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밤 9시30분 만리포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친 학생들이 택시를 타고 있다. 학교 앞 버스는 이미 끊겼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광고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살리기’ 공약이 쏟아진다. 변방에 대한 ‘반짝’ 관심이다. 지방소멸은 왜곡된 표현이다. 지역이 잘못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정치가 방치한 지역불균형 탓이다. 여기, 2026년 ‘전환’을 맞이한 지역이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이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해, 산업 재편과 인구감소 위기에 처했다. 기자 셋이 태안을 오가며 201명을 인터뷰했다. 이야기의 무대는 태안이지만, 소외된 지역 모두의 이야기다. 만리포고등학교는 충청남도에서 가장 ‘작은' 고등학교다. 전교생이 66명이다. 충남 고등학교(118곳) 가운데 학생 수가 가장 적다.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전교생 100명이 안 되는 충남의 유일한 일반고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학교는 읍내(자동차로 20분)보다 바닷가(5분)와 더 가깝다. 학교 체육관 뒤쪽 오솔길은 작은 마을로 이어진다. 어스름한 저녁이면 학교 앞 논에서는 트랙터가 굴러간다. 밤이면 개구리가 운다. 1983년 개교 이래, 올해가 신입생(14명)이 가장 적었다. 태안이 인구감소지역이라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인근 만리포중(20명), 근흥중(26명)이 점점 ‘작은 학교’가 되어가는 탓이다.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60명 이하인 학교(‘충청남도 작은 학교 지원 조례’)를 말한다. 태안군에 있는 초등학교 19곳 가운데 15곳, 중학교 7곳 가운데 3곳이 ‘작은 학교’에 해당한다.지난 12일 오후 만리포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물리학Ⅱ 수업을 듣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광고 만리포고 ‘온라인 카페 학습실’ 시골의 작은 학교라서 겪는 설움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다. “꺼졌네.” 지난 12일 오후 6교시, 물리학Ⅱ ‘전류와 저항’ 온라인 수업을 듣던 3학년 예준이가 노트북을 덮었다. 수업 시작 5분 만이었다. 예준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바꾸러 갔다. “배터리가 얼마 안 가서, 50분 수업에 무조건 한번은 노트북을 바꿔줘야 해요.” 같이 수업을 듣던 병준이가 말했다. 이 수업 수강생은 둘뿐이다. 2학년 예지는 일본어와 생명과학 두 과목을 온라인으로 듣는다. “온라인 수업은 가뜩이나 집중도가 떨어지는데, 인터넷 연결은 버벅거리고 마이크 안 되고 카메라 안 보이고… 노후화된 교육환경을 좀 개선해줬으면 좋겠어요.”광고광고 몇년 전부터 예정됐던 그린 스마트스쿨(교육환경 개선) 사업이 무산되고, 지난해 폭우로 인터넷 설비가 침수되는 등 만리포고의 교육환경은 여러가지로 열악하다. “학급 수가 줄어들어서 문 닫는 게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인터넷 장비나 환경 개선이 계속 미뤄지는 분위기”(조혜지 기술·가정 교사)다. 이날 6교시, 바로 옆 ‘온라인 방송교실’에선 생명과학 수업이 진행됐다. 원래는 온라인 수업이지만, 이날은 월 1회 외부 교사가 학교를 직접 찾아오는 ‘특별한 날’이다. 만리포고에는 과학 교사가 1명이다. 화학은 담당 교사가 교실에서 직접 수업을 하지만, 나머지 물리학·지구과학·생명과학은 온라인 수업이 불가피하다.광고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고1·2 학생들에겐 심각한 문제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권’을 주겠다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과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골(군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의 개설 과목 수는 85.9개로, 도시(시·구 지역 98.6개)와 격차가 크다(2025년 교육부 1100개 학교 조사). 주변 학교들과 공동으로 과목을 개설할 수는 있지만,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긴 어려운 노릇이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서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한국교육개발원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 이는 대학 입시에서도 소규모 학교에 불리한 구조로 이어진다. 학생부에 과목별 내신 등급과 수강 인원이 기록되니, 아무리 학교 이름을 가린다 하더라도 ‘작은’ 시골 학교라는 게 자연스레 드러난다. 수강생이 적어 등급 산정도 힘들다. “모든 교육정책이 대도시 위주로 짜인 결과”(신성원 만리포고 국어 교사)다. 충남도교육청 쪽은 “학생, 학급 수가 기본 예산 책정 기준이라 만리포고처럼 작은 학교는 예산이 적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강사비, 기자재 유지·보수비 등을 특별 지원한다”고 밝혔다.