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바깥의 마음 l 이기호 작가 주차장 개조해 만든 구기동 작은 전셋집 겨울 되자 결로에 곰팡이, 천장에선 물 뚝뚝 “환기 잘해야지” 말하던 집주인 공영락씨 20년 지나 그를 마주친 곳이 호텔이라니…광고광고광고오래된 단독주택과 낮은 건물들이 어우러진 서울 도심 풍경이다. 이기호 작가가 처음 서울에서 마련한 전셋집은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복층 구조의 집이었다. 이 작가는 그 집에서 겨울철 결로와 곰팡이, 누수 문제로 집주인과 전세 보증금 반환 소송까지 벌여야 했다. 클립아트코리아 광고서울 바깥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오직 서울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기대와 흠모, 동경, 흥미를 가진 이가 있는가 하면 질투와 분노, 절망을 느끼는 이도 있다. 서울 바깥에 사는 또는 살아본 적 있는 여섯명의 작가가 서울 바깥의 마음을 정확히 응시한다. 그 집은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었다. 2층짜리 단독주택에 딸린 주차장, 그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나름 복층 구조의 거실 겸 주방, 그리고 욕실과 세탁기가 있던 집. 작은 골목과 연결된 새시 문을 열면 바로 거실이었던 집. 그래서 항상 골목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던 집(처음에는 신문지 위에 신발을 두다가 나중에 작은 삼단 서랍장을 사서 그걸 문 옆에 두었다). 거실 유리창을 열면 북한산 비봉과 문수봉이 보였던 집. 그 풍경 때문에 바로 계약했던 집. 주인집 대문은 동쪽으로 나 있었고, 내가 출입하는 새시 문은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집주인 눈치를 보지 않고 출입할 수 있었던 집.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가려면 15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던 집. 그래도 그 오르막길에서 진돗개와 담장을 넘어온 자두나무와 평창동 일대 야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집. 서울 하늘 아래 처음으로 살아본 전셋집. 그래서 두려웠던 집. 내 첫 집. 그 집의 전세는 4천만원이었다. 서른세살에 첫 창작집 계약금과 한 재단에서 받은 창작 기금, 거기에 부모님이 도와준 1500만원을 더해 만든 돈. 그 돈으로 덜컥 그 집을 계약했다. 더 이상 500에 20짜리 옥탑방을 전전하기도 싫었고, 위태위태한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그만두고 싶었다. 그리고 더 결정적으론…… 당시 여자친구(다행히 지금의 아내다)의 집이 폭삭 망해버렸기 때문이었다(말하자면 집이 흔적도 없이 은행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당장 거처가 없어진 여자친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하고 싶었다.광고 “한데 왜 구기동이야?” 여자친구의 좋은 질문이었다. 왜 많고 많은 서울의 동네 중 하필 경사도 가파르고 교통도 나쁜(지하철이 닿지 않는) 구기동일까? 우선 첫번째,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그곳이 가장 공기 좋고 덜 번잡한 곳이었다. 인왕산도 가깝고 북한산도 지척에 있고, 부암동에 있는 백사실 계곡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그곳엔 농사를 짓는 사람도 살았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집에 틀어박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던지라 내겐 공기가, 산책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10년 가까이 월세 옥탑방(그것도 지하철 주변)만 옮겨 다녔으니, 이제 무엇보다 불빛이 없는 곳(아아, 자려고 불을 끄면 창문이 파란색, 붉은색으로 계속 번쩍거렸다. 노래라도 한 곡조 부르고 잠들어야 할 것 같았다)으로, 주인 눈치 보지 않는 곳(옥탑방 주인들은 정기적으로 옥상에 친지들을 불러 삼겹살을 구워 먹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으로 가고 싶었다. 구기동이 딱이었다. “그러면 오빠는 아예 시골로 들어가서 살아도 되겠네?” 역시 좋은 질문이었다. 그렇게 집에만 처박혀 있고, 산책만 하려면 차라리 고향인 강원도 원주나 집값이 저렴한 파주나 연천 쪽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여자친구는 그것을 물은 것이었다. 그게 구기동으로 이사한 두번째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내게 서울은 다른 무엇보다 ‘교보문고’가 있는 도시였다. 아, 처음 그곳에 갔을 때(대학교 1학년 때였다) 얼마나 놀랐던지! 책을 파는 곳에 마음껏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니! 그곳의 카펫과 은은하게 배어 있는 책 냄새와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신기하고 좋았다. 내 고향 원주의 제일 큰 서점이었던 동아서점(그곳은 주로 참고서를 팔았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나는 교보문고에서 휴일을 보냈고, 교보문고에서 약속을 잡았으며, 교보문고에서 누군가와 헤어지기도 했다. 한나절 내내 문예지에 실린 소설들을 읽었으며, 하릴없이 몽블랑 매장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곳이 내 문학의 최전선이었고, 내 감각의 밑천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서울을 떠날 수 없는 것. 교보문고와 가급적 가까운 곳에 거처를 잡아야만 했던 것(구기동에서 교보문고까지는 내 느린 걸음으로 한시간쯤 걸렸다). 나는 내 첫 집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그해 겨울로 접어들면서부터 하나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을엔 안 그랬는데, 보일러를 틀고 온수를 쓰면서부터 벽과 천장으로 결로 현상이 생겨났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2층(복층 구조라 늘 2층이라고 불렀다)에서 글을 쓰다 보면 노트북 자판 위로 툭툭, 물방울이 떨어졌다. 뭐야, 이거. 황급히 노트북을 치우고 마른 수건으로 천장을 닦아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툭툭, 마치 대중목욕탕 한가운데서 글을 쓰는 것처럼 노트북 화면 위로 습기가 차올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침대에서 자고 있으면 또르르, 벽을 타고 물줄기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밖에 비 오나? 잠결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면, 비는커녕 별들만, 무수한 별들만 북한산 창공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곰팡이.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욕실 타일 위로, 행거에 걸어둔 점퍼 위로, 새시 문과 창문 주위로,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하루가 멀게 곰팡이제거제를 뿌리고 청소 솔로 닦아내도 속수무책이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퀴퀴하고 매운 냄새가 훅, 얼굴 위로 밀려들어왔다. 