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우연한 만남의 ‘사랑 판타지’ 이젠 옛말 소셜미디어·데이팅앱이 연애의 공간 계급 격차 극복? 물정 모르는 환상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2026)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광고김도훈의 삐딱광고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나는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웃기는 사람도 아니다. 글은 좀 웃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글보다 웃긴 사람은 아니다. 사실 글보다 나은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가 쓴 글보다 재미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쓴 글보다 옳은 사람도 없다. 우리가 소셜미디어에 쓴 글보다 나은 사람이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훌륭해졌을 것이다. 이래서 글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된다. 그래도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나는 연애에는 영 젬병인데, 그 때문에 좋아한다. 영화는 일종의 소망 충족 예술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겪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연애는 평생 못할 건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나온 것들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1997)이다. 전성기 줄리아 로버츠와 신인 시절 캐머런 디애즈가 나오는 이 영화는 정말이지 평가절하당한 걸작이다. 주인공이 연애에 실패하는 영화가 이토록 로맨틱하기도 쉽지 않다. 줄리아 로버츠의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노팅 힐’(1999)도 좋아한다. 사실 ‘노팅 힐’은 오드리 헵번을 스타로 만든 역사적인 영화 ‘로마의 휴일’(1953)의 현대적 버전이나 다름없다. ‘만약 공주가 왕실로 돌아가지 않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에 성공했다면?’이라는 가설로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남자들의 소망 충족 영화다. 평범한 여자들의 소망 충족 영화도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1995) 같은 영화들이다.광고광고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1997)의 한 장면. 트라이스타 픽처스 제공 얼마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보다가 깨달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끝났다. 거의 이십년 만에 만들어진 이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가 중심인 이야기는 아니다. 잡지 산업 종말 앞에서 어떻게든 과거의 영광을 되살려 보려는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다. 쓸모없는 캐릭터가 하나 나온다.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의 남자 친구다. 이 영화에서 남자 친구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앤디의 정신적 연인은 오히려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하는 무시무시한 편집장 미란다다. 전편에서도 일 때문에 자기 생일 파티를 놓쳤다고 징징대는 앤디의 연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자 친구의 출세에 위협을 느끼는 지질한 젊은 남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내러티브에 어느 정도 공헌하는 바는 있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남자 친구는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젠 할리우드도 충무로도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장르가 됐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일상의 로맨스가 벌어질 여지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로맨틱 코미디는 낯선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도시 판타지다. 스마트폰이 발명되자 연애의 감각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연한 만남은 잘 없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메시지와 틴더 같은 데이팅 앱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시대다. 나는 중년 남성들이 새벽 2시에 꽃 사진과 함께 보내는 메시지에 치를 떠는 여성들의 불평을 종종 본다. 이 글을 읽는 남성 독자들은 제발 모르는 여성에게 메시지 좀 보내지 마시라. 페이스북의 ‘콕 찔러보기’ 기능도 사용하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그걸 받는 여성들은 직접 만나 주먹으로 여러분을 콕 찔러보고 싶어질 뿐이다.영화 ‘유브 갓 메일’(1998)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마트폰 시대가 사랑과 연애를 완전히 몰락시킨 건 아니다. 어쨌든 연애하고 싶은 사람들은 연애를 한다. 문제는 스마트폰 시대가 영화 속 사랑과 연애를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노팅 힐’을 리메이크한다면? 불가능하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서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으로만 가득할 것이다. 우연한 만남 같은 건 벌어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스타와 평범한 책방 주인이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셜미디어는 온갖 악플로 가득할 것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시애틀과 뉴욕에 사는 남녀가 라디오 사연을 통해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고? 2020년대에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다. 목소리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시애틀로 날아간다는 영화의 뼈대는 무너진다. 클릭 몇번만 해도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멕 라이언 캐릭터는 톰 행크스 캐릭터가 5년 전 새벽에 페이스북에 올린 정치 게시물 하나로 일찍이 마음을 접었을 것이 틀림없다.영화 ‘귀여운 여인’(1990)의 한 장면. 부에나비스타 픽처스 제공 ‘계급 판타지’도 더는 낭만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유브 갓 메일’(1998) 같은 영화는 더는 만들어질 수가 없다. 작은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여성이 얼굴도 모른 채 이메일로만 애틋한 감정을 나누던 남자가 실은 동네 상권을 위협하는 대형 서점 체인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라니, 차라리 ‘로마의 휴일’이 이보다는 더 현실적일 것이다. 지금 배경으로 리메이크한다면 영화의 마지막은 사랑을 물리치고 ‘월가 점령 시위’에 나선 멕 라이언의 비장한 얼굴로 끝나야 마땅하다. 몸을 거래하는 여성과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가의 사랑을 다루는 ‘귀여운 여인’(1990)은 2020년대에는 시작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계급은 더는 로맨스의 영역이 아니다. 경제적, 사회적 위치의 차이를 낭만적으로 풀어내는 걸 참아낼 수 있는 관객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광고 사실 내 머릿속에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 ‘윤 어게인’ 여성과 ‘촛불행동’ 남성이 데이팅 앱으로 만나 하룻밤을 보낸 뒤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으로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남녀가 어떻게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느냐가 이 영화의 중요한 뼈대다. 만들어질 리 없으니 결론도 미리 스포일러를 하겠다. 전세 사기를 당한 여성은 알고 보니 하이닉스 직원이었던 남성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마지막 장면은 갓 입주한 판교 아파트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게 로맨틱 코미디가 맞냐고? 요즘 세상에 신축 아파트만큼 로맨틱한 사랑의 결실은 없다. 이 시나리오에 투자하고 싶은 많은 영화 제작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리겠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로맨틱 코미디? 그런 시대는 끝났다 [.txt]
우연한 만남의 ‘사랑 판타지’ 이젠 옛말 소셜미디어·데이팅앱이 연애의 공간 계급 격차 극복? 물정 모르는 환상 김도훈의 삐딱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나는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웃기는 사람도 아니다. 글은 좀 웃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글보다 웃긴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