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고 허수경 시인. 허 시인의 신작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을 엮고 펴낸 김민정 시인은 그의 원고를 관리하는 법적 대리인으로서 “파일 속 남겨둔 시들이 있지만 더 이상 시집으로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다 제공 광고‘불취불귀’ ‘혼자 가는 먼 집’의 시인 허수경이 타계한 지 올해로 8주년이 된다. 1964년 6월~2018년 10월. 이달 9일이 그가 태어난 날이다. 때마침 출간된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은 이제야 매듭지은 고인의 유고 시집이자, 허수경의 마지막 신작 시집으로 소개된다. 각별한 사이로 원고의 법적 대리인이기도 한 시인 김민정(출판사 난다 대표)이 출간했다. 미발표작 9편에 계간지 등에 발표했거나 발표 뒤 더 손질한 시 33편, 그리고 산문 3꼭지로 구성됐다. 2010년부터 셀 수도 없이 쓰다 만 시, 완성은 된 듯하나 제목이 볼드체로 표기되거나 안 된 시, 일련번호가 매겨진 시 등에서 추리고 엮은 것. 김 시인이 한겨레에 말하길 “번호순을 따르되 미발표작을 추가하고, 볼드체 제목이 안 된 시는 다 뺐고, 발표 여부를 떠나 또 제외한 시들이 있다.” “그 과정이 진짜 쉽지 않았다.” 가령 2012년 문예지에 발표한 시 2편 가운데 1편만 2016년치 시집에 싣고 1편은 놓아둔 이유가 무엇일까. 고아성(孤兒性) 내지 고아됨을 시적 정체성이자 윤리로 삼았던 허 시인이 마지막 시들에까지 남긴 ‘고독’의 형세일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의 기록/ 읽히지 않고 들릴 때도 있다// 한 장 한 장/ 오래오래// 시간이 안쓰럽게 우리를 번역하고 있었다/…//…// 별도 자리를 잃어버리는 계절 즈음해서/ 당신이랑 우리들의 귀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는 거/ 괜찮겠다, 우리가 아주 헤어져 목소리로만 만나는 귀가 되더라도/ 목소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한 장 한 장 듣는 거/…// 그러다 언제쯤/ 당신과 나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 이 지구에 없는 목소리의 유랑인이 될 거다/ 아무도 건설해본 적 없는 국도를 걷는 아픈 고아,// 꿈꾸는 귀가 듣는 발자국일 거다”(‘듣는 책’ 가운데) 광고 고아는 ‘상태’나 결과가 아니라, ‘상황’ 내지 과정에 가깝다 하겠다. 타자를 타자화하지 않는 실천적 감각, 떨어져서도 듣고 나누는 초감각인 셈이다. 1987년 등단하여 ‘불취불귀’의 고유한 서정으로 절정에 이르던 1992년 뜻밖으로 독일 유학길에 올라, 홀로 남겨진 것들을 파헤치는 고고학을 공부하고, 뜻밖으로 여생 내내 모국으로 ‘불귀’한 배경에도 ‘스스로 고아됨’이 있다. 생전 마지막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2016)에다 쓰지 않았던가.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가운데) 시인은 누구보다 안다, “고독에는 대가가 있다”(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2019)는 사실을. 다만 ‘향년 쉰넷’이라는 짧은 생애까지 내다본 말은 아니다. 2017년 상반기 정작 자신이 먼저 위암 말기를 진단받기 전, 남편을 향해 이런 시도 썼으니까. 광고광고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아직 뭔가를 쓸 수 있는 구십이라는 나이가 나에게 있다면/ 나는 그대의 무엇을 가장 마지막까지 쓸까/…// 나는 나의 늙은 안경을 벗으면서 바깥을 바라볼 거다/…/ 감상적이어서/ 너무나 감상적이어서/ 오늘 적었던 연가를 내일 읽으면/ 얼굴은 붉어지겠지/ 그러니 아주 마지막 날에 이 연가를 써야겠다// 쉿, 아직 봄이 오지 않았어요 깨어나지 마세요 이 세기에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랑을 지켜주던 신은 도둑을 지켜주던 신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이 시집의 표제시다. 그윽한 사랑에 타지 이방인의 때 이른 죽음이 더 애달파질 법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가 고독하다 친다면, 그 경지에서 이번 시집의 여러 시편에서 시인은 비로소 조금 평온해 보이기도 한다. 표제시는 저렇게 끝나지 않았다. 광고 “아, 나는 모르겠네/ 구십이 되어 나는 그대가 먼저 간 길을 아주 오래 보다가/ 이렇게 쓸지도 몰라/ 저녁은 갑자기 오더니 어둠은 천천히 오시네, 라고/…/ 뒤돌아보니 갑자기 저녁은 도착했고 밤은 그대의 고요한 손처럼 그렇게 천천히// 오늘의 바람은 그다지 거칠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 이라는 단수가 되고 싶었으나/ 우리는 사람들, 이라는 복수였다고/ 그리고 끝내 사람, 이라는 단수 유랑자였다고/ 그 시간 동안 나의 개, 천년이는 배가 고팠다, 그리고 나는/ 떠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착각하며 하루를 보냈다, 라고” 이번 시들은 2018년 1월까지 쓰여졌다. 입원하고서도 시인이 작품을 정리했고, 그해 10월 장례 뒤 김민정 시인에게 노트북과, 컴퓨터 속 글을 그러모은 유에스비(USB)로 전해졌다. 김 시인은 이 둘을 고고학 박사이기도 한 허 시인이 남긴 “발굴지”라고 한겨레에 말했다. 허 시인은 생전 자신의 새 책이 나오거든 저자본(저자 몫으로 배급되는 책) 가운데 2권만 보내고, 나머지는 도서관과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보내달라 김 시인에게 당부했다. 이번 시집은 단 한권도 저자에게 가지 못한다. 허 시인 떠난 뒤로 출간된 유고집 3종도, 후배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를 꼽아 엮은 허수경 시선집(‘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2023)도 그랬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광고 허 시인이 직접 “1”번으로 매겨둔 시 ‘공항에서’처럼, “너를 사라지게 하고/ 나를 사라지게 하고/ 둘이 없어진 그 자리에/ 하나가 된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이상한 존재가 있다,/ 서로의 물이 되어 서로를 건너가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종이배처럼” 2018년 1월 허 시인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시 ‘안는다는 것’처럼, 기다리지 않고서 사라지는 경우가 없고 시인 혼자 사라지는 경우도 없다. 저자 없이, 시간을 돌린 듯 신작 시집이 나온 원리, 그리고 지난 9일 시집 완독 행사에서 어떤 참가자는 울고 말았다는 연유이지 않을까.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