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클립아트코리아광고김희강 | 고려대 교수(행정학) 돌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돌봄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힘든 간병과 수발을 에이아이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기대 섞인 질문도 있는 반면, 사람 손이 필요한 돌봄마저 인공지능에 내어주는 것 아니냐는 걱정 섞인 물음도 있다. 그것이 기대든 우려든, 그 바탕에는 에이아이가 돌봄을 대신하는 세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전제가 놓여 있다.에이아이 기술은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다. 병원에서는 에이아이가 엑스선 사진을 판독해 의사를 돕고 있고, 최근에는 소견서 초안까지 직접 작성하는 소프트웨어가 허가를 받았다. 돌봄 현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요양원에서는 거동하지 못하는 환자의 배변을 처리하는 로봇이 시범 운영되고 있고, 홀로 사는 어르신과 말을 주고받는 반려로봇 ‘효돌’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보급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배뇨 시점을 미리 알아차려 화장실을 권하거나 옷 벗는 일을 거드는 로봇이 요양 현장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중국의 한 기업은 집안일을 하고 정서적 교감까지 나눈다는 2천만원대 가정용 로봇을 선보였다. 환자 간병이나 노인 수발뿐 아니라 아이 돌봄과 교육 현장으로도 이러한 기술의 쓰임새는 꾸준히 넓어지는 중이다.광고앞으로 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크기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이아이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직접적인 대면 접촉과 섬세한 정서적 관계까지도 그대로 재현해 낼지 모른다. 시간 맞춰 약을 챙기고, 환자의 체온을 감지해 이불을 덮어주며, 외로운 노인에게 다정한 어조로 안부를 묻는 일까지 에이아이 기술의 몫이 될 수 있다.다만 이 글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실현 가능성이 아니다. 대체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해도 되는가의 문제다. 계몽주의 이래 서구 철학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표지를 이성에서 찾아왔다. 생각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헤아리고 셈하는 능력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해주는 기준으로 여겨졌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자리가 바로 이성적인 능력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를 기계가 차지하고 있다. 읽고 쓰고 계산하고 판단하는 일을 에이아이가 대신하고 있으며, 그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성을 인간의 표지로 삼아온 오랜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광고광고이성이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잘 생각하는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다움의 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인간은 원래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태어난다. 누군가의 손길과 노고 없이는 삶을 시작할 수도, 이어갈 수도 없다. 그 취약함에 기꺼이 응답하는 돌봄이야말로 인간 조건의 핵심이며, 가장 인간다운 행위다. 철학자 버지니아 헬드가 돌봄을 인간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 부르고, 사회학자 캐슬린 린치가 돌봄을 단순한 노동이 아닌 “정서적으로 가장 우선하는 관계”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광고인간적인 삶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에이아이는 생로병사를 겪지 않는 무한의 존재지만, 인간은 무한하지 않은 신체를 입고 언젠가는 쇠하고 스러지는 유한한 존재다. 이 존재들이 서로의 한계를 직시하며 시간과 애정을 들여 기대는 상호의존,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가치이자 삶의 의미를 채우는 출발점이다. 그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돌봄이다. 나와 같은 한계를 지닌 연약한 생명체에 내 유한한 시간과 온기를 건네는 일은 기계의 연산이나 기능적 처치와 결코 같을 수 없다. 설령 기술적으로 흉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기계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자리가 바로 돌봄인 이유다.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으로라도 이 인간의 자리를 끝까지 보호하고 지키며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대신하든, 돌봄만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본다. 취약함을 마주하고 공감하며 관계를 이어 가는 일, 인간이 인간성을 놓지 않기 위해 의무적으로라도 지켜야 하는 마지막 자리가 여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힘든 돌봄을 기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따로 답해야 한다. 그 기대는 돌봄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 돌봄의 무게를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답은 그 짐을 기계에 떠넘기기보다 사회가 함께 나누어 지는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