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63년 만에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노동절인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광고 문성훈 | 서울여대 교수(현대철학) 이재명 정부는 자신을 ‘국민주권정부’로 지칭한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자명한 사실인데 굳이 현 정부의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이는 국민이 주권자임에도 지금까지 주권자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현실 진단에 따라 이제는 국민을 명실상부한 주권자로 대접하겠다는 선언인 것 같다. 윤석열 전 정부가 대한민국이 국민 주권 국가임에도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민 주권을 무시하고 반헌법적 내란을 일으켰으니 그럴 법도 하다.광고 그렇다면 국민을 주권자로 대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교과서적으로 말해 주권자는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이니 국가 운영이 국민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민을 주권자라고 칭해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일 뿐 국민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국민 개개인의 뜻은 존재해도 국민의 뜻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본래 불가능한 일일까?광고광고 그렇지 않다. 이미 정해진 국민의 뜻은 없다 하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국민 개개인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조정하면 적어도 국민 대다수의 뜻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이 주권자라는 또 다른 표현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뜻을 모으는 일이 국민 주권 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과연 모든 국민이 주권자로서 공론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까? 지난 12·3 내란 사태 때 우리 국민은 주권을 발휘해 공론을 형성했고, 이것이 힘이 되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내란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국민이 일상적으로 공론 형성 과정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국민 대부분은 주권자인 동시에 ‘노동하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민 대부분은 매일 장시간에 걸쳐 유급 혹은 무급 노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업무 과다, 직장에서의 종속, 일에 대한 사회적 인정 결여에 시달리고 있고, 이 때문에 정치적 공론 형성 과정에 참여하여 주권자로서 소임을 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광고 최근 현대 사회 비판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 3세대의 대표적 철학자인 악셀 호네트는 ‘노동하는 주권자’라는 저서에서 ‘민주적 노동 정치’의 부활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현대 사회는 사회적 분업에 기초해 있으며, 이 체계 내에서 노동한다는 것이 민주적 정치 참여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적 분업 체계에 참여할 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서로를 가치 있는 협력자로 인정하고, 상호 연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 조건이 생계유지와 사회적 인정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민주주의는 실현 동력을 상실한다. 사실 전세계가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대대적인 규제 철폐로 사회복지는 후퇴하고, 노동은 유연화하며, 저임금은 확산해 사회적 양극화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또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인공지능 도입으로 노동은 개별화, 프로젝트화, 탈물질화, 불안정화를 겪고 있지만, 노동 문제는 정치적 공론장에서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못하다. 이에 호네트는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 민주주의 실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노동 조건을 재조직하는 ‘민주적 노동 정치’의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주권정부 등장 이후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성과급 지급이나 노동자 사망에 따른 산업안전 문제가 잠시 부각되었을 뿐, 사회적 인정 경험은 둘째 치고 생계유지마저 위태롭게 하는 비정규직의 증가, 대-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플랫폼 노동자 착취, 직장 내 갑질 등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과연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하는 주권자가 정치적 공론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이들의 정치적 공론 형성이 침체된다면 과연 국민주권정부는 누구의 뜻에 따라 국정을 운영해야 할까? 정부가 국민을 명실상부한 주권자로 대우하려 한다면 노동하는 주권자의 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작금의 노동 조건부터 재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