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용산동에서 ‘몰몽재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를 향해 유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절을 하며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몰몽재 사건은 한국전쟁 때 경찰이 무고한 민간인 30여명을 총살한 사건이다. 전남광주 동구 제공광고“죄 없는 사람들 돈을 뺏고 파놓은 구덩이에 집어넣어 총살해버리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지난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희망원에서 열린 몰몽재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족들의 영상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영상에서는 고 허원동(사망 당시 44)씨의 손자 허성룡(69) 전 동구의원이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을 연구하는 박동기 남녘현대사연구소 소장을 학살 장소로 안내하고 있었다. 허 전 의원은 “학살 직후 희생자들을 수습하려 했지만 경찰이 지키고 있어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접근할 수 있었다”며 “주검들이 부패하며 뒤엉켜 구분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바지에서 도장을 발견하며 신원을 확인해 주검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주검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광고전남광주 동구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광주유족회, 장재성기념사업회 등은 이날 몰몽재에서 양민학살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과 함께 추모식을 열었다. 사건 발생 75년 만에 첫 추모행사다.한국전쟁 시기 양민학살사건인 몰몽재 사건은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지워진 역사로 불린다.광고광고박 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23일 북한군 6사단이 광주로 진입하자 지역 내 모든 군경은 부산으로 후퇴했다. 9월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군경은 10월3일 광주를 다시 수복했다. 이때 복귀한 광산군 효지면(현 동구 지원동) 지한지서 경찰들은 북한군에게 재산을 뺏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당시 북한군은 우리나라 경찰을 친일 경력자로 여기고 있었다.이듬해 1월14일 임아무개 지한지서장은 회의를 하자며 소태리 이장이었던 허원동씨 등 주변 마을 이장, 반장, 서기 등 지역 유지 30여명을 불러 모았다. 임 지서장은 어떤 이유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금도 가지고 오라고 한 뒤 유지들을 지서 옆 민가에 가뒀다. 유지들이 귀가하지 않자 가족들은 지서를 찾아갔으나 경찰들은 “여기에 없다”며 내쫓았다.광고같은 달 16일 경찰들은 유지들에게 북한군 부역 혐의를 씌운 뒤, 그들을 인적이 드문 몰몽재로 끌고 가 총살했다. 희생자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던 대한청년단 효지면 훈련부장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경찰이 빼앗은 돈은 14만원으로 알려졌다. 당시 순경의 6개월치 월급에 달하는 금액이다.지난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용산동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인 몰몽재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왼쪽 사진) 유족, 시민단체 회원들이 위령비에 절하며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끌려간 사람들의 죽음을 직감한 가족들은 몰몽재로 찾아갔지만 지한지서 경찰의 감시로 접근하지 못했다. 허원동의 가족들은 같은 해 4월 임 지서장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경찰 쪽에서 “전시인데 양민학살을 이유로 정복 경찰을 가둬버리면 경찰 중 누가 총 들고 싸우겠느냐. 이건 경찰 사기 문제”라고 탄원서를 제출하며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경찰은 임 지서장을 보성군 득량면 초소로 인사 발령하며 사건을 묻었다. 희생자 가족들은 이때서야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신원이 확인된 허원동을 제외하곤 나머지 주검은 경찰의 위협으로 수습하지 못했다.몰몽재 사건은 47년이 지난 1998년 허 전 의원의 주도로 동구의회에서 지원동 양민피해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규명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11월 집단학살로 결정했고 이듬해 동구에서 몰몽재 학살터에 표지판을 설치했으나 찾는 발길이 드물어 서서히 잊혀 가던 상황이었다.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정명호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한국전쟁 때 한반도 남쪽에서 희생된 민간인이 100만명에 달하고 전남광주에서만 20만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들의 명예회복으로 한을 풀어주는 게 우리들의 의무”라고 말했다. 고창옥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은 “75년의 한 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 다소 늦었지만 위령비를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광고박 소장은 “몰몽재 사건은 정부에 협조적이고 우익활동을 했던 인사들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다른 양민학살과 차별성이 있다”며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지워졌던 사건을 이제라도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주검 뒤엉킨 채 75년…“명예회복으로 한 풀어드려야죠”
“죄 없는 사람들 돈을 뺏고 파놓은 구덩이에 집어넣어 총살해버리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요?” 지난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희망원에서 열린 몰몽재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족들의 영상이 나오자 참석자들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영상에서는 고 허원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