지난 12일 밤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야간자율학습실은 올해 사라진 1학년2반이 쓰던 교실이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만리포고 야간자율학습실 올해 ‘사라진’ 1학년 2반의 교실은 ‘야자실’로 쓰인다. 여전히 ‘1-2’ 팻말이 붙어 있다. 만리포고에는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드물다. 교통이 불편해서다. 부족한 공부는 방과후수업 등을 통해 “쌤들”의 열정으로 채워진다. ‘야자’에는 10명 안팎이 참여한다. 야자가 끝나는 밤 9시30분, 학교 건물 앞에는 택시 4대가 늘어선다. 학생들을 집까지 데려다줄 택시다. 이미 학교 앞 버스는 끊긴 시간이다. 군청에서 받는 지원금으로, 사는 곳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1호차’ ‘2호차’로 묶어서 탄다.광고 이 학교 아이들에게 등하교는 생존의 문제다. 예지는 아침 6시45분, 소원면 의항리의 집에서 출발한다. 20분을 걸어가야 있는 정류장에서 첫차(7시15분)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버스(9시40분)를 타면 ‘지각’이다. 파도리에 사는 1학년 정우와 선우도, 예지와 비슷한 7시30분에서 40분께 학교에 도착한다. 1시간 남짓 남는 시간, 정우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잔다”. 소근리에 사는 3학년 지훈이는 6시50분 첫차를 놓치면 아예 뜀박질을 선택한다. 지훈이는 중학교 육상선수 출신이다. 100m를 13초에 달리는 지훈이라도, 꼬박 1시간을 달리는 건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라 위험하다. “덤프트럭에 치일 뻔한 적도” 있다. 지훈이는 이번 학기 방과후수업으로 배구를 듣고 싶었는데, 망설였다. 수업이 끝나고 1시간30분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1·2학년 때 담임 김동준) 쌤이 차로 집에 데려다줄 테니 방과후수업 들으라고 하셔서” 지금은 배구 대회에도 나갈 준비 중이다. 학교 근처에 편의점이 없어 방과후수업을 듣거나 야자를 하는 아이들은 자주 교무실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선생님들이 주문해둔 컵밥, 컵라면이 저녁 식사다. ‘폐교’ 예정된 모항초 만리포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모항초등학교는 내년 3월 ‘폐교’되거나 ‘분교’로 전환될 예정이다. 지난해 신입생이 없었고, 올해 전교생(15명)이 교사 수보다 적어져서다. 학부모 60% 이상이 찬성하면, 폐교가 결정된다. 2021년 이후 6년간 태안군에서는 초중학교 6곳이 통폐합되거나 폐교됐다. 같은 기간 전국에선 학교 158곳이 폐교했다.(‘지방교육재정알리미’) 올해 태안군 전체 초등학교 신입생은 194명이다. 10년 전(434명)의 절반도 안 된다. 2023년생이 입학하는 2030년에는 신입생이 131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태안교육지원청은 예상한다. 지난해 태안군의 출생아 수는 126명이었다.충남 태안군 남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태안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학교가 ‘폐교’될까 봐 불안해한다.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 직원 사택 근처에 있는 태안읍 백화초(전교생 588명), 화동초(179명)와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태안초(245명)를 제외한 모든 학교의 고민이다. 지난해 12월 발전소 1호기가 폐쇄된 이후로 인구감소와 폐교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졌다. 남면에 나란히 있는 남면초와 삼성초의 병설유치원은 올해 휴원했다. 7살 아이들이 졸업한 뒤에 신입생이 1명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남면초 교사들은 유치원 교사와 함께 동네 5~6살 아이들 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손에는 유치원 홍보자료와 선물 꾸러미를 들었다. 휴원 위기를 앞두고 “유치원 신입생을 찾기 위해서”(남경록 남면초 3학년 1반 담임교사)였다. 아이들이 줄어든 시골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그렇게 “동네에 7살이 셋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셋은 내년 1학년 신입생 ‘후보’다. 다른 학교로 갈 수도 있다. 학교마다 신입생 ‘유치’ 경쟁이 붙어, 셔틀버스를 보내주겠다거나 장학금을 주겠다고 설득하는 학교도 있기 때문이다. 웃지 못할, 서글픈 현실이다.남면초등학교에서 3학년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남면초 3학년은 2명이 전부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남면초 3학년 1반 교실 현주는 2024년 남면초에 딱 1명뿐인 1학년 신입생이었다. “5살 때는 막내, 7살 때는 제일제일 언니였어요.” 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닐 때도 동갑 친구는 없었다. 언니, 동생들이랑 어울려 놀았다. 초등학교 1학년 1반에선 혼자였다. “저는 왜 친구가 없어요?” 선생님께 투정도 부렸다. 집에 가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농사짓느라, 식당 일을 하는 엄마랑 배관 일을 하는 아빠는 바빠서 놀아줄 사람이 없다. “겨울 되면 엄마 고향인 라오스에 가는데, 그때가 신나요.” 그해 6월 슬민이가 전학을 왔다. 경기도 안산에 살던 슬민이 가족은 태안에서 펜션을 운영하러 이주했다. 슬민이는 현주를 처음 봤을 때 “조금 부끄러웠다”. 