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배우 하영(왼쪽)과 1918년 12월10일치 ‘매일신보’에 실린 그의 증조부 안상호 가족 모습. 넷플릭스 페이스북 갈무리, 국립중앙도서관 자료 갈무리 광고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하영 배우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조부의 소록도 의사 시절 행적이 알려지며 큰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한편에선 “연좌제”라며 당사자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오며 논란은 더 커졌다. 논의 대부분이 친일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드러낸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작가 벨 훅스는 ‘인종과 젠더가 계급정치를 은폐하는 스크린이 되는’ 현실을 통렬히 지적한 바 있다. 때로는 역사와 민족도 계급을 가린다.광고 우선, 문제 된 게 하영 배우 본인이 아닌 선조의 과거사이고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며 사과문까지 썼다는 점을 고려하면, ‘활동 중단’이나 ‘연예계 퇴출’ 요구는 과하다. 과거 사례를 봐도 그 정도 요구가 대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면 학교폭력 가해, 병역 기피, 상습 음주운전 정도는 돼야 한다. 이번 일이 그래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하영 배우에 대한 비판이 ‘연좌제’라는 일각의 주장은 더 말이 안 된다. 연좌제라면 가족 문제로 인해 당사자가 형사적 처벌 또는 행정적 불이익을 받았어야 한다.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이 일은 황색언론이나 파파라치가 폭로한 게 아니라 배우 스스로 틈만 나면 미디어에 쏟아낸 이야기에서 비롯했다. 친일 문제에 가려지고 말았지만, 이번 사태에는 또 다른 강력한 뇌관이 존재한다. 바로 ‘계급’이다. 애초에 하영이란 배우는 왜 그렇게 ‘집안 자랑’을 많이 했을까? 물론 증조부 전력이 문제 될 줄 몰라서였겠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건 그런 표면적 이유가 아닌 사회적 배경이다.광고광고 하영 배우는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며 한창 ‘뜨고 있는’ 상황이고 당연히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소속사도 있다. 하루빨리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입장에서 보면 ‘4대째 의사 집안의 배우’라는 타이틀은 단숨에 주목을 끄는 ‘스펙’일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유명인들 ‘집안 자랑’을 줄기차게 양산하고 소비해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영 배우 역시 기회 될 때마다 본인의 ‘화려한 일족’을 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만약 그의 증조부가 친일 인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독립운동가나 애국지사였다면 어땠을까?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알고 보니 집안도 명문가였다”며 상찬받지 않았을까? 그럼 ‘자랑할 만한’ 가문이라면, 혹은 친일·범죄 전력만 아니면, 공적 자리에서의 ‘집안 자랑’이 아무 문제 없는 일이 되는 걸까?광고 과거에는 부모나 가문의 후광을 입기 싫어서 전혀 다른 이름을 쓰거나, 부모가 누군지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연예인 2세, 스포츠 스타 2세들 일상을 소재로 한 ‘세습 가족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이른바 ‘금수저 연예인’ 기사도 넘쳐난다. 그야말로 ‘전국수저자랑’이다. 그런데 이 퇴행적 풍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너무나 드물고, 간혹 나와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기묘한 일이다. ‘무임승차’에 그토록 분노하고 ‘불공정’에 치를 떠는 능력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출발선부터 다른 현대판 귀족들의 삶에 이토록 관대하니 말이다. 어쩌면 한국의 능력주의자들은 불평등은커녕 ‘수저’조차 문제 삼지 않게 된 건지 모른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던 정유라처럼, 출생운은 이제 불공정한 기득권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나 ‘스펙’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3루에서 태어나는 반면 누군가는 평생 야구장에 입장할 수도 없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서, 고작 시험 볼 기회를 같이 준다고 공정이 실현될 리 만무하다.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아무도 자신의 천부적 능력이나 공적을 사회에서 보다 유리한 출발 지점으로 이용할 자격은 없다”고 썼다. ‘수저’를 문제 삼지 않는 공정이란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한 채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책임을 전가하는 기만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배우 하영을 향한 비판이 “배가 아파서 그런 것”이라는 일각의 비아냥은 가소롭긴 해도 일말의 진실이 묻어 있다. 친일이나 불평등이 아무 문제 아니라 생각하는 자에게 그 ‘배 아픔’은 시기 질투에 불과할 게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 그것은 분명 계급적인 통증, ‘계급통’이다. 그 아픔은 친일이라는 결격 사유를 통해서야 비로소 정당화되고 분출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확히는 ‘억압된 계급통’이다.
‘수저자랑’ 시대의 아픔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하영 배우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조부의 소록도 의사 시절 행적이 알려지며 큰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한편에선 “연좌제”라며 당사자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오며 논란은 더 커졌다. 논의 대부분이 친일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드러낸 문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