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지난해 6월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 하트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들과 필자(맨 왼쪽). 필자 제공광고김태환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공동운영위원장“남자가 자존심도 없이 무릎 꿇냐?”중학교 3학년 때였다. 가해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때리지 말라고 빌었다. 그들이 내뱉은 말이 오래 남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울면서 술을 마셔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대로 졸업하면 안 될 것 같아서 4학년이 되기 전에 휴학했다.광고그 시기에 사회복지학과 동기들과 함께 꾸려가던 책 모임에서 우연히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남자답게’ 맞서 싸우지 않고 무릎 꿇은 내가 문제가 아니었다. 폭력으로 서열을 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응징하는 왜곡된 남성 문화가 문제였다. 이런 문화를 당연한 것처럼 강요해온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갖게 되었다. 가부장제와 폭력을 끝내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적이었다. 페미니즘의 언어가 처음으로 나의 청소년기 상처를 설명해줬다.이러한 경험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남함페는 2017년 책 모임으로 시작해, 성평등 교육과 학술 연구 등을 통해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을 알리고 있다. 내 직함은 공동운영위원장이다. 그런데 직책 앞에 ‘장’이 붙은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뭉툭하게 일하고 있다. 내 이름으로 쓴 책도 없고, 직접 강의를 하지도 않는다. 나는 주로 단체의 회계 장부를 갱신하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운영위원회 회의를 주재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가 쓸 이야기가 있나?”였다.광고광고남성 페미니스트가 글을 쓴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우리 참 대단하죠?”, “우리 고생하는 거 알아주세요!” 이런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가 이런 지적을 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성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온 사람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내가 해온 일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쓰기로 했다. 시민사회 활동을 하면서 침묵도 무책임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페미니즘의 도전’이 인식의 전환을 불러왔다면, 서울 도봉구에 있는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은 방향을 잡아줬다. 청소년 사회 행동 동아리에서 1년을 함께했다. 연말 밥 자리에서 한 청소년이 말했다. “요즘은 폰(휴대전화)으로 네이버 뉴스 제목 정도는 읽어요. 전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어요.” 친구 따라 왔다가 별 관심 없다며 버티던 아이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소름이 돋았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한 사람의 일상이 조금씩 열리는 것, 그 옆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날 알았다. 나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광고지난해 2월15일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정기총회에서 참가자들이 돌봄과 일상을 주제로 한 퀴즈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참여하고 있다. 필자 제공지금도 매년 1월, 활동가들을 한명씩 모두 만난다. 남함페는 매년 2월 정기총회를 열고 운영위원회를 새로 구성한다. 그 준비를 위해 나는 1월 내내 사람들을 만나 밥을 먹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다. 그러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로 고민, ‘번아웃’, 이 활동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말들. 어쩌다 보니 그런 이야기는 나한테만 한다고들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조금 더 솔직해진다는 건 느낀다. 그 대화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더 깊이 있게 만나는 자리가 없으면 남은 1년 동안 우리 단체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외적인 보상은 적다. 알아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조직이 돌아가고,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뀐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노동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지탱한다. 페미니즘 운동도 예외가 아니다.어두운 주차장에서 폭력 앞에 무릎을 꿇었던 아이가, 페미니즘을 통해 그 수치심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운동 안에서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뾰족한 무기는 없다. 하지만 그냥 여기에 있다. 올해도 동료 활동가를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이 세상의 밑바닥이 아닌 밑받침이다. 나는 나의 이런 삶이 꽤나 마음에 든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폭력 앞 무릎 꿇던 남학생이 페미니즘을 만날 때 [6411의 목소리]
김태환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공동운영위원장 “남자가 자존심도 없이 무릎 꿇냐?”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가해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발 때리지 말라고 빌었다. 그들이 내뱉은 말이 오래 남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 기억이 떠오를 때면 울면서 술을 마셔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