현주가 “초코맛 사탕”을 주면서 “친해지자”고 하며 웃었다. 둘은 그 뒤에 단짝이 됐다. 2년 가까이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 “싸울 뻔한 적도 있는데, 서로 얼굴 보면 웃음이 나와요.” 둘은 마주 보며 킥킥 웃었다. 남면초에서 6.3㎞ 떨어져 있는 삼성초에도 2024년 신입생이 1명뿐이었다. 혼자 외로워하던 아이는 1년 뒤 결국 태안읍 내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현주와 슬민이, 남면초 3학년은 2명이다. 남면초 전교생은 27명, 삼성초 전교생은 20명이다. ‘작은 학교’인 남면초와 남면중(전교생 39명)은 학교 건물을 같이 쓴다. 초등학교가 1층, 중학교가 2층에 있다. 통합학교라, 교장도 1명이 겸임한다. 전교생이 60명 미만인 ‘작은 학교’ 비중은 충남(2008년 17.8%→2024년 34.7%), 전남(36%→46.5%), 경남(20.8%→25.1%) 등 지역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는 0곳이다.(한국교육개발원) 전국의 각 지자체나 교육청은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에 예산 수십억원을 투입 중이다. 전남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에서는 폐교를 막기 위해 유학비, 주거비 등을 지원해주는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경남 함양군 서하초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연계해 학교 앞에 임대주택을 짓고, 지역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어 학부모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등의 노력 끝에 2020년 전교생이 10명에서 27명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태안에서도 2007년 원북면의 대기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살리기’ 운동이 활발했다. 전교생 27명으로 대기초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학부모, 교사, 마을 주민 등이 힘을 모았다. 마을 중심의 교육공동체를 만들고자 생태교육, 마을 공간을 이용한 돌봄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 이후 대기초의 학생 수는 40명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폐교’ 걱정을 안 하던 대기초도 올해 전교생이 다시 30명대로 떨어졌다. 경남 서하초나 대기초의 사례는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인구감소 사회에서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을 두고서 학교 간, 지역 간 서로 학생을 ‘유치’하는 경쟁 방식이 더 이상 근본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남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2학년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다. 남면초 전교생은 27명이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학교는 단순히 교육기관만이 아니다. 그 마을의 돌봄, 일자리, 문화, 체육 활동 등이 연결되는 공동체의 ‘중심’이다. ‘작은 학교’를 지원하고, 지켜야 하는 이유다. 폐교가 당장 인구감소의 원인이 되진 않지만, 장기적으론 폐교 9~10년 뒤 20대 청년 인구 유출(11%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도 있다(한국교육개발원 ‘소규모학교 통폐합의 영향에 대한 분석’ 2026년). 대기초 ‘학교 살리기’ 운동 당시에 아이 학부모로 함께 참여했고, 지금은 대기초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은주 교사는 말한다. “학교가 없어진다는 건, 마을이 없어진다는 거예요. 학교가 없어지면, 그 마을의 쇠락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져요.” 태안(충남)=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취재 내용을 생생하게 담은 기사와 사진과 영상 등을 담은 디지털 인터랙티브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4회 ‘작은 학교’를 지켜주세요 바로가기 https://campaign.hani.co.kr/regional-extinction-crisis-part4 디스토리는 한겨레 탐사기획팀의 새 이름입니다. 발견하다(Discover), 파다(Dig)와 스토리(Story)를 합친 말로 ‘깊이 있는 스토리를 발견하고, 숨어 있는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제안을 기다립니다. 제보 이메일은 dstory@hani.co.kr로. <디스토리팀> 취재: 류석우 손고운 황예랑 송상호 / 사진: 최현수 / 영상: 한해나 / 디지털 인터랙티브: 김경훈 안다영
등교 땐 1시간 뜀박질, 하교 땐 ‘택시’ 타야 하는 학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살리기’ 공약이 쏟아진다. 변방에 대한 ‘반짝’ 관심이다. 지방소멸은 왜곡된 표현이다. 지역이 잘못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정치가 방치한 지역불균형 탓이다. 여기, 2026년 ‘전환’을 맞이한 지역이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이다. 지역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