이건 안 되겠구나, 여긴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구나(그곳이 원래 주차장으로 쓰였던 곳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옆 건물에 살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였다)……. 나는 집주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공영락. 그게 집주인의 이름이었다(물론 이 지면엔 가명을 썼다). 구기동에 정원이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가졌고, 외제 차를 몰았으며, 아내와 외아들을 둔 사업가. 그게 내가 알고 있던 그 남자의 전부였다. 전셋집 계약할 때, 내 직업과 부모님의 직업과 본적을 하나하나 따져 묻던 사람. 마른 체형에 오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던 남자. 그는 나와 함께 전셋집을 둘러보고 난 뒤(그때도 결로 현상으로 인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딱 한마디만 했다. “환기를 잘해야지, 환기를.” 그러곤 끝이었다. 아니요, 아저씨. 이건 환기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외풍이 얼마나 센지 환기는 저절로 된다고요. 계약할 때 이상 있으면 다 고쳐주겠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어렸고, 서울 사람들한테 이상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늘 서울에 세 들어 사는 기분. 서울 사람들이 모두 집주인 같은 느낌. 집주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 것. 그게 내가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배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해 연말을 넘기지 않고 다시 집주인을 찾아갔다. 여자친구가, 여자친구가 그 집에서 계속 앓았기 때문이었다. 감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까지 얻고 말았다. 그녀가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계속 기침만 한 밤이 지나고, 나는 다시 공영락씨를 찾아갔다. “집을 고쳐주세요. 아니면 보증금을 돌려주시든가요.” 나는 제법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러나 공영락씨는 나를 귀찮아했다. “야, 나가.” 그는 현관에 서 있는 나에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반말했다. “나 지금 이혼 소송 중이거든. 나중에, 나중에 말해.” 그는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아침부터……”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아침부터”라는 말이 내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꼬박 밤을 새운 사람이 기다린 아침, 예의를 갖추기 위해 기다린 아침, 그 아침이 훼손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공영락씨에게 정식으로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 대해서 일일이 여기에 적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는 나와 있을 때와는 달리 판사 앞에선 아주 고분고분했는데(정식 법정이 아니고 무슨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소액 심판이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도 계속 ‘환기’ 이야기를 꺼냈다. 판사의 결정은 간단했다. 모월 모일까지 보증금을 돌려줘라. 기일을 어길 시 그날부터 법정 이자가 더해진다……. 공영락씨는 판결이 난 뒤 일주일 만에 보증금을 돌려줬다. 그러곤 나를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여자친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똑바로 살아, 이 사람아! 언제 어디서 마주칠 줄 알고!”겨울철 결로로 창틀 주변에 성에가 낀 주택 내부 모습. 클립아트코리아 나는 지금 광주광역시에 산다. 직장 때문에 아내와 함께 내려왔는데,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이웃들을 만나고, 함께 나이 들어갔다. 가끔 아내와 산책할 때 서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다시 서울 가고 싶어? 내가 그렇게 물으면 아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라고 답했다. 당신은, 당신은 어떤데? 아내가 그렇게 되물으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가끔 서울이 그립기도 했다. 교보문고에서 웅크린 채 책을 읽었던 평일 오후가, 거기에서 나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커피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커피를 마시던 여름밤이, 그때 그 막막함이, 때때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엔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 참석하느라 아내와 단둘이 1박2일로 서울에 다녀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아내도 동행했기에 조금 무리해서 비싼 호텔도 예약하고, 함께 만날 친구들에게 미리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때마침 서울엔 폭설이 내려 아내도 나도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서는데, 아내가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래? 뭐 놓고 왔어?” 내가 묻자, 아내는 말없이 방금 나온 호텔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봤어?” “뭘?” 아내가 눈짓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공영락씨잖아…….” 나는 아내의 시선이 닿은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좀 전, 우리가 나올 때 호텔 출입문을 열어주고 정중히 인사를 건넨 사람. 속칭 ‘도어맨’이라고 불리는 사람. 잿빛 코트에 각진 모자, 흰 장갑을 낀 남자. 공영락씨가 맞았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눈은 내리고, 호텔의 조명은 파스텔 톤으로 변해갔다. 공영락씨와 나의 두번째 만남. 나는 아내의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그곳에서 멀어져갔다. 그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기호 작가이기호 작가 이기호 작가 l 199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등을 펴냈다.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노근리평화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몰염치했던 서울 집주인, 그와의 두번째 만남 [.txt]
서울 바깥의 마음 l 이기호 작가 주차장 개조해 만든 구기동 작은 전셋집 겨울 되자 결로에 곰팡이, 천장에선 물 뚝뚝 “환기 잘해야지” 말하던 집주인 공영락씨 20년 지나 그를 마주친 곳이 호텔이라니… 서울 바깥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오직 서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