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27일 오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원과 인부들이 경기 고양시 벽제묘지공원 5-2구역에서 미니 굴착기가 올라올 수 있는 길을 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광고국방부가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유해 발굴에 실패했던 경기 벽제묘지공원에서 긴급 재발굴에 착수했다. 주검 매장에 참여했다는 제보자의 증언 때문인데, 내용이 일부 불확실해 실제 유해가 발견될지는 미지수다.국방부와 용역 계약을 맺고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유해발굴 실무를 진행해온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승원 부원장은 27일 한겨레에 “22일 지역 주민 탐문조사 결과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매장지를 안다는 제보자가 나타나 장소를 다시 특정해줬다”며 “기존 국방부와 진실화해위의 보고서에 나온 증언과도 합치되는 부분이 있어 국방부와 협의해 오늘부터 발굴을 3일간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발굴 지역은 기존 작업 지역으로부터 서쪽 50여m 산 위 방향으로 올라간 곳이다. 발굴팀은 이날 오전 잡초 제거 등을 위한 소형 굴착기가 올라가기 위한 길을 냈고, 29일까지 3일간 연구원 7명, 인부 5명을 투입해 본격적인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앞서 국방부는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경기 고양시 벽제묘지공원 5-2구역(덕양구 보광로 193-2)에서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나 유해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벽제에서 철수했고, 다음 달부터 또 다른 매장 추정지인 서울 구로구 오류동 옛 공군정보부대 터에서 발굴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 벽제와 오류동은 국방부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가장 유력한 매장 추정지로 거론돼온 곳이다. 실미도 사형집행 공작원에 대한 유해발굴은 2006년 서울 오류동에서 처음 시작한 이래 이번이 다섯 번째다.광고제보를 한 이 지역 주민 김아무개(77)씨는 이날 오전 한겨레와 만나 “벽제공원묘지 인부로 일하던 1970년대 어느 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오후 5시경 군인들이 덮개가 씌워진 트럭에 4명의 주검을 싣고 와 이들을 매장하는 일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주검의 얼굴은 천으로 싸여있었고, 품삯으로 5000원을 받은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미도에서 탈출한 뒤 죽은 이들이라고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공작원들의 사형집행은 김씨의 증언과는 달리 여름 이후가 아닌 3월에 이뤄졌다. 그가 공작원 주검을 매장했다는 시점이 공작원들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뤄진 1972년인지도 불투명하다.실미도 사건은 1968년부터 북한 침투 목적으로 인천 무의동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제209 파견대)에서 훈련받던 공작원 22명(총 31명 중 나머지는 훈련 중 처형 등으로 사망)이 1971년 8월23일 부당한 대우에 항거해 서울로 진입하다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한 사건이다. 자폭에도 살아남은 임성빈·이서천·김창구·김병염 등 4명은 1·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상고하지 않아, 사건 7개월 만에 형이 집행됐다. 군 당국이 이들에게 베트남전 파병을 제안하며 상고 포기를 회유했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