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평전’을 쓴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광고‘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1946.9.1~2009.5.29). 누군가는 그를 두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원칙과 소신을 지킨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과격하고 불안한 사람’이라고 하며, 또 다른 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결단으로 희망과 실망을 끝없이 안겨준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노무현만큼 다르게 해석되는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나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그의 이름을 소환하고 있다. 저마다의 시선으로,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소환하는 노무현은 ‘진짜 노무현’인가.각자의 기억 속에 파편화된 노무현을 ‘시대 속의 한 인간 노무현’으로 연결해 입체적으로 조명한 책, ‘노무현 평전’(이하 평전)이 나왔다. 노무현 탄생 80주년(2026년 9월1일)을 기념해,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공식적으로 펴낸 첫 평전이다. 청와대 대변인과 연설기획비서관을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뒤 봉하마을 회고록 집필팀에 참여하는 등 20여년 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윤태영 작가가 썼다.평전은 “나를 본 대로 들은 대로 써라”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윤 작가가 청와대 참모로 일할 때 기록한 포켓수첩 600여권과 노무현사료관에 보관된 구술과 연설문, 참여정부 당시 참모들의 메모·녹취·비망록 등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2016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10년 간의 고군분투 끝에 928쪽 분량의 벽돌책이 완성됐다.광고평전은 척박한 시골마을의 가난한 소년이 인권변호사가 되고 ‘청문회 스타’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 뒤, 대통령 재임 기간(2003년 2월~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주요한 정치적·정책적 선택을 사건별로 짚는다. 북핵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검찰개혁, 대연정, 대통령 연임제 개헌, 당정 분리, 지방균형발전까지 20여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맞닥뜨렸던 수많은 난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료되지 않은 과제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열린 출판기념회에 보낸 축사에서 “‘사람 사는 세상’, 대통령께서 평생 품었던 그 꿈은 여전히 우리에게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최근 현안들에 대한 질문에 윤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답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다. 대신 평전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의 기록을 참고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윤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28일, 팔랑팔랑 노랑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서울 종로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이뤄졌다.광고광고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하기에 앞서 저서 ‘노무현 평전’을 들고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노 전 대통령 관련 책이 시중에 400권도 넘게 나와 있다. 이번에 평전을 쓰게 된 이유는.“사실 저에겐 ‘숙제’ 같은 일이었다. 노 대통령이 거의 모든 자리에 저를 배석시키고, 이런저런 얘기를 빠짐없이 해주신 건 ‘이 친구가 앞으로 내 일대기를 정리해 줄 것’이라고 염두에 두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땐, 제가 너무 피폐해져서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유시민 전 장관이 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대신 썼지만, 제 마음 속에는 ‘대통령께서 나에게 자신의 일생을 정리해달라고 숙제를 남기셨는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광고―노 전 대통령이 그런 ‘숙제’를 남긴 까닭은 무엇일까.“노 대통령은 그 시절 일을 잘한 건 잘한대로, 잘못한 건 잘못한대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자신의 사례가 후대에게 본보기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 스스로 모든 걸 기록하게 하고 참모들에게도 그렇게 기록을 남기라고 했던 이유가 다음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전임자들이 이럴 때 어떻게 했는지 그런 걸 살펴볼 기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하다하다 옛날 왕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 왕들은 어떻게 했나 찾아보기까지 했다. 책에도 쓰여있지만 노 대통령은 ‘옛날에 왕이 누리던 것을 이제 누구나 같이 누리는 게 진보’라고 했다.”―평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무현의 모습은 무엇인가.“굳이 어떤 면을 (강조하거나 평가해)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대통령의 육성을 살리려고 했다. 대통령 서거 직후 나온 ‘운명이다’가 밑그림이라면, 평전은 여기에 부분부분 디테일한 장면들을 더해 노 대통령의 생각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드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생전에 워낙 오해를 많이 받았던 만큼, 남들은 알지 못했으나 가까이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담아내려고 했다.”광고―흔히들 대상에 대한 거리두기, 냉정한 비판이 담겨야 좋은 평전이라고 평가하는데, 성공했나.“제가 평전을 쓴다고 하니까 누군가 ‘이제 (대통령과) 거리를 좀 둬야겠네’라고 하더라. 노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벌써 17년이지만, 지금도 저는 사실상 매일 대통령의 말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여전히 꿈에 대통령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내가 대통령과 어떻게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서문에 밝힌대로 ‘평전과 일대기의 혼합’ 형식을 취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전적인 의미의 (좋은) 평전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노무현 정치’의 시작과 끝, 그 핵심에 ‘국민통합’이 있다고 썼는데.“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의 구호가 ‘국민통합’이었다. 노사모는 모일 때마다 ‘짝짝짝 짝짝, 국민통합’을 외쳤다. 노 대통령은 당신의 당선만으로 국민통합의 50%는 달성됐다고 봤고, 이후에도 ‘열린우리당의 전국 정당화’(영남과 호남의 민주진영 통합)에 가장 힘을 기울였다. 노 대통령의 못다 쓴 회고록 제목이 ‘성공과 좌절’이다. 임기 말 (열린우리당 분당으로)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 하자, 그때부터 노 대통령이 ‘좌절’이란 말을 쓰기 시작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퇴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신 것도 (좌절을 딛고) 영남에 진보진영 한축을 만들겠다는 소망 때문이었다.”―최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주자들이 앞다퉈 노무현을 소환했다. 이들의 말이 노무현 정신에 맞닿아 있나.“노무현 정신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국민통합과 지역구도 정치 청산도 있고, 탈권위와 분권, 균형발전도 있고, 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만 대화와 타협도 있다. 