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audio element.구글 선호 매체 등록지난해 6월19일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2025 서울 청년 취업 멘토링 페스타에서 한 참석자가 관련 배너를 읽고 있다. 연합뉴스광고김현정 | 강동숲속도서관 문학상주작가·‘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저자 “서울은요, 걸어만 다녀도 기분이 좋아져요. 상수역이랑 홍대랑 강남역이랑, 너무너무 너~무 재밌어요.”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란 예영이는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에 올라왔다. 지역의 이름난 학교에도 갈 수 있었지만 원픽은 서울이었다. 서울엔 예영이가 좋아하는 핫플레이스와 근사한 공연, 전시가 수두룩했다. 가고 싶은 곳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았다. 운이 좋게도 경상남도가 서울 강남구에 세운 남명학사에 살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꿀 같은 서울 생활이었다. 아르바이트는 필요한 만큼만, 부모님께 받은 용돈은 공연비로, 대신 공부를 열심히. 꼬불꼬불 파마한 머리에 리본을 묶고, 짧은 스커트를 즐겨 입는 예영이는 깜찍한 뒷머리를 찰랑대며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향토학사를 아시는지? 각 지역 장학회가 고향을 떠나 타지에 간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다. 숙소는 물론 꼬박꼬박 밥까지 챙겨 주는 비용은 한달 15만원 남짓, 감탄사가 나오는 은혜로운 액수다. 물론 여럿이 방을 쓰고 통금시간까지 지켜야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부담 없는 가격에 서울을 누리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문제는 졸업 이후다. 단돈 15만원에 숙식이 모두 해결되는 안온한 둥지가 박절한 서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에 있고 싶지만 졸업하면 밀양 내려가서 몇년 알바하다가 다시 올라올지도 모르겠어요.” 예영이는 졸업 이야기만 나오면 시무룩해졌다. 부모 집에서 잠을 자고 밥 먹고 학교에 다니는, 어찌 보면 숨 쉬듯 당연한 일이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잘 곳을 해결해야 하고, 스스로 밥을 해 먹어야 한다. 청소며 빨래, 소소한 공과금까지 일일이 챙겨야 한다. 아프기라도 하면 그만큼 서러운 일이 없다. 뗑깡 피울 수 있는 어른이 주변에 한명도 없는 것이다. 결국 예영이는 졸업과 동시에 밀양으로 돌아갔다.광고“다행히 월세방을 구했어요. 명지대 앞인데요, 회사까지 다닐 만해요.” 통통 튀는 말투와 귀여운 목소리가 반가웠다. 예영이는 며칠 전 서울에 취업하면서 지낼 곳을 구했다. 반년 넘게 망설인 끝에 결심한 서울행이다. 너무너무 재미있고 좋은 서울이었지만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방값 때문이다. 빠듯한 부모님 사정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걱정 말고 가라 하시는 응원이 더 서글프고 미안했다. 나 또한 좋은 일자리가 보여도 지방 사는 졸업생들에게는 도전을 권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케이티엑스(KTX)까지 타고 와 면접을 볼 텐데 떨어지면 미안해서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길고 긴 고민 끝에, 예영이는 도전하고 싶은 도시에서 꿈을 펼쳐보기로 했다. 물론 월급의 절반 이상은 월세가 잡아먹을 터이지만 나는 그저 ‘잘됐다’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부모 찬스로 얻은 고급 아파트와 번듯한 회사, 세련된 여가를 즐기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드물다. 내 주변의 더 많은 청년들은 서울에 남을 방 한칸을 걱정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케이티엑스 요금을 계산하고, 값비싼 월세 앞에서 꿈을 접을지 말지를 고민한다. 그런데도 왜 다들 서울에 와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지 마시기를. 철없는 허영에 너도나도 서울로 향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허기가 져서, 혹은 좋은 일자리가 고파서 다들 대도시를 찾는다. 설령 되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들의 선택으로 남겨두자. 부자 부모에게서 태어났거나 큰 기업에 들어가 대출이라도 잘 받아야만 서울에 살 수 있다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향토학사는 단지 저렴한 기숙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시작을 지탱해준 디딤돌이었다. 그런 디딤돌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에게도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청년이 서울에서 버틸 힘을 혼자 증명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 첫걸음을 함께 받쳐주는 사회였으면 한다. 스무살, 처음 집을 떠난 모험이 신나는 도전과 경험으로 가득하도록.