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컷. 엣나인필름 제공 광고 권김현영 | 전남대 전남광주인문사회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다. 초대형 영화가 걸리는 한여름 극장가에서 독립영화인데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중이다. 영화를 본 뒤 잔상이 오래 남는다. 이십년 동안 조현병을 앓았던 누나와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고 감추기만 했던 의학 전공의 부모가 있다. 그 사이에서 온갖 감정을 느끼며 이들 주변을 서성였던 남동생은 감독이 되어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회한에 찬 후회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관객들과 만나며 다시 현재형이 되었다. 영화사는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갈 진행자에 정신과 전문의와 여성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 경계를 넘는 작품이기에 경계를 잘 다루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광고 관객들은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조현병 동생을 혼자 돌보게 된 친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엘리트 부모로부터 받는 압박으로 세상을 등진 친구가 여럿 있었고 지금도 주변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신호를 잘 눈치챌 수 있을까요. 학생뿐만 아니라 학생의 가족들에게도 연쇄적으로 조현병이 발병한 경우가 있는데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가족의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 고립을 택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생 약물치료를 꾸준히 한다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임의로 단약을 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럴 때를 위한 대비는 어떤 게 있나요. 모두 절박하게 각자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묻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완벽한 해답은 없었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함께 꺼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갈급해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산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운이 좋아도 전 생애에서 이삼십년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누구나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 의존의 자리를 가족만 담당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가족의 몫이 된다.광고광고 관객들의 질문은 모두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싶은데,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왜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가.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를 두고 있다. 민법상 후견인 또는 부양의무자가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고 치료와 요양, 사회적응 훈련을 받도록 할 의무를 진다.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입원시키려면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필수다. 가족만이 의존의 자리를 일방적으로 담당하도록 하는 조문이다. 가족은 입원의 책임과 원망을 함께 떠안는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오랫동안 이 제도의 폐지를 요구해온 이유다. 지난해 그 요구가 처음으로 정부 문서에 들어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제3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 초안에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가 명시된 것이다. 곧이어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이 제도를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가족에 의해 강제로 입원당해 가족관계가 단절되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올해 3월 공청회에서 발표된 계획안에는 폐지가 아니라 보호의무자 부담 완화로 문장이 바뀌었다. 그날 정신장애인들은 단상을 점거하고 우리를 배제한 계획은 폭력이라는 피켓을 들었다. 기본 계획은 그대로 확정됐다.광고 두달 뒤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국가가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떠맡겨왔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 해체되어왔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 나온 경희대 의대의 백종우 교수는 입원 결정을 가족의 서명이 아닌 공공책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입원 책임을 가족에게 남겨둔 채 진행되는 정신건강의 혁신은 기만이라고 했다. 김예지 의원의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남아 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 질문이 회한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옮겨와야 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지금은 오직 보호의무자인 가족이 한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한 그 가족은 돌보는 사람인 동시에 가두는 사람이 되고, 아픈 사람은 자신을 가둔 사람에게 의지해 살아야 한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가족에게 더 잘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가족만이 전부가 아닐 수 있는 연결이 만들어져야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인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기대지 않고도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의 숨이 되어줄 수 있는 사회, 그런 상상력이 지금 절박하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