기회주의 정치와의 싸움도 있고 패배하더라도 원칙을 추구하는 정치도 있다. 그래서 ‘이건 노무현 정신이고, 이건 아니다’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철학과 정치역정 가운데 현실에 견주어 어느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는 철저하게 현실 정치인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검찰개혁, 언론개혁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노 대통령이 지향한 검찰개혁, 언론개혁은 어떤 것이었나.“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개혁은 검·경 수사권 조정(분리)과 고비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지금의 공수처) 설치가 주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생각도 검찰 견제 기구를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를 위해 입법을 추진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여소야대 시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선자금 수사로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진 상태였다. 당정 분리 원칙도 있어 당의 원내대책에 대통령이 일일이 개입하기도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힘있는 권력 즉 ‘검찰이나 언론과는 담을 쌓고 산다’는 것이었다. 검찰에 부탁도 거래도 일체 하지 않고, 언론과도 유착하는 일 없이 공정하게 간다는 것, 그렇게 해서 권력이 서로 독립하여 견제하는 가운데 무사히 대통령 임기를 마치는 것만 해도 일보전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당정 분리 역시 계속 현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당 총재직 겸임 폐지’ 등을 담은 당정 분리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실제 이를 이행했으나 임기 말 “당정 분리가 이렇게 궤멸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고 토로했다.“평전 집필 과정에서 기록과 자료들을 면밀히 보다가 당정 분리에 대해, 노 대통령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얘기했음을 발견했다. 당신 입장에선 당정 분리를 철저히 이행하려고 했지만,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니 당과의 갈등이 오히려 더욱 심해지고,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시도가 이뤄지면서 당정 간 엇박자가 많이 나다보니, 당정 분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 판단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정분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것이 당시 정치권 전반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일종의 시대정신인 측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 전반에서 분권을 일관되게 추구했다.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내치의 상당 부분을 맡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당을 대하는 노 전 대통령의 기본 입장은 어땠나.“노 대통령이 임기 중 탈당을 두 번(2003년 정치 개혁을 위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7년 당내 분열 및 당적 정리 요구 속에 열린우리당 탈당)했지만, 분명한 건 아무리 불만이 많고 힘들어도 끝까지 안 놓으려고 했던 것이 바로 당이라는 사실이다. 그만큼 정당정치를 중요시했다. 일례로 선거 국면에서도 무소속의 신선한 인물보다 정당 후보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정당이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이라는 철학이 있었다. 그래서 갈등이나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정당을 떠나는 행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2007년 5월, 대선 국면에서 (지지자들이 한축이 되어 당내 갈등이 야기되자) 지지자들과 무등산에 올라 ‘(갈등이 있는 사람들과도)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됩시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대통령의 말씀이기도 하다.”―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제1야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에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내각 구성권을 넘기는 ‘대연정’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은 재임 중 가장 큰 파장을 초래한 사건이었다. 책에는 노 전 대통령이 유독 이 문제만큼은 참모들과 논의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왜 그랬을까.“그 부분은 저에게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돌이켜보면 그 무렵 언뜻언뜻 비슷한 뜻을 내비치신 것도 같은데 그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고민이 끝났다면 참모들한테 탁 꺼내놓고 ‘이게 우리 현실에서 가능할까?’ 의견을 물으셨을텐데 (스스로도 이게 될까) 회의가 드니까…그만큼 고심이 깊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대연정 제안은 당시 정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그런 지적에 공감한다. 노 대통령도 대연정 제안 실패 과정을 분석하며 ‘수류탄을 던졌는데 멀리 가지 못하고 아군의 참호 안에서 터졌다’고 한 바 있다. 아군 설득에도 실패했으니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을 탈고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 노 대통령이 얘기하는 ‘상식’과 흔히 여의도 문법이라고 하는 정치권의 상식은 180도 다르다는 것이다. 보통 정치공학은 정치적 이익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전략이나 전술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길은 달랐다. 보통의 정치적 상식대로라면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가야 했다. 한번 당선됐으니 그 좋은 선거구에서 재선도 하고 3선도 하는 것, 그게 정치적 상식이다. 그런데 낙선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권력을 가지면 내려놓거나 주변에 나누거나 했다. 그게 노무현 정치의 상식이었다. 그분의 상식은 그 길이 결국 길게 보면 승리한다는 상식이었던 거다.”―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문화도 나타나고 있다.“노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어떤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그런 것들을 알려 나가는 작업들을 정말로 끊임없이 해야 된다. 책임을 막중하게 느끼고 있다.”―노 전 대통령이 내준 숙제, 평전 집필을 끝냈는데, 이제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나.“대통령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이게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얘기를) 발굴해서 또 쓴다? 그것은 너무 힘든 일인 거 같다. 다만 사람들이 쉽고 편한 방법으로 인간 노무현을 접하고 알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걸 생각해보고 있다. 조금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알리는 방법이다. 그 일환으로 노무현을 테마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하려고 한다. 그런 형식을 통하면 다소 딱딱한 주제도 재미있고 쉽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년 만에 처음 나온 ‘노무현 평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제공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