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게티이미지뱅크광고조기현 | 작가 ‘사지 멀쩡한 청년에게 왜 나랏돈을 쓰느냐!’, 10여년 전 청년정책에 대한 뉴스만 나오면 자주 보이던 댓글이었다. 청년들이 게을러서 일자리를 못 구한다는 인식이 있던 때였고, 청년을 지원하려는 정책을 포퓰리즘으로만 여기던 때였다. 그때에 비하면 청년 지원에 대한 저항감도 줄고, 규모도 커졌으며, 점점 더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이제 곧 청년미래센터가 전국 17개 시도에 생긴다. ‘위기아동청년법’에 근거해 청년미래센터는 영케어러와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기관이다. 이제 청년을 지원하는 기관은 청년 일반의 사회 진입를 지원하는 청년센터와 위기에 특화된 지원을 하는 청년미래센터로 이원화된 셈이다.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위기아동·청년’ 지원이 시작되기 전에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광고우선 법 이름과 호명의 문제다. 위기아동청년법은 취약한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는 집 안에서 누군가를 돌보느라, 누구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워, 일반적인 청년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러니 그들을 찾아내고, 복합적인 지원으로 어려움을 해소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 이들을 ‘위기아동·청년’으로 명명한다.이들은 왜 위기에 처했을까? 이들이 스스로 자초한 위기가 있을까? 돌봄 책임을 여전히 가족의 몫으로 둔 사회, 과도한 경쟁에 대한 압박감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겪는 폭력적 경험 등으로 고립이나 은둔을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이지 않나? 그런데 ‘위기아동·청년’이란 말은 마치 이 위기가 개인 문제인 것처럼 둔갑시킨다. 자칫 내가 ‘일반 청년’에 들지 못한다는 낙인감을 줄 수도 있다. 특정하게 취약한 이들이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을 취약하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다. ‘위기아동·청년’이 아니라 ‘아동·청년의 위기’가 더 맞는 표현이다.광고광고법 이름부터 바꾸자. 위기를 개인화하지 않고, 청년에 대한 국가의 복지 책무를 명확히 하는 ‘청년복지법’으로. 아동복지법, 청소년복지지원법을 잇는 청년복지법이 된다면, 앞으로 돌봄이나 고립뿐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청년의 고통에도 응답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의 취약성은 단일하지 않다. 일자리, 돌봄 부담, 심리·정서, 가정불화, 빈곤, 고립 등 다차원적인 위기를 겪고 있기에 다양한 지원 체계가 필요할지 모른다.다차원적인 위기에 대응하려고 생긴 지원 체계라면, 그에 대응하는 방식도 다차원적이어야 한다. 특히 지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위기아동청년법이 영케어러를 정의한 것만 봐도, 위기는 다차원적인데 지원 기준은 단순하기만 하다. 법은 영케어러를 ‘가족돌봄아동·청년’으로 명명하며 다음 네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 유지가 어려운 ‘친족’을 돌봐야 하고, 35살 이상의 다른 구성원 없이 영케어러가 ‘단독’으로 돌봐야 한다.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일치하는 ‘동거’여야 하며, 본인의 학업과 취업에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어야 한다.광고만약 친족이 아닌 돌봄 관계는? 같이 돌보는 사람이 있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면? 진학이나 취업, 혼인 등 이유로 동거는 못 하지만 매일 드나들며 챙기는 이는? 현재 학업과 취업에 상당한 곤란을 겪진 않지만 곧 겪게 될 게 빤히 보이는 이는? 이 질문들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다차원적인 위기에 대응하는 포용적인 지원이 될 수 있다. 다 곯아 터지고 벼랑 끝에 매달렸을 때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예방적인 지원 체계가 돼야 한다.‘위기아동·청년’을 지원한다는 건 자칫 일방적이고 시혜적인 관계를 전제할 수 있다. 지원 현장에서 어떻게 관계 맺을지도 중요하다. 일본 아동·청년 지원 현장에서는 ‘동반형 지원’이란 말을 쓴다. 지원자가 당사자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듯이, 동등한 관계 속에서 지원한다는 가치를 담는다. 이러한 관계 기반의 지향을 명칭, 인력 양성, 매뉴얼 등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위기아동청년법 대신 ‘청년복지법’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사지 멀쩡한 청년에게 왜 나랏돈을 쓰느냐!’, 10여년 전 청년정책에 대한 뉴스만 나오면 자주 보이던 댓글이었다. 청년들이 게을러서 일자리를 못 구한다는 인식이 있던 때였고, 청년을 지원하려는 정책을 포퓰리즘으로만 여기던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