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쓰고 평론하는 이안 ‘블랙리스트’ 10년 배상금으로 동시 레터 ‘블랙’ 출시…구독 3천명 돌파 잡지 ‘동시마중’은 16년째…전무한 ‘동시 운동’ 써나가동시를 쓰고 평론하는 이안(59) 시인이 2022년 말 시작한 동시 레터 서비스 ‘블랙’이 올 상반기 구독자 3천명을 돌파했다. 10년 전 폭로된 ‘박근혜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로서 받은 배상금에서 시작된 일. 시 ‘냉이꽃’은 그의 첫 동시집(2008)에 실려 있다. 그래픽 김은정 ejkim@hani.co.kr 광고“1300만원이 완전히 소진되면 끝나는 거로 생각하고 시작을 했어요. 후원금으로 이어질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이걸 지금 4년 가까이 만들고도, 방금 계좌를 보니까 2200만원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놀랍지요.”광고 이 말을 들은 이튿날이었다. 지난 17일 일요일 아침 10시 날아든 레터(카카오 채널) 한통. ‘동시 레터’를 표방한 ‘블랙’이다. 10쪽 안팎 디지털 레터에 시 한편이 담겨 있다.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어디서 구했는지/ 보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나갔다// 고양이는/ 보물 지도가 가짜라는 걸/ 꿈에도 몰랐을 거다// 그래서/ 한 번 집 나간 고양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거다// 해적 선장이 되어/ 보물섬을 찾아/ 바다를 떠도는 거다”광고광고 송찬호 시인의 새 동시 ‘집 나간 고양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동심이, 꿈이 현실이 되는 마법이 펼쳐진달까. 누군가는 아직도 집 나간 고양이다. 뭇사람들 보기에, ‘블랙’을 만드는 시인 이안(59)이 그럴 것이다. ‘블랙’은 2022년 12월29일 1호를 발송했다. 종잣돈 1300만원에 첫 구독자는 100명가량이었다. 최근치인 181번째에 앞서 올해 구독자 3000명을 돌파했다. 오는 9월 말 200호를 쏜다. 지난 16일 오전 마우스도 없이 ‘화면 터치’로 레터 편집을 하는 이안 시인을 만났다. 뚝딱뚝딱, 아니, 쓱싹쓱싹. “제가 원래 이런 걸 잘 못하는데, 근래 하는 일들에 아이패드 기능, 팟캐스트 녹음도 필요해서, 유튜브 참고해가면서 익혔어요. 맞아요, 살기 위해서….” 그가 부러 웃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언제고 대개 웃는 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정완 동시인의 그림일기, 문단 소식 등을 보태 꼬박 3시간 정도는 집중해야 레터는 완성된다. 충북 충주, 작업실과 거주처 구분 없이 5월의 햇살이 들이붓던 2층짜리 단독 주택 안이었다.1999년 시로 등단했다가 2008년 첫 동시집, 2014년 첫 동시 평론집을 펴낸 이안 시인은 다음달 첫 동시론집을 출간한다. 지난 16일 충북 충주 자택 서재 겸 거실 책상 앞에서 그가 자신의 창작 너머 지난 20년 가까이 ‘동시의 판’을 키우려던 이유를 들려줬다. 임인택 기자 imt@hani.co.kr 블랙이 출시된 것도, 동시 서비스에 ‘블랙’(Black)이 붙은 데도 사정이 있다. 올해로 세상에 알려진 지 10년이 되는 ‘박근혜 블랙리스트’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하기 위한 계교로 추려진 9천여명 명단에 동시 쓰던 이안도 올랐다. “(지시받아) 만드는 사람조차 왜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제 팔자를 한탄하며 만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샤머니즘의 정치 아래서는 만인이 불행하다”(황현산 문학평론가)고 갈파됐던 범죄 사건의 끝에, 이안은 국가 배상금 1300만원을 손에 쥐었다. 2022년 8월 판결이었고, 넉달 뒤 ‘블랙’이 나간다.광고 “개인적으로 써서는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닌 우리, 공적인 나눔에 쓰고 싶었는데,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던 동시 전문 웹진을 혼자 감당할 수준으로 시작하자 했어요.” 젊은 동시인 또는 새 사조의 신작 동시를 발굴해 무료 배달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을 뿐, 인건비 한푼 없이 원고료와 플랫폼 이용료만 지급해도 100여차례면 ‘파산’할 일이었다. 1만원, 2만원, 3만원짜리 후원자가 나오기 전까진 말이다. ‘블랙’의 또 다른 계기가 ‘동시마중’이다. 2010년 5월5일 어린이날, 이안 시인이 창간한 동시 전문 잡지다. 