로 한 샘과 데이브는 독자 눈에 빤히 보이는 커다란 보석을 번번이 비껴간다. 조금만 더 팠다면,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발견했을 보석을 보는 우리 마음도 안타깝다. 그들을 따라다니는 강아지는 보석의 위치를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자기에겐 무가치한 것이어서일까, 그저 그쪽을 바라볼 뿐 굳이 그 무가치함과 싸우려 들지 않는다. 결국 샘과 데이브는 남은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해치우고 지쳐 잠이 드는데, 자기의 보물인 뼈다귀를 발견한 강아지가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모두 땅 아래로 떨어져 처음 땅을 파기 시작했던 장소인 집 앞에 도착한다. 샘과 데이브는 마주 보며 말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광고 무미건조한 눈으로 보자면, 그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땅속에 묻힌 보물이 아니라 거기에 온전히 몰두했던 시간이었다. 작가는 무언가를 향한 경험은 그 자체로 멋지고, 그런 성장의 경험이야말로 값진 보물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게다가 그들이 다시 도착한 곳은 언뜻 보기엔 비슷하지만 뭔가 달라져 있다. 사과나무는 배나무로 바뀌어 있고, 풍향계와 화분의 모양, 고양이의 목줄 색깔이 달라져 있어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세상에 헛되기만 한 일은 없다. 내가 뭔가를 하며 보낸 시간은 반드시 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게 되어 있다. 책 속 문장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파낸 자리, 주인공들이 발 딛고 선 위치에 정확히 놓인다. 위쪽으로 꺾으면 문장도 위쪽으로 흐르고, 깊이 내려가면 문장도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삽질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문장들은, 의미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땀 흘려 딛고 선 그 길 위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샘과 데이브는 매 순간 자신의 삶을 기록할 문장을 스스로 파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광고광고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를 통해 가치를 증명하려는 이들에게, 진짜 풍요로운 삶은 생명력을 발휘하는 존재론적 삶이라고 했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보석을 ‘소유’하지 못해 안타까워하지만, 이들은 땅을 파는 행위에서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우리는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보석을 캐내지 못한 삽질을 부끄러워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헛수고를 하는 건 아닌지 늘 불안해한다. 하지만 좁은 구덩이 속에서 함께 땀을 흘리고 지혜를 모은 기억, 힘들 때 입에 넣은 과자와 초콜릿 우유의 맛이 바로 우리 삶의 보물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 저마다의 삽을 들고 인생이라는 땅을 파 내려가고 있다. 우리의 삽질이 향하는 건 소유인가 존재인가. 모두의 어마어마하게 멋진 삽질을 응원한다. 광고 이진민 정치철학 박사·작가
‘삽질’과 ‘보석’ 사이, 인간 존재의 의미 [.txt]
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우리 모두에게는 삽질의 기억이 있다. 옷장을 거의 조립했는데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어 문짝이 달리지 않아 모든 나사를 다시 풀어야 했다든가, 요즘 기름값이 비싸니 돈을 아끼겠다고 세차장까지 걸어갔다가 차를 두고 온 걸 깨닫는 순간이라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