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 4월2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초기업노조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광고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고맙다. 당신들의 성과급 요구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피해온 질문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성장의 성과는 누구의 몫인가.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그 성장이 만들어낸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는 제대로 묻지 않았다. 성장하는 법은 배웠지만,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성장의 성과를 누가, 얼마나, 어떻게 나눌지를 묻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질문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노동자의 요구라면.분배의 ‘분’ 자를 꺼내는 순간, 분배는 정당한 질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와 ‘빨갱이’의 언어가 되었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초과이익 공유제’를 이야기했을 때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직격탄을 날렸다.광고복지 논의도 다르지 않다.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그것이 국민의 노동 의욕을 꺾고, 국가부채를 늘려, 결국 한국을 남미나 그리스처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반복되었다.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실업급여를 ‘달콤한 시럽급여’라고 비꼰 일은 재분배를 혐오하는 낡은 문법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초과이윤’의 상당 부분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라고 요구했는데도, 누구도 삼성전자 노조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지 않았다. 오히려 논란이 커지자, 이재용 회장이 사과하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물론 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광고광고최승호 노조위원장의 말처럼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시급을 400원 올려 달라는 청소 노동자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던 어떤 대학이 생각난다. “학생을 위한다며 위선 떨지 말라. 저희는 인질이 아니다”라고 대자보를 붙였던 그 대학의 학생들이 기억난다. 힘 있는 노동자의 분배 요구는 협상의 대상이지만, 힘없는 노동자의 요구는 분에 넘치는 요구가 되는가.초과이윤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백가쟁명식의 논란이 이어졌다. 3만5천여명에 달하는 파견, 용역,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와 함께 나누고,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부터,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에게 더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노노 갈등도 예사롭지 않다. 삼성전자 비반도체 직원 중심의 노조는 잠정 합의안에 반대하며, 법원에 조합원 찬반투표 중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향후 5년간 5조원을 조성해 협력사 지원과 인재 육성 등에 쓰겠다고 발표했다.광고하지만 초과이윤을 나눌 대상을 확대하고 기금을 만드는 것은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설령 그 원칙이 다른 대기업으로 확산되어도 마찬가지다. ‘전국사업체조사’ 자료에 따르면 500인 이상 사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는 전체 취업자의 10.6%에 불과하다. 성장의 성과가 대기업 내에만 머문다면, 중소기업, 자영업 등에 종사하는 90%의 국민이 배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만 사회적 연대를 요구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한국 사회를 지독한 각자도생의 정글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그들에게 전체 사회의 안위와 연대를 생각하는 ‘대자적 노동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나 이외에 그 누구도 나와 내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회에서, 타인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은 듣기 싫은 도덕적 훈계가 될 뿐이다.그렇다면 분명하다. 더 착한 노동자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무급 노동을 포함해 어떤 일을 하든, 어디에서 일하든, 시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중산층이라면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에 직면해도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개별 사업장을 넘어, 적어도 산업별로 노동조건을 논의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사회적 교섭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맙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당신들의 요구는 한국 사회가 외면했던 질문을 꺼내 들게 했다. 성장의 성과는 누구의 몫인가. 이 질문에 더는 ‘빨갱이’와 ‘도덕적 해이’라는 낡은 낙인을 찍을 순 없다. 이제 정부와 사회가 답할 차례다.광고
고맙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고맙다. 당신들의 성과급 요구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피해온 질문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성장의 성과는 누구의 몫인가.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놀라운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그 성장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