동시 전문지라곤 계간지 한종(‘오늘의 동시문학’)이 전부이던 그해 ―그조차 5년 뒤 폐간됐다― 동시마중은 태어나 올해 11·12월호로 ‘100호’(격월간지)를 맞게 된다. 국내 문학사에서 전무한 동시 잡지의 역사를 써간다. 동시마중엔 네가지가 없다. 광고, 후원, 그리고 온·오프라인 서점 판매. 우편으로만 받아볼 수 있으니, 발행인, 편집위원만큼 중요하고 막상 더 고된 업무가 ‘발송’이다. 함께 동시 쓰고 비평하는 이안·송선미 부부의 전담 업무다. 그렇게 단 한번 결호 없이, 정기독자 650명을 일궜다. 풀칠은 넉넉히 850권. 블랙은 ‘동시마중 레터링 서비스’라는 이름을 달고 배달된다. 말하자면 자매 사이. 그뿐인가. 이안 시인은 2014년 동시 전문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2021년엔 ‘오디오 동시마중’(월간)을 출범시켜 지속 중이다. 올 초엔 부정기 웹진 ‘땅감나무’를 창간하되, 젊은 작가들로만 편집위원을 구성했다. 바야흐로 “세대 이전을 꾀하는 것”이다. 2024년부터 위기가 도드라진 아동·청소년 출판 시장, 그 가운데 아동문학, 거기서도 ‘변방’으로 간주되어온 동시의 세계에서 이 ‘소란’들은 다 뭐란 말인가. ―새 매체를 만들고 확장해온 이유가 무엇인가? “동시집을 내고 보니 이쪽엔 부족한 게 많았어요. 동시 잡지도, 창작 교실도, 현장 비평서도 없었죠. 그래서 하나씩 제가 할 수 있는 거로 메꿨어요. 어찌 됐건 판을 만들고 재미있게 놀아야 ‘저 동네에 왜 사람들이 모이지’ 하며 기웃하고 새 사람도 들어올 테니, 판을 만들고 살리는 방향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결실이 있는가? “동시 문단은 40~60대가 주류입니다. 맞물려 젊은 시인들이 정말 탄탄해졌지요. 동시 창작 수업도 2014년부터 진행 중인데 저녁반 18명 가운데 20대 수강생만 2명입니다. 잦아지고 있어요. 20대가 없는 장르를 전망하긴 어렵지 않겠어요?” 주저하고 갈 데 없던 신작이 발표와 비평의 기회를 얻고, 책으로도 엮여 거듭 독자와 만난다. 일반 시를 쓰던 기성 시인, 활로를 본 젊은 시인들이 동시의 세계로 넘나드는 동력이 된다. 이달 출간된 동시집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는 블랙에 실린 시로 만든 두번째 선집이다. “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인가….” 엮은이 이안은 세간의 평가를 인용하여 썼다. 실상 이안 시인 자신도 뒤늦게 동시를 만나, 집 나간 경우다. 1999년 시로 등단해 ‘목마른 우물의 날들’(2002), ‘치워라, 꽃!’(2007)을 먼저 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지인의 권유로 1996년 충주에 터를 잡고 시 쓰며 서점 하다, 쟁기질하다, 글쓰기 학원을 이어가던 때다. 와중에 한 동시인을 만났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이자 ‘감자꽃’의 시인 권태응(1918~1951). 1997년, 한국민예총 충북지부 문학위원장이던 도종환 시인(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도한 ‘제1회 권태응 문학제’ 특강 자리에서였다. “그날 동시를 처음 알았어요. 그전까진 시만 생각했지 동시 쓴다는 상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동시에 빛이 살짝 들어왔어요.” 한편 두편 쌓아온 동시로, 2008년 첫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을 냈다. 마흔한살이었다. 그해 문학동네가 시작한 동시집 시리즈의 사실상 첫번째로, 기획위원을 맡은 안도현 시인의 제안이 있었다. ‘고양이의 탄생’(2012)을 내고, 자신의 베스트셀러가 된 ‘글자동물원’(2015)을 지었다. 일반 시집은 다시 내지 못한다. 애초 시인이 헤어날 수 없는 동시의 21세기적 기류가 있었다. ‘대설주의보’의 시인 최승호가 2005년 펴내 동시의 대중성을 획기적으로 일깨운 ‘말놀이 동시집’을 필두로, 한국 대표 시인들의 첫 동시집 시리즈(비룡소의 ‘동시야 놀자’)가 2007년 시작됐다. 이러한 동향에서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는 2008년부터 올해 100권째를 펴냈다. 세분하고 구획화해 가는 여타 장르와 달리, 일반과 아동 문단의 금이 물러지며 동시의 독자는 다양성, 문학성, 대중성을 경험한다. 이를 발판 삼은 2010년대를 ‘동시의 시대’로까지 부르는 까닭이다. 가수 김창완이 2013년 ‘동시마중’ 3·4월호를 통해 처음 동시를 발표했고, 가수 이소은은 블랙 동시 선집 1권인 ‘나의 작은 거인에게’(2024) 속 시 12편을 가사로 쓴 노래 앨범을 지난해 발표했다. “‘동시마중’ 창간 이래 가장 큰 뉴스가 아마 김창완 등단이었어요.