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홀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 병기해야 할까요? 모두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광고 정재환 | 역사학자·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광고 지난달 26일 ‘모두의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서울 광화문 현판 병기였다. 글쓴이는 병기 찬성 토론자로 참여했다. 정확하게는 한글·한자 현판 ‘병기’가 아니고 기존 한자 현판에 새로운 한글 현판 ‘추가’인데, 애당초 제목이 엇나갔다. ‘병기’에 관해 말하다 보니, 광화문 한자 현판이 원형인가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을 피했다. 그런데 토론하다 보니 한글 현판 병기 반대의 큰 이유가 ‘원형 유지 원칙’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반대 토론자들은 한글 현판을 걸면 원형이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1964년 베니스헌장에서 유산의 원형을 가장 중시하면서도, 필수적인 추가나 변형을 허용했고, 1994년 나라문서에서는 후대의 증축, 양식 변천, 심지어 의도적 개조까지 진정한 속성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에도 귀를 막았다. 광고광고 본디 현판은 하나만 거는 것도 아니다. 경기 수원 화성행궁 관헌에 처음 걸린 현판은 장남헌이었지만, 봉수당으로 바뀌었고, 경북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는 현판이 3개나 걸려 있다. 중국 천안문에는 ‘천안문’ 현판조차 없다. 1950년대 현판을 떼어내고 중국 국장을 걸었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현판 문화만 참고해도 한글 현판 추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토론회의 쟁점인 ‘한글 현판 병기’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제 사회의 합의와 현판 문화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문화유산 관계자가 많이 참석한 탓인지 원형 유지 원칙은 철옹성이었다. 진리이자 절대적 가치였다. 처음부터 한자 현판이 원형이라는 환상을 깨는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광고 광화문 현판은 고종 때 임태영이 쓴 것을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임태영 현판 글씨를 본 사람도 없고,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는 사진 한장 없다. 1900년 이후에 찍힌 광화문 흑백사진 속 흐릿한 글자를 흰 바탕에 검정 글씨로 힘겹게 복원했다. 그런데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광화문 사진과 ‘경복궁영건일기’의 기록을 보니,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였다. 그래서 다시 색깔을 바꾸었다. 과연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복제품을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것 아닐까? 문화재 전문가 데이비드 로렌탈은 ‘원형 그대로’라는 관념은 사실상 허구이거나, 잘해야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임태영은 누구인가? 광화문 현판 때문에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2024년 김승수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임태영은 탐관오리이고 천주교를 탄압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정말 그런지 찾아보았다. 1840년 길주 목사 임태영은 암행어사에게 탄핵당했다. 1859년 12월, 조정의 지시도 없이 천주교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으로 서울과 지방의 교인촌을 급습했고, 신자 30여명을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했다. 천주교인들 집에 방화하고 약탈했으며, 폭력을 행사하고 가혹하게 고문했다.광고 천주교인들에게는 끔찍한 고통과 악몽의 시간이었고, 배교와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순교자도 나왔다. 1860년 8월7일, 철종은 천주교인들에 대한 석방과 함께 체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풀려난 신자들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지만, 희생은 컸다. 이 사건으로 임태영은 직에서 물러났다. 사당이나 기념관을 짓고 동상을 세우는 까닭은, 역사상 귀감이 되는 자랑스러운 인물이어서다. 암행어사에게 탄핵당하고 천주교를 탄압한 임태영은 이런 일반 상식에 맞는 인물이 아니다. 구국의 영웅 이순신과 세종 동상이 자리한 국가 상징 공간에 원형이라 주장하며 임태영 글씨를 걸어두는 것이야말로 역사 정의 훼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