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서울국제정원박람회 개장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꾸며진 조형물.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광고장현주 | ‘시골집 곤충 관찰기’ 저자서울숲에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서도 숲의 생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기대감을 안고 방문했습니다. 화려한 꽃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서 오래 살아남을 생명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원예용으로 개량된 꽃들이라, 스스로 살아갈 생태적 기반보다는 전시 효과가 우선되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넓은 꽃밭에는 벌과 나비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꽃은 넘쳐나되 생태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 텅 빈 느낌이 계속해서 맴돌았습니다.더 안타까웠던 것은 전시에 쓴 식물들을 인간의 시각적 만족을 위한 소모품처럼 다룬다는 점입니다. 벌과 나비를 부르지도 못하고,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도 없으며, 순환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전시 목적이 끝나면 버려질 생명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광고물론 그곳을 찾은 시민들의 즐거움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도심 속에서 잠시나마 꽃과 나무를 가까이 접하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회색 도시 속에서 녹지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공간을 숲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숲은 단순히 나무가 많은 장소가 아닙니다. 보기 좋게 꾸민 녹색 공간만으로 숲이 될 수는 없습니다. 숲은 인간의 의도와 통제를 어느 정도 벗어난 채, 수많은 생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지되는 유기적인 생태계입니다. 낙엽이 쌓이고 썩어가는 거친 과정조차 묵묵히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한 장소입니다.광고광고그러나 오늘날 도시의 공원들은 자연의 복잡함과 가공되지 않은 흔적을 견디지 못하는 듯합니다. 떨어진 낙엽은 곧바로 치우고, 죽은 나무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제거하며, 흙 위에는 인공 구조물을 덧씌웁니다. 벌은 위험하니까 있어서는 안 되고, 살아 있는 생태보다는 관리된 ‘예쁜 풍경’만 우선시합니다.서울숲을 걸으며 묘한 피로감을 느낀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이 통제 가능한 형태로만 자연을 받아들이려는 우리의 이중적인 태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야생은 사라지고 보기 좋은 이미지만 남은 그곳에서,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는 주체가 아니라 감상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었습니다.도시 속 녹지는 필요하고 정원 문화 역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하지만 벌과 나비가 사라진 화려한 원예 꽃들이 진짜 생태를 밀어내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닙니다. 그곳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는지, 낙엽과 곤충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하여 인간의 손길 없이도 스스로 순환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을 닮은 풍경을 진짜 자연이라 착각하며, 스스로 속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울숲 정원박람회 가보니…벌과 나비는 어디에? [왜냐면]
장현주 | ‘시골집 곤충 관찰기’ 저자 서울숲에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서도 숲의 생태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기대감을 안고 방문했습니다. 화려한 꽃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