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0:002014년 2월13일 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강기훈씨의 모습.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광고서울고법이 지난 21일 ‘유서 대필 조작 사건’ 피해자 강기훈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추가로 인정했다.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는 국가배상 소멸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취지에 따른 것이다. 검찰이 35년 전 강씨를 수사하면서 변호인 접견권을 침해하는 등의 불법을 저지른 것에 대해 위자료를 더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의 본질인 검찰의 ‘조작 수사·기소’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공안 검찰의 부역 행위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씨는 1991년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이 분신한 뒤, 그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3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핵심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감정서가 위조된 사실이 드러나 2015년 재심이 개시돼 무죄가 확정됐다. 강씨는 국가와 검사 등을 상대로 손배 소송을 냈는데, 1심과 2심은 필적감정 위조에 대한 국가 책임은 인정했지만 검찰 수사 과정의 위법 행위에 대해선 시효가 지났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의 소멸시효 판단이 잘못됐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이번에 파기환송심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강씨 쪽은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부당하게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도 강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분신 배후’를 찾으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이 청와대에서 하달됐고, 필적감정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강씨가 피의자로 지목된 사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검찰은 유서 필적과 흡사한 김씨의 평소 흘림체 필적을 확보하고도 감정을 의뢰하지 않고, 유서와 전혀 다른 정자체 필적만 선별해 국과수에 보냈다. 강씨에게 유리한 증거는 은폐하고, 검찰 수사 방향에 부합하는 증거만 선택한 것이다. 명백한 조작 수사, 조작 기소다. 그런데도 서울고법은 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자료를 더 받게 된 것에 만족하라는 것인가. 국가 배상의 본질은 돈이 아니다. 피해자의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고,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공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강씨 사건은 검찰이 어떤 방식으로 정권에 부역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법원이 진작에 단죄했다면, 검찰이 지금처럼 해체 위기를 맞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