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늘면 어쩌지 엄청 걱정을 했었죠. 그런데 딱 3명 늘었어요. 이소은 앨범 소식도 화제가 많이 됐는데, 선집 판매나 블랙레터 구독으로 연결되진 않더라고요.” 부조리한 ‘동시의 시대’, 시인은 가만 또 웃고 있다. 그사이 블랙리스트가, 코로나 팬데믹이 있었다. 심사 의뢰가 한동안 끊겼고, 창작 강의마저 중단되며 한달 수입이 “영”을 기록(2020년 4월)하기도 했다. “지칠 때, 뚝 떨어질 때가 많죠. 과거엔 동시 생활자란 느낌이었는데, ‘블랙’까지 주마다 만들면서는 동시 노동자로 이동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블랙리스트를 두고 시인은 “너무 옹졸한 정치의 누추한 사례”라면서도, 새삼 10년 전의 그 “충격”을 곱씹을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동시 세계에 아직 없다는 동시론집을 다음달 출간하고, ‘블랙’ 200호를 쏘아야 하며, 11월에 ‘제3회 전국 동시인 대회’를 충주에서 개최하고 맞춰 100인의 동시 선집을 출간(출판사 사계절)한다. 전국 동시인 대회는 2018년 이후 8년 만의 행사로, 마침 30돌을 맞는 권태응 문학제와 수합할 터, 동시마중 100호는 되레 야단 부릴 게 못 된다. 두권의 동시 평론집도 냈던 시인이 이어 말했다. “최근 동시는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어린이와 작고 낮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어요. 소재나 주제 면에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집니다. 고여 정체된 게 아니라 새로운 물의 움직임을 따라 유동하고 운동한다는 점에서 살아 있는 운동체이자 생명체죠. 앞으로 10년, 20년의 동시 전망이 밝은 근거입니다.” 이토록 단단한 낙관주의야말로 ‘집 나간 고양이’의 진짜 결실이 아닐까. 동시 쓰는 사람들과 “보물섬을 찾아/ 바다를 떠도는 거다”, “다시 돌아”가지 않는 거다. 평론가 김이구가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평론 제목, 2007)고 제언한 지 얼추 20년 만이다. “아동·청소년 문학 안에서도 그림책, 저학년·고학년 동화, 청소년 소설 각기 100만부 작품이 나왔는데 동시만 나오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게 동시의 불가능이 아니라 동시에만 남은 가능성이라고 봅니다. 시인들은 완성도 높은 동시로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독자들 만나기를, 시장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밑도 끝도 없질 않으냐고 물을 만하다. ‘동시 운동가’ 이안이 답할 것이다. “사람으로서 타고난 본바탕을 동심이라고 하잖아요. 동시를 읽고 쓰는 것은 타고난 본바탕으로서의 동심을 회복해 가지려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고, 작고 낮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그들과 함께 살겠다는 시적 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시는 시와 사람, 시성과 인간성의 회복 운동이자 방향입니다.” “안 오는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인 천천히 오는 기쁨”(동시평론집 ‘천천히 오는 기쁨’)으로 말이다. 충주/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이안 시인이 지난 16일 충주 자택 2층 작업실에서 동시 레터 ‘블랙’ 181호(17일치)를 편집하고 있다. ‘블랙’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구독자에게 발송된다. 이안 시인이 창간해 올해 말 100호를 맞는 동시 전문 잡지 ‘동시마중’의 5·6월호(제97호)도 갓 출간되어 16일 서재에 쌓여 있다. 부부인 이안·송선미 시인이 우편 봉투 용도로 디자인된 책날개 끝머리(플랩)를 일일이 펴 다시 접고 풀칠해 뒤표지에 붙여야 한다. 정기 구독자가 우편으로만 받아볼 수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동시 운동가’ 이안…‘블랙리스트’로 열어젖힌 동시의 판 [.txt]
동시 쓰고 평론하는 이안 ‘블랙리스트’ 10년 배상금으로 동시 레터 ‘블랙’ 출시…구독 3천명 돌파 잡지 ‘동시마중’은 16년째…전무한 ‘동시 운동’ 써나가 “1300만원이 완전히 소진되면 끝나는 거로 생각하고 시작을 했어요. 후원금으로 이어질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