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달 31일 경북호국보훈재단은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재심사·재평가해 현재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에서 1등급인 대한민국훈장으로 추서해달라는 청원서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 경북호국보훈재단 제공 광고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서훈을 승격해야 한다는 운동이 그의 고향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경북호국보훈재단(재단)은 이상룡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재심사·재평가해 현재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에서 1등급인 대한민국훈장으로 추서해달라는 청원서를 지난달 31일 국가보훈부에 제출했다고 11일 밝혔다. 청원서에는 청원동의에 서명한 2678명도 함께 담겼다. 1858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상룡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항쟁에 뛰어들었다. 이어 1909년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만들어 애국계몽운동을 펼쳤고, 1910년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다음해인 1911년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앞장섰다. 이상룡이 먼저 떠난 뒤, 부인 김우락, 아들 이준형과 며느리 이중숙 등 가족도 망명길에 올랐다. 그의 생가 임청각에서만 11명의 독립운동가가 탄생했다.광고석주 이상룡 선생. 공훈전자사료관 누리집 갈무리 그는 만주에서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등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군사단체인 서로군정서를 운영했다. 만주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려는 노력도 놓지 않았다. 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로 바뀐 뒤, 임시정부는 이상룡을 초대 국무령으로 추대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민족적 대의를 지키면서도 사회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고, 독립운동 진영의 통일을 이끌 수 있는 지도자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상룡 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기반을 세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지켜낸 건국형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1962년 추서된 이상룡 선생의 서훈은 자료와 연구의 한계로 단편적으로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축적된 임시정부 헌정사, 만주 독립운동사, 임청각을 통해 볼 수 있는 가족적 독립운동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광고광고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 안동시 제공 지난 6월 국가보훈부는 1970년대 이전 훈격 부여 독립유공자를 대상으로 공적을 재평가해 새롭게 포상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독립유공자 서훈은 1962년 만들어진 상훈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당시 자료의 한계와 사회적 여건 때문에 명망이나 광복 이후의 경력이 훈격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2008년 여운형, 2019년 유관순, 2021년 홍범도 등 3명은 서훈이 재평가되기도 했다. 정부는 기존 서훈을 유지한 채 새로운 서훈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이들에게 1등급 서훈을 추서했다. 한희원 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청원을 통해 한 인물의 훈격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역사적 공적을 어떻게 기억하고 예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광고 한편, 재단은 지난해 ‘독립유공자 공적 재심사 추진단’을 꾸리고, 지난 2월 안동 유림 등은 청와대에 만인소를 올리는 등 이상룡을 포함한 지역 독립운동가 20명에 대한 서훈 재심사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